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커리어, 하지만 현실은 예상 밖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매일이 설렐 줄 알았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진심이었던 꿈이었으니까.
무대와 공연자, 그리고 관객이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을 사랑했다.
하지만 직접 무대에 설 재능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마법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공연 마케터'라는 길이 내게 딱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무조건 시작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작은 공연사라도 괜찮다고, 일단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진심이었기에, 더 깊이 실망할 줄은 몰랐다.
입사한 곳은 소규모 공연회사였다.
대표님은 공연을 만드는 제작자였고, 이사님은 회사의 재정과 운영을 총괄하는 분이었다.
그 외에는 20대 초중반의 어린 직원들이 전부였다.
첫 출근 날, 이사님이 내 이력을 보며 말했다.
“해외 공연 마케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영어로 정리해와요.”
입사 첫날 받은 건 업무 매뉴얼이 아닌 영문 레포트 과제였다.
중국 해외마케팅 담당자로 입사했지만,
영문학 전공을 보신 것이었을까.
업무 지시인지, 나를 시험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회생활 첫걸음이니, 시키는 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밤을 새워 자료를 찾아 정리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아침, 펜과 노트를 들고 이사님 방으로 출근했다.
이사님이 말로 전한 내용을 영어 이메일로 정리해 전송하는 일.
딱히 피드백도, 대화도 없었다.
그게 나의 ‘정규 업무’였다.
함께 일하며 실무를 배울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의지할 수 있었던 건, 나보다 세 달 먼저 입사한 신입 직원 한 명.
일본 해외 마케팅 담당하는 그 동료 역시 정해진 매뉴얼도 가이드라인도 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가 해오던 일은 단순했다.
여행사 리스트를 만들고,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해서 우리 공연을 소개하는 것.
나는 매일 혼란스러웠다.
내가 그리던 공연 마케팅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회사에선 아무도 방향을 잡아주지 않았고, 혼자서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하며 버텼다.
게다가 대표는 노골적인 편애를 보였다.
그 동료는 ‘인서울 출신’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칼퇴근을 해도 아무 말 없었다.
하지만 나나 다른 직원이 퇴근하면 반드시 한마디씩 했다.
업무가 힘든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 납득되지 않는 기준 앞에 서야 하는 건 달랐다.
자존심이 스크래치 나는 순간이 쌓였다.
내가 감당해야 했던 건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평가였다.
배경으로 나를 판단하고, 내가 아닌 조건으로 나를 구분지을 때,
내 마음은 점점 식어갔다.
‘이게 내가 원했던 일이 맞나?’
‘내가 그리던 꿈은 이런 거였나?’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버티고 싶었다. 진심으로.
어느 순간부터 그 '버팀'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회사에 다녀오면, 내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인걸까?
우물 안에서 세상을 다 안다고 믿었던 그 시절의 황소 개구리.
무너진 건 자만뿐만이 아니었다.
약해진 마음은 현실 앞에서 더 처절하게 무너졌다.
결국, 입사 3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도망치듯 나오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죄책감이 남았다.
사회인으로써의 첫도전이 실패했다.
지금까지 내 선택은 이렇게 허망하게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무너진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았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지금도 가끔 그 이사님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분은 정말로 나를 키워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걸 받아낼 만큼 단단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만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택했다.
하지만 결국 나를 지켜주는 건 잘하는 일이 아닐까.
좋아하는 걸 좋아하기만 하기에도,
세상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공연 마케팅이,
브로드웨이에 한국 공연 전용 극장을 세우겠다는
내 인생 목표의 첫걸음이라고 믿었다.
덕업일치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지킬 수 없다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배웠다.
꿈을 이루는 방법은 꼭 한 가지일 필요는 없다는 걸.
그래서 결심했다.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마음으로 간직하기로.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나를 지키고 내 자리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