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시넥의 『스타트 위드 와이』 서평
나는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모든 성공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라고 외치는 미국식 자기 계발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판에 박힌 이야기와 결과론적인 끼워 맞추기식 사례들은 늘 진부하게 느껴졌다. 『스타트 위드 와이』도 아직 반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미 이 책이 나의 결과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자는 모든 일이 WHY에서 시작한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 WHY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도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설명만 반복한다. 라이트형제, 애플, 마틴루터킹 등 세계적인 성공사례를 가져와 '그들에겐 WHY가 있었다'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이게 그저 결과론적인 끼워 맞추기로만 느껴졌다. 'WHY'만이 정답이라는 강한 확신과 반복적인 예시가 논리적이라기 보단 거의 복음 전파급의 설득으로 느껴졌다.
저자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왜 하느냐를 보고 선택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애플을 예뻐서 쓴다. 맥북, 아이폰, 에어팟, 애플워치까지 이어지는 애플 생태계에 한번 빠지면 그 연동성의 편리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애플을 선택하는 이유이지, 그들이 '세상을 혁신'하겠다는 거창한 슬로건 때문이 아니다. 효용이 먼저고 철학은 그다음이다.
이 책이 말하는 WHY는 정말로 선택의 출발점일까,
아니면 이미 이루어진 선택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일까?
나는 이 책이 그 질문을 열어두기보다 하나의 답으로 닫아버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조직에서의 WHY는 더 위험하다. 리더가 자신의 'WHY'에 공감하기만을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공유된 가치가 아니라 문화적 압박이자 책임을 전가하는 언어가 된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알잖아.", "이 정도는 희생할 수 있지 않나?" 이런 말들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위대한 기업은 처음부터 동기가 가득한 사람을 뽑는다', '같은 신념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설 자리가 없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기업 문화는 입사 시점부터 직원들을 잘못된 신념 안에 가둘 수 있는 위험한 구조다. 옆 사람만큼 열정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람,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가스라이팅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기업문화 때문에 워커홀릭이거나 우울증이거나 혹은 둘 다이거나 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다. 리더의 WHY는 조직을 급속도로 성장시킬 수도 있지만, 조직원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초반부의 근거 없는 확신과 감정적 호소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3분의 1 정도를 읽고 나서야 처음으로 공감하는 문장을 만났다.
"WHY에서 시작할 때, 사람들은 행동하게 된다. 우리의 WHY가 분명하고, 그 WHY를 실현하는 방식이 명확한 HOW로 뒷받침되며, 우리가 하는 일들이 일관된 WHAT으로 드러날 때, 그제야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믿는지 이해하게 된다."
WHY가 선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HOW와 WHAT으로 일관되게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 그제야 비로소 WHY는 사람을 움직이는 구호가 아니라, 신뢰가 쌓인 뒤 의미를 갖는 언어가 된다.
강원국의 『글쓰기 수업』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람들은 거대 담론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주변 얘기에 움직인다. 이론 말고 실제, 의도 말고 실행, 원칙 말고 실천 내용을 써야 하는 이유다."
이 문장이 내가 『스타트 위드 와이』를 읽으며 느꼈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WHY가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이론과 의도에 머무르는 WHY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사람들이 진짜 신뢰를 느끼는 지점은 실제와 실행이다.
실무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명확한 경로(HOW)를 제시하는 리더이다. 명확한 업무지시와 시스템, 그리고 약속한 보상(WHAT)으로 조직의 성장이 눈에 보이고 팀워크가 좋아지면, 우리는 꽤 괜찮은 팀이라는 자발적 WHY가 생겨난다.
보상과 시스템(WHAT/HOW)이 만족스러워야 비로소 "아, 이 회사가 나름 좋은 일을 하네?"라고 뒤를 돌아볼 여유(WHY)가 생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WHY가 없어도, WHAT과 HOW가 충분히 강하면 사람은 선택하고, 머문다.
내 유튜브 채널만 봐도 그렇다. 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은 나의 WHY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뛰고(HOW) 그 마라톤이 어땠는지(WHAT)를 보는 것 아닐까? 그들이 궁금한 건 추상적인 철학이 아닌 구체적인 WHAT과 HOW이다.
나는 기록 자랑을 하지도 않고 고통을 미화하지도 않고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 하다 보면 성장한다는 것,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즐기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이런 것들을 말로 한다고 해서 그게 전달이 될까? 오히려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HOW와 WHAT은 노력과 결과로 증명한다. 그래야만 신뢰를 쌓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후에 WHY는 자연스레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WHY는 사람을 조종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행동(HOW)과 결과(WHAT) 사이의 개연성을 설명해 주는 중심축이어야 한다. 묵묵히 쌓아 올린 HOW와 WHAT 사이에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향기 같은 것이어야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읽지 않은 나머지 50%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