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었던 내가 날개를 잃었던 날

by Giagraphy



태도가 곧 경쟁력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도전이나 고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떤 태도를 갖는가에 따라 그 이후의 길이 확 갈리죠.

- 최인아,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중



아마 나와 나의 옛 동료들은 그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를 누비며 화려한 삶을 살던 승무원 시절의 나.

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COVID19.

내 세상은 순식간에 변했다.

우리는 베이스인 아부다비에서 마트와 약국이 아니면 외출이 금지되는 코호트 격리를 해야 했고

타지에 갇혀버린 이들을 고향으로 보내주기 위한 비행만 아주 간간이 있을 뿐이었다.

이 사태에 맞서 회사는 큰 결정을 내렸고, 전사에 공지가 내려졌다.

내일, 전체 직원 중 3분의 2는 메일을 받을 것이며, 그 메일을 받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고 통보였다.

아니, 우린 모두 계약직이었으니 계약해지 통보였다.


원래 주사 맞기 전 아프지 말라고 엉덩이 톡톡 두드려줄 때가 제일 무섭다.

커뮤니티에선 몇 시쯤 메일을 보낼 것이라는 예상을 하거나,

어느 직군에서 많이 나올 거라거나,

혹은 언어별로 최소인원만 남길 거라거나,

각종 예측이 오고 갔다.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

메일을 받으면? 혹은 안 받으면?

나만 떠나야 한다면? 나만 남아야 한다면?

여러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돌려보았다.

갑자기 너무 피곤했다.

그래,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보자.


밤 사이 커뮤니티는 더욱 뜨거워져있었고,

친구들과 단톡방의 읽지 않은 메시지도 300이 떠있었다.

나만 너무 태평하게 자고 일어난 걸까.

어쩌면 회피였을까?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걱정해 봤자 당장은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나도 어딘가 불안했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비하며 걱정하는 것보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음 계획을 세우자고 생각했다.


나의 태평함도 잠시,

날이 밝아오고 주위에서 다들 초조해하니 나도 덩달아 초조해졌다.

언제 메일이 올까?

해당이 안 되는 사람도 메일을 받을까?

정말 나일까?

진동이 울릴 때마다 내 심장도 철렁했다.


하나 둘, 메일을 받았다는 인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잔뜩 긴장한 채 무한 새로고침을 반복하고 있는데,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아…” 하고 카톡을 보냈다.

그 한 글자에 무너지고 말았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손가락이 떨렸다.

차마 그 알림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한번 새로고침을 했다.

아…


메일의 내용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Unfortunately”, 한 단어만 보였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잠깐 숨이 안 쉬어졌다.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나도 모르게 울컥 의미 모를 눈물이 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눈물은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줄 수는 없었다.

일단 한국을 가야겠지.

원래는 계속 해외생활을 하고 싶은 나였다.

하지만 이 시국에 내가 갈 수 있는 다른 곳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일단 한국에 가서 좀 쉬자.

시나리오를 돌려볼 때 생각했던 거였다.


일단 상황을 인정하고 다음의 큰 단계를 결정하니 마음이 좀 진정됐다.

그래, 어차피 내가 애초에 입사할 때 3년에서 5년 정도만 하려고 생각했었잖아.

나는 비행을 하면서도 그다음 직업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이 일을 평생 할 수는 없다고, 이다음엔 몸 쓰는 일보다 무언가 머리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비행이 너무 잘 맞고, 이 삶이 너무 편하고 익숙해서 그 챗바퀴에 갇혀있었다.

그래서 그다음 직업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의욕이 별로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어라, 지금이 기회일지도?

그동안 미뤄왔던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내 등을 떠밀어주는 걸까?

오히려 잘 된 일인 것 같기도 해.

한국 가서 엄마 밥 먹고 푹 쉬면서 이제 뭐 해먹고 살지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해 보지 뭐.

지금은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결정하려고 하지는 말자.


그동안 누려왔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

가장 친한 입사 동기를 혼자만 두고 떠난다는 것.

섭섭하다, 아쉽다, 이런 형용사들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6년 동안 ‘today is my last duty’라고 말하는 동료들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낀 채 일했던 그 비행이 나의 마지막 비행일 줄이야.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여행으로는 처음 가본 인도가 나의 마지막 여행일 줄이야.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했지만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은 생각보다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더더욱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했다.

그래, 유니폼에 마스크와 비닐장갑이라는 상황이 너무 신기하고 웃겨서 사진을 많이 찍어서 다행이다.

보통 일 할 때 사진을 잘 안 찍는데, 내 마지막 비행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친구 결혼식에서 축무를 해주려고 한 달 넘게 연습했는데, 자료화면으로만 보여줄 뻔했다.

인도의 결혼식은 나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라 영상을 많이 찍었는데, 그것도 너무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분명 긍정적일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찾지 않으면 내내 그 상황에서 슬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늘 세상이 내게 보내는 도전을 그렇게 묵묵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럴 때 보면 MBTI가 절대적인 건 아니긴 한 것 같다.

나는 대문자 F지만, 그런 상황이 닥치면 T의 사고를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그 고비를 넘어서있다.

그것이 다사다난한 내 세상을 살아온 나만의 방식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의 저자 최인아 작가는 ‘태도가 경쟁력이다’라고 했다.

세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도전이나 고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떤 태도를 갖는가에 따라 삶이 바뀐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에 어떤 태도를 갖는지가 특히 마흔 이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니체는 “나는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자꾸자꾸 배우고 싶다.

그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나는 이 책을 보기 훨씬 전부터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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