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따릉이 같은 삶을 살겠다

<통찰의 시간>을 읽고

by Giagraphy


나는 내가 공감 능력이 꽤나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통찰의 시간’에서 신수정 작가는, 공감은 1. 상대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2. 비판적 입장을 취하지 않으며 3.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4. 상대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 순간 뒤통수가 얼얼했다.

나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비판을 참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은데..

공감은 상대편으로 가는 것이며 연민은 선을 그은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나는 정말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을 했던 게 맞을까?

때때로 내가 더 높은 곳에서 상대방을 내려다보며 공감 아닌 연민을 해왔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 잊지 말자.

나는 남들과 다를 뿐, 더 잘난 것은 아니다.


정해진 노선을 벗어나지 않는 기차, 약간의 융통성이 있는 버스, 다양한 길을 가는 택시.

작가는 교통수단으로 인생을 비유했다.

그럼 나는 어떤 교통수단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따릉이’를 떠올렸다.

따릉이는 주로 단거리 이동 시에 사용하고, 계속 바꿔 탈 수 있고, 대여 시간의 한계가 있어 길게 타지 못 한다.

특히나 다른 교통수단들은 이동 그 자체를 위해서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따릉이는 힐링을 위해서도 탄다.

적다 보니 어쩐지, 지금의 내 삶이라기보단 내가 되고 싶은 삶이 더 맞는 것 같다.

목적지보다 이동 자체를 즐기는 삶.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에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삶을 택하라!"

이 문장은 정말로 나의 러닝 가치관을 그대로 담은 말이다.

나는 죽도록 뛰어서 행복해지려는 게 아니라, 뛰는 그 순간이 즐겁기를 바란다.


따릉이를 타고 한강을 달리듯,

이동을 하면서도 주위를 바라보며,

때때로 빨리 가기도 하고 사진 찍으려고 멈추기도 하고,

더 빠른 자전거나 길 건너는 보행자를 위해 속도를 줄이기도 하는.

주행시간이 고되든 행복하든,

정해진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하고,

시간이 다 되었을 때는 그 자리에 모든 걸 내려두고 행복한 마음만 가지고 홀가분히 떠날 수 있는.

나는 그런 삶을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