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선 도로를 아무렇지 않게 건너는 사람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서평

by Giagraphy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숙소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재래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승무원 짬밥 6년 먹은 여행광인지라 어디를 가도 혼자서 잘 다니는 편이지만,

이집트는 동양인 여자애 혼자 여행하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이집션 동료의 말에 여행사를 통해 왔다.

나는 이집트 로컬 가이드와 미국, 캐나다, 호주, 독일, 필리핀 등 다양한 외국인들과 동행중이었다.

숙소에서 100m도 안 왔는데, 눈에 띄는 외국인 단체에게 호객행위가 한창이다.

들은 척도 안 하고 지나가는 나와 달리, 우리의 파란 눈 친구들은 노땡큐를 아랍어로 직역한 ‘라, 슈크란’을 수도 없이 외쳤다.

새삼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영어권 사람들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와 그런 얘기를 나누며 아무 생각 없이 신호등도 없는 길을 건넜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돌아보니, 다들 도로 한가운데에서 어찌할 바 모르고 서있는 것이다.

8차선 도로였다.

차들은 무자비할 정도로 그들을 무시하고 쌩쌩 달리고 있었고,

그 길을 아무 불편함 없이 건넌 것은 나와 필리핀 친구, 그리고 가이드뿐이었다.

이집트 여행 중 피라미드 앞에서 한복을 입고


가이드 덕에 내가 그 길을 건넌 것은 아니다.

나는 중국에서 4년을 살았고, 필리핀과 베트남에서도 각각 한 달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세 나라 모두, 초행자들에겐 길을 건너기 쉬운 곳이 아니다.

사람 나고 차 났지 차나고 사람 났어?라는 생각으로 당당히 도로를 점령해야만 차, 오토바이, 자전거들이 멈춰주는 곳이다.

그렇게 당당해도 무대뽀로 밀고 들어오는 수송수단들을 유유히 손으로 막으며 건너야 한다.

나는 그 일을 꽤나 잘하는데, 딱히 그걸 인지한 적은 카이로의 그날이 처음이었다.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이미 익숙해진 거였다.


중국에서 살던 4년 동안, 나는 핸드폰을 8번 잃어버렸다.

자전거 3대, 지갑 2개도.

처음엔 억울하고 황당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좋고 화려한 것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핸드폰은 항상 저렴한 중고로만 샀다.

어차피 내 손에 오래 있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단련된 조심성은, 그 이후로 어느 나라를 가도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는 몸을 만들어줬다.


웃기게도,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에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든 그곳에서의 배움이 도움이 된다’는 구절을 읽으며 카이로의 그날과 중국의 소매치기 기억들이 떠올랐다.

저자는 토종 한국인으로 벨기에 남자와 결혼하여 17년째 벨기에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들을 실감 나게 그렸다.

책은 내 10년이 넘는 해외생활들을 떠올리며 공감되는 구절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해외에서 생존할 수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그녀와 나는 생각이 꽤 비슷했다.

‘자란 곳은 한국이고 사는 곳은 벨기에인 사람으로, 그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으로 잘 살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나'로 잘 살고 있다.’라는 문장은 내 인스타그램 프로필과 일맥상통했다.

Born in Korea, Studied in China, Worked in UAE, living in the world.

승무원 시절에는 늘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기에,

한국에서 태어났고, 중국에서 공부했고, 일은 UAE에서 했으며(당시엔 ing라고 썼었지만), 세계에서 산다고 표현했다.

내가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에서 살았는지 보다는 어디서든 나는 ‘나’로 나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10년 후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여전히 이곳에 있을지 또 다른 곳에 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오래전 한국을 떠나올 때 무엇을 할지 전혀 몰랐던 것처럼, 내 미래가 어떠할지 알 수 없다. 세상은 넓고, 한계란 앞으로도 나에게 없을 테니까.’

이 문장도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전 신입 승무원으로 아부다비에 첫 발을 디뎠던 나는 10년 후의 내가 한국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150 여개국의 다양한 동료 승무원들과 손님들, 50여 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못하는 것을 너는 할 수 있고, 네가 못하는 것을 나는 할 수 있어. 우리는 다 달라. 그리고 나와 다른 너를 존중해'라며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운 것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물론 낭만도 있지만, 현실적인 벽이 꽤나 높다.

내가 스스로를 외국인 노동자라고 불렀듯, 저자의 말처럼 자신이 받은 교육 수준보다 훨씬 낮추어 구직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고,

외모가 달라 대놓고 무시당하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특히 언어의 장벽은 한국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한없이 부족한,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지만 가장 높은 벽이다.

이 책은 해외 생활을 환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높은 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그 벽을 넘어온 사람의 이야기라 오히려 더 믿음직스럽다.

해외 생활을 꿈꾸고 있다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상상보다 더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해외 생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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