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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Aug 20. 2019

대한민국 이끌어온 주체는 민(民)과 의병(義兵)

- 3·1운동100주년기념 기획시리즈-12

일본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규제를 단행하였다. 후속 조치도 뒤따랐다. ‘미스터 션샤인(이하 『미·션』)’에서 반짝 등장했던 흑룡회가 연상되는 아베 신조는 지난 8월 2일 각의를 열었다. 그 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조치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1100여개 품목의 수출 절차가 개별허가제로 전환된다. 식품,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일본 경제산업성의 수출허가 개별심사를 받는다. 본격적 경제전쟁을 알리는 이 개정안은 8월 28일 시행된다. 경술국치일인 8월 29일 하루 전이다. 


논산과 계룡에서 일어난 일본제품 불매운동 


이러한 정세에서 그 동안 논산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대일 관련 동향을 일자별로 일별해본다. 

[7월 23일] 황명선 논산시장은 일본 아베정부의 일방적 경제보복조치 철회를 촉구하였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공동대표인 황명선 논산시장은 국회 정론관에서 일본 경제보복조치 등과 관련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논산시는 수출규제조치가 철회될 때까지 공무수행을 위한 일본방문, 공무원 파견 및 인사교류를 잠정 중단키로 하고 일본 우호협력도시인 시즈오카현 코텐바시와의 청소년 문화교류 계획도 취소했다. 매년 추진해왔던 1500명 규모의 중학생 일본 글로벌 해외연수도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8월 5일 황명선 논산시장 주재로 열린 논산시 국장 및 실과소장 회의에서 못을 박았다. 

[7월 23일] 같은 날 논산시의회(의장 김진호)는 제205회 임시회에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규탄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8월에 들어서 5일 오전 논산시장 국과장 회의에서 일본에 대한 대응책을 전반적으로 마련해나갈 때 논산의 민간단체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 위주로 반일운동을 펼쳐나갔다. 

[8월 5일] 논산자율방범대(대장 김재현) 일본제품 불매운동 가두 캠페인

[8월 6일] 논산시여성단체협의회(회장 우민자) 회원 및 YWCA(회장 이미형) 회원 50여명, 일본제품 불매운동 캠페인

[8월 7일] 논산시이통장연합회(회장 고석일) 임원 50여명 시청 회의실에서 열린 이통장연합회 월례회의서 일본제품불매운동 성명서 발표

이후에도 취암동 번영회, 바르게살기취암동위원회, 남부상인회 등이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가세했다. 

[8월 15일] 돌체에서 열린 취암동번영회 월례회때 50여 회원이 일본제품 불매운동 성명서 발표(불매운동 현수막 50개 내걸음).


계룡시도 논산시와 앞서거니 뒤서거니다. 7월 중 계룡시공무원노조(김진태 지부장)는 일본규탄현수막을 게시하였다.

[7월 10일] 계룡시 금암동 파워마트 일본제품 판매중단 현수막 게시

[7월 26일] 계룡시의회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정부가 취한 수출규제에 대하여 경제보복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즉각 철회하라는 결의문 발표

[7월 30일] 계룡시여성단체협의회(회장 임미순) 40여명 엄사사거리에서 일본규탄성명서 발표 및 일본제품 불매운동 동참 거리캠페인 펼침.

[8월 15일] 계룡시민과 함께하는 한마음음악회(주관 계룡청년회 회장 이선희)에서 “일본제품불매운동 노재팬” 현수막 게시하고  무대장식. 홍보물 배부.


가족과 함께 둘러볼 만한 도내 독립운동 관련 생가지와 기념관 시설 현황은 위와 같다.     

‘독립운동가 독립의길 투어’


일본제품 불매 운동과 일본안가기 No Japan에 대한 현실적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반일(反日)과 함께 병행해야 할 것이 지일(知日), 극일(克日)이기 때문이다. 감성쪽에만 호소하는 반일은 자칫 한계에 봉착할 수 있어서이다. 


차제에 일본에 대하여 경제독립을 선언하려면 기성세대의 목청 못지않게 신세대의 교육이 양날의 검이다. 충청남도 사회복지과에서는 올해 최초로 “독립운동가 독립의길 투어 현장학습 체험” 활동을 기획하였다. 다음달부터 전개될 이 행사에 충남도 청소년들을 모집중이다. 그 진행을 사단법인 한국효도회 계룡시지역회가 추진중이다. 충남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독립의 길 투어 현장학습을 떠나는 이 여정은 200명이 5회로 나누어 실시한다. 날짜는 9월 18(수), 20(금), 24(화), 28(토), 30(월)이다. 아침  8시에 집결하여 오후 6시까지 10시간 소요되는 코스이다.  탐방코스는 충남보훈관(홍성), 만해한용운선생생가(홍성), 충의사(윤봉길 의사, 예산), 숭의사(이철영, 공주), 임병직 박사생가(부여), 유관순열사기념관(천안), 독립기념관(천안) 등이다. 


신청은 단체 신청, 개인 신청 나누어서 받는데, 단체 160명, 개인 40명으로 모두 참가비는 없다. 모집기한은 8월 26일까지이며, 5회 중에서 개인 신청자(40명)은 9월 28일(토)로 예정되어 있다. 자세한 문의는 (사)한국효도회계룡시지역회 (회장 김선국:010-5455-2120)나 충남도청 사회복지과 (041-635-3543, 041-635-4253) 또는 충남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독립의 길 투어 검색하면 신청안내가 뜬다. (http://www.chungnam.go.kr/media/content.do?mnu_cd=CNNMENU02402) 여기서 다운받은 신청서는  

ki3456@hanmail.net로 제출하면 된다.     




선샤인스튜디오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속 역사이야기展


선샤인랜드에서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 속 역사이야기』기획전이 열린다. 지난 광복절에 문을 열었으며 올해 말 12월 31일까지다. ‘선샤인스튜디오’ 내에 있는 “한성전기”가 그 현장이다. 


선샤인스튜디오는 지난 6월 7일 국내 최고의 역사만화가 박시백 화백을 초청하여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특강을 하였다. 그 특강 장소가 바로 선샤인스튜디오 한성전기였다. 이번 기획전 역시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며, 선샤인스튜디오가 주관한 이 전시회는 충청남도교육청, 민족문제연구소가 후원한다. 


‘드라마 속 역사이야기전(展)’은 3·1 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역사 교육 전시로 드라마 『미·션』의 주요 장면에 대하여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 역사의 암흑기랄 수도 있었던 개화기의 뼈아픈 역사에 서치라이트를 비춤으로써 당시의 암울함과 희망을 동시에 낚아올리는 문답의 자리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 던져진 질문은 모두 11가지다. 


1. 검은머리 외국인, ‘유진 초이’는 실존 인물일까?

2. 무신회의 모델이 된 ‘흑룡회’란?

3. 글로리호텔의 모델인 ‘손탁호텔’의 주인은?

4. 당시에 과연 모두가 아무개고, 의병이었을까?

5. 고종의 예치금 증서는 실제 존재했을까?

6. 당시 의병들은 어떤 총을 사용했을까?

7. 충격과도 같았을 최초의 가로등 점등식의 풍경은?

8. 김희성이 촬영했던 을사오적, 누구였을까?

9. 여학생을 위해 설립된 최초의 학교는?

10. 한국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3·1운동 탄압의 주역?

11. 마지막 감동, 의병 사진이야기


그 답이 하나하나 다 궁금하지만, 『미·션』의 실질적 주인공인 민병(民兵), 의병(義兵)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답한다. 


당시에 과연 모두가 아무개고모두가 의병이었을까?

 

한 세기 전 의병들 모습 / 독립기념관

처음 의병이 일어난 것은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략해 무력으로 점령한 갑오변란 때였습니다. 1895년에는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일본의 무자비한 만행에 격분한 양반 유생들이 중심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전개된 을사의병,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정미7조약 체결 및 군대해산을 계기로 정미의병까지 의병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정미의병 당시에는 해산당한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들의 전투력과 조직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양반 유생들이 의병장이 되어 농민들을 이끌고 의병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러다 점차 평민과 농민들이 대거 의병전쟁에 참여하면서 농민들 중 일부가 의병전쟁의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의병전쟁이 전국화한 정미의병 이후에는 해산 군인과 평민들이 주도했습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 즉 평민, 민중이 이끄는 의병전쟁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들은 일본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본군에 무참하게 진압되거나 학살당했지만, ‘아무개들’의 의병전쟁은 이후 간도와 연해주 등지에서 항일독립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의병들은 어떤 총을 사용했을까? 


 

위에서부터 화승총, 윈체스터, 모신나강(좌편)과   의병들이 사용한 무기 / 국가보훈처(우편)

                 

데일리 메일의 종군기자였던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는 의병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섯 사람이 다섯 종류의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제대로 쓸 만한 총이 없었다. 한 사람은 아주 구식의 낡은 한국 화승총을 들고 있었는데 팔에는 가늘고 긴 줄에다 도화선으로 쓰려고 불을 붙여 들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총이 대부분의 의병이 쓰고 있는 무기였다. 두 번째 사람은 구식 한국군의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구식이었다. 또 한 사람은 아주 작은 스포츠용 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모든 총은 어느 것이나 녹이 쓸어 있고 부식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보듯이, 당시 의병들의 무기는 아주 볼품없었습니다. 주로 사용한 화승총(천보총)은 유효 사거리가 불과 20m 내외였고 몇 분에 겨우 1발을 쏠 수 있었습니다. 도화선에 불을 붙여 방아쇠를 당기면 화약에 불씨가 붙어 탄환이 발사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습기가 많은 날에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군은 38식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소총은 유효 사거리가 360m이고 분당 8~10발씩 사격할 수 있었으니 의병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의병들은 유격전과 기습전, 또는 복병전으로 싸워야했습니다. ‘미스터션샤인’에서 고애신이 처음 사용한 총은 ‘윈체스터 M1894’로 가볍고 휴대에 용이하여 주로 사냥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녀가 나중에 사용한 총은 ‘모신나강 PU’[1930년대 생산됨]로 조준경이 달려 있어 저격용으로 사용되던 것입니다.

 

 마지막 감동의병 사진이야기


1907년 의병들이 일본군과 접전을 벌이던 무렵, 데일리 메일의 종군기자였던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가 경기도 양근(현 양평)에서 만난 의병들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의 저서인 『대한제국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1908)에 실려 있습니다. 맥켄지는 의병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5~6명의 의병들이 내 앞에 서서 경례를 했다. 18세부터 26세까지의 청년들이었다. 한 사람은 정규 한국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고, 한 사람은 작업복을, 이외 2~3명은 보잘 것 없는 낡은 한복 차림이었다. 허리에는 손으로 짠 광목으로 만든 탄대를 차고 있었으나 실탄은 반 밖에 없었다. 여섯 사람이 다섯 종류의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제대로 쓸 만한 총이 없었다.” 

이 사진 속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죽어야 할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소.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죽는 편이 일본의 노예로서 생명을 부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 사진 속 주인공의 이름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제라도 일제의 총칼 앞에 의연히 산화한 수많은 이름 없는 아무개들, 의병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전쟁기념관 『대한제국 무관전』

“나는 대한제국의 무관이었다”



서울 전쟁기념관 2층 특설공간(전쟁지도실 앞)에 대한제국 무관전이 개막되었다. “대한제국 군대해산 112년, 나는 대한제국의 무관이었다”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10월 말까지 전시되는 이 기획전은 대한제국 무관 3인의 인생사를 한 사람의 인생 스토리로 재구성해 놓았다. 미스터션샤인 드라마에서 보면 무관(武官)과  의병(義兵) 사이에는 하나의 연결 고리가 있다. 그러나 사실 관계가 불문명하여서 궁금증으로 남았는데, 이번 대한제국 무관전이 그 궁금증의 일단을 풀어줄 거 같다. 


 전시는 크게 「조선의 무인이 되다」, 「대한제국 무관을 꿈꾸다」, 「의병이 되기로 결심하다」 등 3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제국 무관 3인(이재화 참령, 이인팔 정위, 백남규 부위)의 단편적인 인생사를 한 사람의 인생 스토리로 풀어낸 것이다. 조선의 무인이었고, 대한제국의 군인이었으며, 군대 해산 이후에는 의병이 되었던 주인공의 일대기를 통해 구한말 당대 비운의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다.  


특히 그 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백남규 부위 관모 ․ 예복(상의)’, ‘고종황제 밀서・이준열사 유묵 표구’ 등이 최초로 공개되어 있다. 대한제국 무관 3인과 관련된 유물 15점도 함께 선보인다.


박삼득 전쟁기념관장은 “전시를 통해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무관의 고뇌를 함께 느끼며, ‘나’와 ‘군’과 ‘나라’는 하나의 운명공동체로서 서로의 존재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된 지 112년을 맞이하여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무관들의 호국정신과 상무정신을 되돌아보고자 마련했다”는 게 윤선영 기획홍보팀원의 전시 취지 설명이다. 전시 관람은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02-709-3139)


              

전시 유물



[글] 이지녕

위 글은  『놀뫼신문』  2017-08-21일자 2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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