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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Jan 27. 2019

두계장터 50년
'충남이용원 이발사' 아저씨

-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의 아랫장터 이야기

계룡면 두계리 아랫장터 한복판에 “충남이용원”이 있다. 50년 경력의 이발사가 5명의 사무장을 거느리고 있는 역사와 전통의 시골이발소이다. 전봉선 원장은 22세에 대전독립고등기술학교 일년 수료후 이용면허증을 딴다. 대전에서 2년, 두계삼거리에서 3년 정도 한 다음에 아랫장터로 들어온다. 개업 당시 초가집였는데, 91년 2층집을 지으면서 지금까지 40여년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객을 충남권으로 잡았는데 이제는 전라도에서도 올라온단다. 어느날 동창회를 가려고 문을 좀 일찍 닫으려 했더니만 트럭 끌고 온 그 손님 성질을 내더란다. “이봐요, 내가 우리 마누라 말 듣고 여기까지 일부러 올라오는데, 당장 머리 깎아줘요!” 이 해프닝 전에는 그 손님이 익산 사는지 몰랐다고 한다. 대전쪽에서 오는 단골이 40여 명이고, 논산에서는 늘 한복입은 부인과 함께 오는 손님도 인상적이란다. 


이 시골이발소는 진짜 손님보다 고정 마실꾼들로 득실댄다. 사무장을 자칭하는 이들은 순서에 따라 제일, 제2사무장...이렇게 호칭한다. 손님에게 커피도 타주고, 바닥 머리카락도 쓴다. 밥때가 되면 서로 사기도 하고 기분 좋을 때는 소주 한 잔씩 기울이기도 한다. 



주인아저씨 왈, “내가 이발소 안 했으면 간판쟁이 했을껴!”

놀기도 잘하는 다재다능 아저씨는 중국에 놀러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걱정이란다. 손님 덜 왔으면 하는 마음에 착한이발소도 밀쳐내고 가격도 조금 더 올렸건만 별무신통. 말은 이리 하면서도 주인아저씨는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에 뿌듯하단다. 30년간 동네반장을 하다가 얼마 전 반장완장 내려놨는데, 이 동네소식뿐 아니라 인근 각지의 소식도 꽉 잡고 있다. “내 얘기는 신문에 내지 말어. 대신 우리 동네에 혹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살거든. 기자니까 신문에다 내서, 그 사람 수술 좀 받게 해줘바! 이일 저일 참 잘하는데, 그 흉한 혹 평생 달고 다니니 볼 때마다 안쓰러워...”


체험 겸하여 이발을 직접 하고 나서 1000원을 토해준다. “오늘 손님이 좀 많아서 데워놓았던 물 다 떨어졌어!” 아랫장터  동네수퍼 할머니도 돌아가셨고 뚝방식당도 간판만 있을 뿐, 이제 문을 연 가게는 충남이용원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 하나만 잘 키워도 계룡면은 물론 충남의 문화 융성은 충분할 거 같다. 불씨가 굳이 클 필요가 있겠는가....



계룡시 한곳쯤은 문화거리 있어야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동네분들과 함께 아래장터 동네한바퀴를 해보았다. 지하도를 빠져나오니 벽화들이 반겨준다. 작년에 코레일에서 봉사 차원에서 해준 거란다. 벽화가 빨아들이는 동네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좁은 길은 이성계, 이도령, 호남유생들이 과거 치루러 한양 올라가던 길, 1번 국도였다. 철도건널목 관사를 비롯해 여관이 2개소, 식당 및 선술집이 5군데, 정육점, 기름, 두부, 떡집 등 생활용품 판매소가 6군데, 정미소2군데, 엿공장 2군데, 목공소, 섬유공장, 포목점, 한약방, 양복점, 대서소, 대장간 등 25개 이상의 다양한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길을 빗겨가 두계천이 흐르는 뚝방길로 접어들었다. 뚝방길에서 컴퍼스로 뺑 그려보았다. 대전 방향으로 보면  우측은 호남선 철도와 웃장터, 좌측은 계룡산에서 발원하여 대전 갑천으로 향하는 두계천, 그걸 건너면 숱한 차량들이 줄을 잇는 새로운 1번국도 논산~대전 국도이다. 


두계리는 사람들이 북적대던 근대사의 한복판이다. 웃장터, 지금은 정미소 그 자리는 면사무소였다. 주재소와 우체국이 들어서 있던 인근 각지의 센터요 명동이었다. 사계솔바람길 왕대산 주변으로 항일투사들의 생가가 즐비한 곳이다. 향토사학자 김철규 씨는 절충안을 제시해 보인다. “계룡시에는 근대도시의 원형을 보존해야 할 곳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예전 면사무소 자리가 향토박물관 세우기에 적지라고 봅니다. 예전 건물을 보전하는 것을 전제로 하되,  주민들의 피해의식과 생활경제에 대한 대책도 동시에 강구하는 방향에서 재생계획을 짜보면 바람직하겠다”는 것! 


아랫장터의 옛분위기를 살려 영화, 드라마 촬영세트장 또는 박물관 및 미술관 등의 문화공간으로 다양한 전시공간 등으로의 활용을 모색해 볼 만하다고 제시한 바 있다. 그 제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혹여라도 개발 논리에 밀려 언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다시 둘러보았다. 100여년 전 두계장에서 울려퍼지던 만세소리가 이제는 3·1문화만세 소리로 바뀌기를 기대하면서. 


[글·사진] 이지녕 


위는  『논산·계룡신문』 2017-03-08일자 4면에 실은 글입니다. 

명절 앞두고 머리 깎던 생각들이 새롭습니다. 

이 이발소는 여전히 건실하고, 주인 아저씨는 아직도 애연가랍니다요^

https://nmn.ff.or.kr/23/?idx=514321&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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