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법을 모르는 나에게
서울 지하철 노선 중 가장 인구 밀도가 높다는 9호선을 타고 퇴근한다.
한 시간 넘게 사람들 사이에서 밀리고 밀리며 어떻게든 서있으려고 애쓰다 보면,
안 그래도 회사에서 에너지를 반 넘게 깎아먹고 왔는데 더더욱 녹초가 된다.
그렇게 집에 들어오면, 바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다.
외출복으론 침대에 올라가지 않는 까탈스러움 때문에 그나마 옷은 갈아입고서 침대에 뻗는다.
머릿속에 투두리스트는 잔뜩인데,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누워서 멍 때리다 옆을 보니, 방금 벗어둔 옷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건조대는 접힐 생각이 없고, 빨래는 그냥 의자에 쌓여가고, 화장대도 지저분하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괜스레 인스타를 들어가 보고, 쓸데없이 쇼핑 어플을 켠다.
집은 내 마음의 상태를 반영한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집이 어지러운 적이 예전에도 있었나?
내가 그렇게 깔끔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 정도까지 온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치울 시간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서 가만히 쉬는 날에도 치워야 한다는 생각만 있을 뿐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그저 누워있고만 싶었다.
번아웃.
그 녀석이 찾아온 듯하다.
작년의 나는 거의 한 달에 두 번씩 마라톤을 나갔다.
주말은 거의 반납한 셈이다.
물론 평일도 뭔가 항상 일정이 있었고, 내 캘린더는 늘 빽빽했다.
그 와중에 편집은 또 해야 했으니 출퇴근길은 편집하기 바빴다.
“도대체 언제 그걸 다 해?”
사람들은 항상 내게 말했다.
퇴근하고 집 가서 밥 먹고 자기도 바쁜데 어떻게 그걸 다 하냐고, 진짜 대단하다고.
스스로도 그렇게 시간 쪼개가며 24시간 알차게 보내는 모습을 뿌듯하게 여겼던 것 같다.
이런 나, 너무 멋져.라고.
그렇게 에너지를 너무 끌어다 쓴 탓일까?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은데 그중 무엇도 시작할 엄두를 못 낸다.
한번 멈추니 다시 시작하기 어려운, 관성의 법칙 때문일까?
살짝의 부상이 있어 3주째 못 뛰었는데, 아마도 그래서 더 그런 걸까?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해서?
뭐가 됐든, 지금은 하나도 스스로가 멋지지 않다.
금요일 밤, 그날도 침대에 누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무거운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미루고 미루다 밤 11시에 헬스장을 갔다.
이럴 줄 알고 24시간 헬스장을 등록했지.
그 시간에도 열정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도 모르게 홀린 듯 2시간이나 운동해 버렸다.
아, 집에서 나오는 그 한 걸음이었구나.
헬스도, 러닝도, 편집도, 글쓰기도-
뭐든 한번 시작하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들이고, 하다 보면 재밌어서 혹은 욕심나서 애초 생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다.
그래서 뭐든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구나.
한번 시작하면 그걸 열심히 하게 될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시작이 부담스러웠던 거다.
지금 나의 에너지로는 감당하기 벅차다고 미리 예상해 버리니까.
사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진작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저 그 한걸음이 무서웠던 거다.
정말 조금만, 그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데, 내 욕심이 그걸 못 참을 걸 아니까.
멈출 줄 모르는 스스로를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까…
더 웃긴 건, 지금 이 생각을 하면서 이 생각마저도 글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다.
내가 봐도 정말 어이가 없다.
참 독하긴 해.
진짜 난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