"그 감정 속으로 그만 들어가"
"그 감정 속으로 그만 들어가"
M이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놀랍게도 괜찮아졌다.
문득 외로워지는 날이 있다. 취준 기간이 길어지며 나는 사람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속해있던 단톡방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왔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막상 누구든 만나면 세상에서 제일 즐거워하면서도 그랬다. 내가 뭘 공부하고 어떤 시험에 떨어졌고 같은 것들을 말하길 종용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고, 혼자만의 바다로 들어가는 시간이 길어졌다. 완벽한 잠수는 아니었고, 스노클링 정도는 됐다. 숨 쉴 구멍은 만들어 놓은 채, 얕은 물에서 고개를 숙인 채 물속을 휘적휘적 헤엄치곤 했다.
그날은 바다에서 뭍으로 나오는 날이었다. 나는 대화가 필요했고, 카페에 앉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나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 가볍게 한 전화였는데,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누구에게나 삶은 치열하다. 치열한 삶을 버텨내다 보면 한순간 신을 원망하는 때가 오기도 한다. 왜 하필 많은 이들 중 나에게 이런 불행이 왔는지 억울해질 때도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치열한 방식으로, 친구는 삶을 버텨내고 있었다.
서로 연락하지 않았던 1년 남짓한 기간의 기록을 듣는 동안, 나는 친구에게 미안해졌다. 친구는 내게 미안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이 미안함을 견뎌내기가 힘들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정의된 그와 나의 관계에서, 내가 그 이름만큼의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든 미안함이었다. 그 마음을 들키면 혹시 친구가 부담스러울까, 애써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애쓰며 긴 통화를 끝냈다.
주문했던 커피는 식었는데 내 감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통화한 친구와는 전혀 접점이 없으며, 언제나 그렇듯 나의 고통에서 날 끌어올려 줄 M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 나는 M에게 주저리주저리 내 감정을 늘어놓았다. M은 차분히 내 말을 듣더니 말했다.
"그 감정 속으로 그만 들어가."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의 섣부른 판단으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를 넘겨짚으려 하지 마."
M의 말이 맞았다. 경청과 공감, 그거면 충분했다. 혼자 앞서 나가 감정에 빠질 이유가 없었다. 감정에도 적절한 속도가 필요하다.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판단하려 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쉽게 재단하려 들거나, 구태여 나의 이야기를 꺼내어 위로랍시고 들은 이야기와 비교하려 하는 것은, 감정의 과속이 부른 오류다.
오류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감정의 적절한 속도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와 함께 흐르는 감정에 발맞추어 걸으면 그만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감정의 길을 인도해주고 있는데, 그보다 앞서 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떤 것이 '적절한 속도'인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혼자만의 과속이 금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생각이 정리되고 난 뒤 친구에게 문자를 남겼다. 앞으로는 자주 연락하겠다고 말하려다 지키지 못할 약속인 것 같아 지웠다. 안 하던 짓을 하는 것도 과속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간단하게 가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때 또 연락할 테니 기다리라고.
성탄인사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또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고, 곁에 서서 감정의 속도를 차분히 따라가리라. 그러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성탄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