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그나마 황소개구리였다

중국 유학생이 돌아온 한국에서 깨달은 현실

by Giagraphy


특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 자존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땐 몰랐다, 내가 특별한 줄 알았다


“복단대 전마담.”
중국 내 한인 유학생이 가장 많았던 우리 학교에서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동아리에서 회장을 맡고,
학교 안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활발했다.
중국어와 영어도 제법 잘했고,
각종 활동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졸업하기도 전에 현지의 한국 회사로부터
꽤 나쁘지 않은 조건의 러브콜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잘난 줄 알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외국어 실력도 있고, 활동 경험도 풍부하니
취업쯤은 어렵지 않을 거라 믿었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내 기대보다 훨씬 차가웠다.
지원한 회사들은 ‘중국 명문대’라는 이력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중국에서 학교 다녔다고요?”
그 말은 호기심보다는 의문에 가까웠다.


내가 자랑스럽게 말하던 학교의 세계 순위나
교환학생이 아닌 정규 학위라는 점도
누구에게도 특별하게 들리지 않았다.


외국어 실력도 마찬가지였다.
지원자 대부분이 영어 공인 성적쯤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었고,
거기에 제2외국어도 능통했다.
심지어 그들은 언어 전공자도 아니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그나마 조금 몸집이 큰, 황소개구리 정도였을 뿐.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현실이 냉정하단 걸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이나 할 순 없었다.


공연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중국 유학 시절, 나는 사물놀이 동아리 활동을 했다.
우리는 상하이 유일의 풍물패였기에
상하이와 근교 도시에서 열리는 한국 관련 행사마다

우리의 공연이 빠지지 않았다.


무대에서 우리의 공연을 펼칠 때면,

이방인의 땅이라는 사실에 더 강하게 애국심을 느꼈고,

그 무대를 함께 만든 경험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국 공연을 해외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은 공연 마케팅이라는 길로 이어졌다.


대기업 문화 마케팅은 아니더라도,
작은 곳에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본다는 것.
그건 현실에 좌절한 나를
그나마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믿음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첫 회사,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또다시 방향을 바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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