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도시는, 늘 다른 나를 보여준다
상해, 샹하이, 상하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곳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길래
마라톤을 뛰러 상해까지 갔을까?
나는 상해는 늘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20년을 한국에서 보냈던 내가, 살아온 기간의 4분의 1을 보낸 곳이며
세계를 무대로 삼고 살겠다는 10대 시절의 내가 그 꿈을 처음 실현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 시기가 엄청난 전환기였으며, 다양한 추억이 빼곡하게 차있다.
그 시절의 나는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복단대 전마담이라 불렸고,
상하이 엑스포에서 한국관 홍보도우미로 일하기도 했고,
상해 유일의 사물놀이패로 다양한 행사에 공연하러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상해 구석구석에 추억을 남겨두었다.
해외마라톤은 언젠가 가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좋은 기회로 마카오 마라톤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하프코스였기도 했고,
내 머릿속에 해외마라톤이라 함은 세계 7대 마라톤이었다.
개중에는 기록 조건을 달성해야 참가 기회가 주어지는 대회도 있는데,
그 조건을 달성하기 쉽지 않아서 언젠가 내가 더 잘 뛰게 되면, 그때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운명일까.
온라인 어딘가에서 '상해 마라톤'이라는 단어를 발견해 버렸다.
과거의 추억이 가득한 '상해'와 현재의 열정이 가득한 '마라톤'의 조합이라니.
내가 이 생각을 왜 진작 못 했을까?
이건 무조건 가야 한다.
그렇게 첫 해외 풀코스 마라톤을 뛰러 상해로 떠났다.
그렇게 10여 년 만에 '뛰러' 돌아온 상해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긴 시간이 지나 더 많이 바뀌고 발전한 것도 물론 있지만,
예전에 걷던 그 거리들을 러닝코스로 바라보는 것은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내 발로 뛰며 여기에 이런 추억이 있었고, 저기에 이런 추억이 있었네 하며 아련한 기억을 되짚어본다.
마치 오래 묵혀둔 사진첩을 꺼내보는 것처럼.
그렇게 한 장 한 장 빛바랜 추억들을 꺼내면,
그 시절의 상해뿐 아니라, 그 시절의 나도 새로이 보였다.
나는 늘 사람들 사이에 있었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으며, 늘 주목받았다.
남들이 하는 건 당연히 다 해야 했으며, 남들이 안 하는 것도 하려고 했다.
학창 시절의 나와 함께 한 선배들은 '너는 뭐든 잘할 거야'라고 얘기했다.
사실 그건,
자신감이나 자아실현보다는
관심받고 싶고 중심에 서고 싶어 했던 노력들이었다.
주위의 칭찬으로 나를 판단하고, 내가 제일 잘난 줄 아는 시절이었다.
나는 어렸고, 내 세상은 좁았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다행인 건 그래도 황소개구리 정도는 된다는 사실이다.
칭찬받고자 안달 난 노력들 덕분에 나는 남들보다 풍부한 경험을 했다.
이 경험들은 내게 엄청난 자산이 되어, 나의 정체성을 찾는 데 일조했다.
어리고 황소개구리였던 그때의 내가 바라보던 상해와
어느새 10여 년이 지나 30대 후반이 된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상해는
비슷하면서도 참 다르다.
아마도 사람들이 이미 가본 곳을 다시 찾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예전에 가본 곳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았을 때 발견하는 것은 그때의 추억뿐만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니까.
상해는 여전히 나의 라오띠팡(老地方: 중국어로 자주 가던 곳, 단골 장소라는 뜻)이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다시 돌아오더라도
20대의 내가 순수한 열정으로 학창생활을 하던 내가 여전히 살아있고,
30대의 내가 첫 해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내가 여전히 손을 흔들어 줄,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 영원히 살아 숨 쉴
내 제2의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