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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Aug 28. 2019

박범신공동체 ‘유리걸식’ & 논산 ‘동고동락’

- 박범신43번째소설 『유리』출판기념회

문인에 대한 기사를 쓸 때, 신경이 쓰인다, 것도 바짝!
그러나 어쩌랴... 인문, 예술, 과학, 농업, 유통... 

내 입맛과 관심사만 내게 오는 세상이 아니다. 

어쨌거나 써내야 한다. 것도 초읽기에 몰린 바둑기사처럼, 처삼촌 묘 벌초하듯이라도~

와중에도.... 굴지의 소설가 관련 기사는정성을 좀더 아니 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였을까, 

논산의 양대산맥 박범신 & 김홍신 

두 진영에서 

2 진영 기자의 기사에 대하여 과찬을 들었다. 

직접화법보다는 간접감탄문으로....


나는 아직 모른다, 박작가의 개인 연락처를....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쓸 때는 신경 쓰지만, 지나면 잊혀진다. 

앞으로 달려갈 길이 또 열리니까~~


다만 또 만난다. 

일전 강경야행 오밤중을 수놓은 두 작가 이야기를 올리려 하니까  생각난다.

"아, 그때 출판기념회 때 써 놨던 거.....!"



지난 달 29일(2018년) 논산노블레스 웨딩홀에서 박범신 43번째 장편소설 『유리』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출판기념회라 하면, 좀 어색한 게 있다. 어딘지 모르게 정형화되어 있다는 선입견에서이다. 이번 출판기념회는 궤를 좀 달리한 분위기였다. 일단 주최자가 본인이나 문학가, 예술가, 더더군다나 시청 같은 관 주도가 아니었다. 팬클럽도 아닌, 인간 박범신을 사랑하는 논산시민이었다. 


사회도 유명인사에 걸맞는 세련된 아나운서가 아니었다. VIP나 지역 유지들을 초청 대상으로 한 것은 대동소이하였다. 순서 후반, 박범신 작가는 단에 오르자마자 큰 절부터 하였다. 이유가 있었다. 집필활동에 집중하기 해서, 고향사람이나 유지가 연락이 와도 무심하게 지냈던 세월들이 미안하여서, 이렇게나마 한번 전체를 초대하고 아버지에게 절하듯 고향 어르신과 시민들에게 큰 절 한번 올리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탑정리 박범신 창작집필관


논산 시민을 향한 대화는 이어졌다. 집필활동은 여전히 탑정리에서 하지만, 잠은 강경에서 아파트 하나 얻어 거기서 잔다고 밝힌다. 논산시민이 내주는 세금이 미안하여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근 공주는 박찬호와 박세리가 자랑이다. 박찬호 야구장도 있다. 대한민국 지자체는 이외수 같은 이를 유치하지 못해서 혈안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웬만한 농산물 브랜드보다, 유명인사 한 사람 입성시키면 그 효과를 계량화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러저런 대외적 효과에 비하면 세금의 액수가 조족지혈이겠건만, 박범신 본인은 그것마저 불편했던 모양이다. 


오늘 출판기념회에서 주최측에서 선물로까지 나누어준 『유리』의 부제가 눈길을 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맨발에 관한 전설”. 무정부주의자을 뜻하는 단어 ‘아나키스트’에 대한 오해가 있다. 정부를 타도하고 파괴하는 쪽의 분위기로만 읽혀진 탓이다. 각자의 입맛이겠지만 ‘단독자, 자유주의자’로도 번역 가능한 뉘앙스이다. “박범신은 박범신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닌, 박범신 자체이다.”는 선언은 그의 명지대 교수시절 일화로 갈음한다. 학생들을열심히 가르쳤다. 소설가가 교수 자리에 오르면 먹고 살만하니까 붓을 놓기 십상이지만, 그는 연필을 더 깎았다. 교수회의에는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 짤려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명지재단에서 일은 하지만, 거기에 소속될 수는 없어서였다. 


논산시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사람의 논산시민이요 고향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청의 정책에 귀속될 수는 없다. 이번 유리 출판기념회는, 실은 세 번째이다. 작년 11월 28일 1판 1쇄를 찍었으니 그 타이밍에 비하면 늦었다. 이미 서울에서 조촐하게, 아주 간소하게 하였던 것이다. 거기 참석했던 15명 중에는 현직 국회의장이 들어 있었다. MVP 신분으로가 아니라, 절친으로서이다. 박범신, 결코 정치인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를 야당으로 분류한다. 성향이 그러할지라도, 그는 여당 야당을 싸잡아서 맹비난한다. “지방 선거 후보가 왜 정당을 앞장세워서 나와야 하느냐? 이 폐단을 누구라도 잘 알기에 정당마다 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실천하는 당은 하나도 없다.” 지자체 일꾼들 뽑는 자리니만큼, 당의 지령에 따를 게 아니라 자유롭게, 소신있게 일해 나갈 동네 일꾼들이 편견 없이 나와야 한다는 아나키스트적 발언이다. 


이런 소신에서 엿볼 수 있듯, 박범신의 세계는 현실적이다 못해 지독히 현실적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솔직하다. 은교에서처럼 분신으로 주인공을 내세우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고향? 솔직히 되돌아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습니다. 멋진 추억보다는 고생스럽고 징그러웠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의 고향 사랑도 어쩔 수 없는 천형 같다. 그가 논산시에서 마련해준 탑정리 창작집필관에 입주한 것은 2011년 11월, 어느새 6년을 넘어 7년째로 접어들었다. 그의 표현대로, 나이도 한참 아래인 황명선 사또가 어느날 찾아와 그 특유의 살가운 투로 “형님.....” 이 한 마디에 녹아났다는 것이다. 논산시에서는 논산출신 박범신 작가가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직 정년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집필에만 전념하기 위해 집필실을 찾는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워낙 지명도가 있다 보니 여러 지역에서 호조건으로 영입을 공들였으나, 결국 고향땅 논산 사또의 삼고초려에 무너진 것이다. 


귀향 후 창작집필관에서 “논산일기-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에 이어 정식출판기념회는 제 40번째 소설 『소금』으로 하였다. 전적으로 논산에 바친 헌시이자 헌서였다. 2014년 『소소한 풍경』 2015년『당신』외에도 『주름』,『힐링』 등이 논산에서 태어났고, 주배경은 논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표현대로, 전국구로서 책장사를 하기 위해 ‘채운산’은 ‘운채산’으로 바꾸는 등 특정 지역 홍보대사라는 선입관 지우는 작업도 병행해야 했다. 그런다고 손바닥이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 책과 방송 출연 및 전국 강연에서 논산을 홍보하며, 논산의 문화예술 브랜드를 구축하는 행보를 간단 없이 이어왔다. 작은문학제, 인문학탐방, 문학포럼 등을 통해 논산 시민과 전국 팬클럽,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이어갔다. 




박범신 문학콘텐츠연구소


이번 『유리』 출판기념회에 초대된 사람 중에는 문학인이 많았다. 지인들은 물론 논산에서 문학을 사랑하고 관심과 애정을 갖고 문화예술 활동을 하시는 분들 위주였다. 박범신 팬클럽 와사등, 글놀이, 북돋움, 일당백, 시낭송인회, 다독다독, 소공녀, 책누리, 논산독서협회 등 시민 독서 클럽이 한 갈래이고, 나머지는 부킹(Book-ing)클럽, 검색아닌사색 등 시청직원 독서클럽이다. 특히 문화예술과의 천재강 씨는 남자 중에서 유일하게 꽃다발을 증정한 애제자이면서 이번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주인공 중 하나이다. 

200여권의 책값과 저녁값을 분담한 초청인은 모두 6인이었다. 이재성 백제병원 원장, 이은세 나우리건설대표, 안행순 뉴현대건설 대표, 오근수 동양강철 상무, 이정근 우주전기 대표, 장동순 교수... 이 중에서 장동순 건양대 교수는 사회까지 보았다. “전문으로 사회보는 MC 부를 일이 뭐 있어, 자네가 사회 보면 되지?” 라는 박 작가 제언에 “나도 한 때는... ” 하면서 못 이기는 척 마이크 잡았다는 장 교수는 2년여 전 논산시청 친절행정국장으로 정년퇴직하였고, 현재 건양대 산학전문교수 재직 중이다. 


논산에서 박범신은 한지붕세가족이다. 탑정리 작업실, 강경숙소와 공원&소금집, 그리고 건양대이다. 초청인의 인사 중에 초청자 대표는 이재성 원장이 했다. 주최측인 이충무 건양대 박범신 문학콘텐츠연구소장도 인사를 했다. “이번 행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화는 예술가나 연구자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적 관심과 열정으로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논산이 갖고 있는 훌륭한 문화적 자원이 시민들의 자발적 관심과 참여로 문화적 자부심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박범신 문화콘텐츠연구소도 노력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간 박범신 문화콘텐츠연구소의 주요활동을 보면, 논산문화원과 공동 주관 인문학 탐방 ‘소풍’ 외에도 다양하다. 와초 박범신 문학제/ 문학포럼, 전국 고교 와초 백일장 등이다. 이번 1월 29일 『유리』 출판기념회는 평소 박범신 작가를 흠모하는 후배들이 뜻을 모아 ‘건양대학교 박범신 문학콘텐츠연구소’와 함께 『유리』출간을 기념하고, 박범신 작가의 소회를 듣는 자리로 추진한 것이다. 


이번 출판기념회를 빛나게 한 주역 중에 하나가 건양대 정연주 총장이었다. 5년간 KBS 사장으로서 공영방송의 위상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박작가와 본인의 우정을 너울너울 펼쳐보였다. 허허실실을 거론하면서, 본인의 외모는 실해 보이지만 허한 반면, 박작가는 버림의 경지에 도달한 종교인처럼 허하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속이 꽉 차 있음을 찬탄하였다. 40여 편의 장편과 영화화된 20여편의 작품을 부러워하면서, 박작가가 KBS 이사 시절, 인재(?)를 골라내는 탁월한 안목으로 5:4로 자신을 뽑아서 KBS 사장일을 하도록 첫 단추를 꿰게 해주었고, HD로 변환된 환경에서 TV문학관 등을 새로 제작하도록 복돋아준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하였다. 대한민국에서 칼럼니스트로서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박작가 컬럼을 읽노라면 한수 아래라는 자괴심으로 바뀌었다는 등의 소회를 피력하면서, 실은 박작가와 갑장으로서 “이런 친구를 논산에서 다시 만난 게 한없이 자랑스럽다”면서 긴 마이크 줄을 내려놓았다. 참,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보내주었던 ‘오늘’이라는 시를 곧이어 정은숙 씨가 해줄텐데, 논산에서 이런 시낭송가를 만나서 영광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늘


먼 날들이 지나가도

오늘을 기억하고 싶어요

흐린 날 채운산과 옥녀봉 사이

저기 금강의 수더분한 몸빛


오래 전 그 강물 베고 누워

젊은 그를 온전히 바다 끝으로 보내고

어머니 저 여기 돌아와 누워 있어요

얼마나 더 많은 모서리를 지나야

사람이 사랑이 되는 걸까요 

얼마나 더 진창길을 걸어야

어머니 계신 그 환한 곳 당도할까요


아우성 꽉 찬 싸가지세상이라도

쌀알 같은 평화 헛꿈이라 말하지 말기

사는 일 물에 떠내려가는 

한 장 낙엽이라 여기지 않기 


길은 끝나지 않았으니 여기서부터 

더 높고 깊은 근원을 찾아나서는 일

삶의 한살이가 기울면 

또 다른 한살이 솟아날 터


스무 살이었던가 떠날 때 보았던 

강경역사 이마 위의 가령 이런 경구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아 오늘 그리고 어머니



이어서 '책읽어주는 여자'가 나서서 소설 『유리』낭송을 시작하였다. 숙대평생교육원 시낭송학과 지도교수인 논산의 이선경 씨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서 감동이 오는 부분들을 발췌, 그 부분들만 읽어내려갔다. 책 첫머리인 프롤로그가 그 시작이었다. 


나의 오랜 귓병이 이 소설 『유리』를 만들었다.“세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읽을 줄 알았고,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갖가지 악기의 소리를 들었으며, 그것들의 감미와 슬픔을 온몸으로 이해했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내 머리맡엔 열 줄의 책꽂이가 놓여 있었고 나는 그곳의 책들을 틀린 데 없이 읽고 썼다.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서가는 몇 배로 늘어났고, 나는 말재간으로 사람들을 자유자재 웃기고 울릴 줄 알았다. 사람들은 내 혀가 유난히 길다고 말했다. 그리고 열일곱이 되었을 때 나는 마침내 또렷이 보았다. 내가 본 그것은, 나의 죽음이었다.”


실제 박 작가는 평생 귓병을 지병으로 앓아왔다고 토로한다. 어쨌거나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 유리는 유리걸식할 때의 유리(流離)이다. 이 두툼한 책에는 공동체가 세 번 등장한다. 불행히도 그 공동체는 이 소설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동고동락 공동체를 이상향으로 제시하며 공을 들이는 논산은 어떠한가? 축사에서 황명선 시장이 나섰다. “선생님을 모신 첫날, 그 집에서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냉대를 한 날”이라고 추억하면서, 긴 입담 대신 1981년에 발간된 『무엇이 죽어 새가 되는가』산문집 낭독으로 갈음하였다.          



  

문학목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


문학은 아직도 내겐 미지수였다.


나는 문학적인 분위기에 길들여져 있을 뿐이었지 그것에 감히 내 인생을 걸어 볼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았다. 문학은 분명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한 세계였지만 내겐 매우 불확실한 세계로 보였던 것이다. 


그해, 나는 최초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또렷한 의지보다도 상금이나 타서 연 탄 때는 방이라도 얻을 수 있었으면 하고 요행수를 바랐던 것 같은데, 응모된 작품은 당연히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신춘문예 응모야말로 내 인생에서는 아주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다음해부터 11월이 되어 찬바람 휙휙 불기 시작하면, 가슴 설레고 괜치 초조해 하는 버릇이 붙었던 것이다. 이렇게 쉽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이 문학이라면, 한번 생의 전부를 거기에 걸어 봐도 좋은 게 아니겠는가.


낙선의 경험들은 내게 아주 소중한, 오히려 문학 속에 나를 더욱 강하게 밀어 넣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나는 차츰 문학의 세계로 내 모든 것들을 근접시키는 일에 몰두하였다. 내가 올가미로 목을 매달고 죽어도 좋을 그런 나무쯤으로 나는 문학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원고지와 마주 앉아 고통 받을 때 진실로 살아 있다는 실감을 느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행복한 실감이었다. 다시 말해, 문학으로 하여 나는 절망적이었던 저 이십대의 강을 죽지 않고 건널 수 있었던 것이다.


신춘문예 응모 다섯 번째, 73년에 나는 『여름의 잔해』라는 작품으로 중앙일보에 당선되었다. 남들은 그때부터 나를 작가라 불렀고 나는 작가가 되고자 노력했으며, 그것이 내 인생의 변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다만 외롭고 허망하다는 절망감의 극복은 아직도 요원하지만.


무엇이 죽어 새가 되는가중에서



공동체에 대한 화두는『유리』작품평을 맡은 류보선 평론가의 입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박범신 문학콘텐츠 객원연구원이기도 한 류보선 군산대 교수는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의 이 자리가, 그리고 지금의 이 풍경이 저에겐 아주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아마도 한 문학작품의 출간을 기념하고 기리는 출판기념회가 ‘문인들의 모임’ 혹은 ‘문단사람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카니발’에 가깝기 때문일 겁니다. 솔직히 처음 접하는 풍경이고 제가 경험한 출판기념회 중 가장 풍성한 잔치입니다. ‘황산벌청년문학상’을 통해 논산의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여러번 경험한 터라 그런지, 이 대목에서 저는 다시 한 번 논산의 유구하고 면면한 문화적 품격과 문학적 잠재성을 엿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논산이 이 정도의 문화적 관심을 유지한다는 것이, 아니 이 정도의 문화적 품격을 유지하는 논산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부럽고 합니다. 앞선 문장에서의 논산을 군산으로 고쳐 읽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중략)


우선 박범신 선생의『유리』는, 문학작품을 문학적으로 읽지 않는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수많은 작가들이 자기검열에 걸려 자신의 상상력을 스스로 가두고 있는 이 시점에, 보란 듯 우리 시대의 금기들과 용기 있게 정면대결을 펼치는 작품입니다. 해서 자칫 비문학적인 이유로 논란이 되고 쟁점이 될 만한 수많은 사건들과 디테일들을 작가로서의 자존과 결단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냅니다. 이렇게 문학적 진리를 구현하려는 용기와 문학적 상상력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은『유리』 덕분에 한국문학은 세상의 금기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략)


-류보선 군산대 교수



대체 이게 게 무슨 말인가? 고개 갸웃할 분들은 세계일보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의 서평이 '책읽어주는 남자'일 성싶다. 


『유리(流離)』는 제목 그대로 떠도는 자의 이야기다. 1915년에 태어나 2015년에 죽은, 동아시아 100년을 살아낸 『유리』라는 인물이 한반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만주 벌판과 티베트를 지나 서역의 사막까지 다녀온 광활한 이야기다. 한국과 중국 일본 삼국을 수로국, 대지국, 화인국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상상력을 구속하지 않도록 설정한 뒤 판타지와 우화를 섞어 대하서사시처럼 유려하게 풀어간다. 이 작품은 대만 최고 권위의 문예지 ‘INK’와 한국에서 동시 연재한 뒤 책을 내기로 작정하고 모바일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 2016년 3월부터 6개월가량 연재했던 작품이다. 올여름 대만에서는 먼저 단행본으로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작가가 500장 가량을 덧붙여 뒤늦게 출간됐다. 


그가 지난여름 추가한 500장 분량은 주로 위안부 문제를 보강하고 연재할 때는 축약했던 박정희시대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초반에는 『유리』라는 인물이 어떻게 수탈의 선봉에 선 양아버지를 죽이고 산맥을 타고 두만강을 건너 대륙으로 가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유리』가 고향에서 만난 소녀 ‘붉은 댕기’는 소설 내내 실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유리』가 궁극에 만나야 할 이상적인 사랑의 가치이자 정주의 대상으로 상정된다. 이 붉은댕기가 위안부로 끌려가고 참혹한 시련을 당한 끝에 그녀의 손녀가 늙은 ‘미스터 『유리』’의 후일담을 듣는 형식이 이 소설의 축이다. 『유리』는 어떤 집단이나 이념에도 구속당하기를 거부하는 전형적인 아나키스트의 속성을 담보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 속에서 “당파를 이루면 이념을 앞세워 제도를 만들고 제도는 사람의 영혼과 삶을 가두고 옥죄기 마련”이라며 “할 수 있다면 사람을 당파적인 체계 안에 편입시켜 지배하려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싶기도 했다”고 토로한다. 어떠한 것에도 구속당하기를 거부하는 『유리』의 캐릭터는 박범신의 분신이기도 하다.


조용호 세계일보 문학전문 기자



1946년 연무에서 태어난 박범신 작가의 무수한 작품들은 논산문화원에 대형벽화처럼 붙어 있다. 그 제목을 읽어내리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이다. 40여편의 장편은 대부분 베스트셀러이고, 절반이 극화되거나 영화화될 정도이다. 그 중 한 권『풀잎처럼 눕다』가 있다. 한자로는 누울 와臥, 풀 초草... 그래서 그의 블로그 주소가 와초(臥草)이다. ‘디지털 글’도 거침없이 넘나드는 박범신! 콘텐츠뿐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그는 여전히 청년 작가이다. 논산에 대한, 논산공동체에 대한 신선한 도전이다. 


[글·사진] 이지녕


위 글은  『놀뫼신문』 2018-02-07일자에 실렸습니다. 



[박범신43번째소설 『유리』출판기념회]

박범신공동체 ‘유리걸식’ & 논산 ‘동고동락’

https://nmn.ff.or.kr/17/?idx=515032&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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