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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Jan 27. 2019

탐스럽고 푸짐한 시장빵집 『빵·숲』

- 논산화지시장 수더분한 명물 빵집

논산 화지중앙시장 ‘대우약국’ 사거리 주변에 있는 시장 빵집 『빵숲』간판부터 특이하다. “왜 빵숲이라고 지었어요?” 기자의 질문에 김학선 대표 멀쓱하니 대답한다. “빵이 많아져서 숲처럼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요.” 20여평 남짓한 빵숲은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면 빵공장이고, 유리막도 없는 전시대는 앞쪽뿐이다. 길거리쪽으로 노출되어 있는 빵들이 먹음직스럽고 푸짐 넉넉하다. 종류만 물어보니 50여 종은 넘을 거 같다고, 남의 집 얘기하듯 한다. 처음 보는 빵들도 즐비하니 이름은 더더욱 모르겠지만, 슬슬 군침이 도는 풍경이다, 빵 냄새와 함께.....


간판 위에 프랑스어 두 단어가 눈에 띈다. beau[보]는 알 거 같다. 영어 beautiful할 때의 ‘아름다운’이다. bois[부아] 불어사전을 찾아보니 ‘숲, 삼림’이다. 보조글씨로 써 있는 ‘보부아 베이커리’, 아름다운 (빵)숲이다. 불어여서인지 빠리바케트가 연상되는 순간이다. 



허름한 빵집이 우뚝 버티는 비결 


논산의 제과제빵집은 크게 둘로 구분된다. ‘빠리바케트 같은 메이커’ vs. ‘개인빵집’.  개인빵집은 대개 3~10명 정도가 일하는 소규모 빵집들이다. 논산에 10여 곳 있던 일반빵집들이 지금은 4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대신 메이커 대형빵집은 증가하여 그 숫자가 개인빵집의 두 배 정도로, 대부분 성업중이다. 


“우리 학원 애들에게 비싼 메이커 빵도 사주고 여기 빵숲 빵도 사주는데, 빵숲건 남기는 법이 없더라구요.” 이렇게 말하는 단골의 후한 점수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당사자인 주인에게 돌직구 질문을 날려 보았다. “비싸니까 아무래도 거기께 더 맛있고 좋겠죠!” 즉답 회피하는 주인 붙잡고 비결부터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재료비 더 들이지 않고는 방법이 없어요. 식빵 같은 경우 우리는 옥수수 향료를 넣지 않아요. 진짜 옥수수 가루와 알갱이를 넣으니, 맛이나 식감부터 다르겠지요?” 이 정도의 답 가지고는 성이 차지 않아 다그쳐 물으니 한참 후에 첨언한다.  “첨가물을 넣지 않으면, 균 잠입 속도가 빨라져서 빵이 빨리 굳어요. 보다시피 우리는 보관장소도 마땅찮고 이래저래 오래 놔두고 팔 상황이 아니예요. 하루 지나면 맛이 떨어진다 보고 몽땅 냉동실에 넣어요. 일정량이 차면 푸드뱅크처럼 보내는 곳이 따로 있어요.” 


이렇게 다른 곳에는 퍼준다면서도, 기자에게는 빵 한 조각 권하지 않는다. 옆구리 찔러서 겨우 맛본 팥빵 하나. 500원였던 것을 지금은 700원으로 올렸단다. 이 팥빵 다른 데에서는 얼마쯤 받는지 물어보니 ‘천원은 넘지 않겠느냐’고, 또 강건너 얘기이다. 가격은 절반, 맛 같은 것은 두 배로 격차를 벌여놓자니 김사장은 남들보다 두세 배 더 뛰어야 하는 현실이다. 시장통 이곳에 7년 전 개업 당시, 생산파트에는 3명, 판매대에 3명이 배치되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제빵 본인 1명, 판매 2교대 2명이다. 인건비, 가겟세, 공과금 상승폭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보니, 속칭 혼자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출근을 매일 6~7시에 해서 퇴근은 10시쯤 한다니 “8시간근무 × 2”인 생활이다. 그래도 매출이 꾸준하게 유지되니, 아름다운 빵숲, 신나는 빵숲이란다.




“3천원어치나 샀는데 왜 안 깎아줘?”


돈이나 가격 이야기는 시장경제의 핵심이다. 시골 단골 손님들이 제빵실까지 불쑥 들어오는 때가 종종 있다. 3천원어치 한 봉다리 샀는데 왜 깎아주지 않느냐고, 덤은 왜 더 안 주느냐고 문앞 판매원 제치고 빵 만드느라 경황이 없는 빵공장 주인장 찾는다. 소리 치는 손님 당해낼 주인 어디 있으랴. 만원어치 한 봉다리 사면 덤도 알아서 주고 하련만.... 


이런 소매의 우/픈 애환도 있지만, 가끔 학원이나 공장 같은 데에서 주문 배달도 들어온다. 최소 100개는 넘어야는데, 배달원이 없는지라 이 또한 김사장의 몫이다. 오후에 잠깐 짬을 만들어 댕겨오는 식으로 해결한다. 내친 김에 댕겨올 데가 한 군데 더 있다. 부적에서 나홀로 농사를 지으시는 엄마집이다. 안부 겸 힘든 일 거들 겸 가끔씩 들리는데, 특히 쉬는 날 일요일은 꼭 챙긴다. 김사장의 나이는 올해 46, 장가를 늦게 갔다. 10년 연하인 신부 얻느라 그랬나 보다^ 이제 100일 지난 아기도 있어 집안도 바쁘고 엄마 집 들르는 일로 바쁜 휴일, 김사장은 난데 없이 연탄배달을 간다고 집을 나섰다. 매달 회비 2만원씩 내는 친목모임 “계백회”에서 읍면동 불우이웃들 찾아다니며 연탄 1000장 전달하고, 마친 다음에는 축구까지 한 판 하고 왔다는 것이다. 빵집 사장님의 공사다망한 휴일 스케줄이다. 


남녀간의 결혼 얘기는 만국공통의 관심사이다. 김사장은 논중을 나왔고, 고등학교는 대전에서 다니다 졸업은 논산고등학교에서 했다. 군대도 갔다 오고 뭘 좀 하다 보니 20대 후반.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누나가 동생에게 제과제빵을 권하였다. 27세 수원에서 제과제빵 학원에 들어가서 수료한 후, 처음에는 일 배우는 것으로 나중에는 강의 나가는 데까지..... 지금까지 20여년, 진득하게 제빵사 외길만 걸어왔다. 7년전 논산으로 내려 오기까지 십몇 년 개인빵집과 빵공장을 두루 거쳤다. 강동베이커리 같은 곳에서 책임자로도 일했고, 개인 빵집이 많았던 시절에는 빵집 오픈해주고 빠지는 업무도 겸하였다. 

 


40대노총각, 10년 연하 장가든 사연


이렇게 타지에서 이곳저곳 다니며 일하는 동안 술만 늘었고 모아둔 돈도 별로 없었다. 목돈이 없던 상황에서  2010년 논산시장에 빵가게 자리 알아보고 계약할 때,  답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빵굽는 기계는 선배가 빌려주고 어찌어찌 주변의 도움과 본인의 의지로 오픈이 가능하게 되었다. 남집 오픈하러만 다니다가 이제는 드디어 내 빵집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문을 연 지 2~3년 후 계산해 보니 애당초 목표매출액의 1/3 정도 수준였지만, 그나마 안정 궤도로 진입하는 흐름이었다. 만혼이면서도 10년 연하와 결혼이 가능했던 상황이 미루어 짐작가는 대목이다.


지금 논산화지시장 빵집 『빵숲』의 고객은 남녀노소, 내외국인에 걸쳐서 광범위하다. 가까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들도 찾아와서 사간다. 일 매출 50 안팎이라고 하니 이 정도면 제과제빵사가 매력적이지 않은지 반문했다. “개인빵집 제빵사 하나 데려오려면 300에서 350은 주어야 해요.” 판매원 월급보다 훨 높은 이유를 물었다. “메이커 빵집 10년 경력자도 빵의 전체 공정을 몰라요. 빵 만드는 공정은 계량부터 시작해서 반죽과 발효가 생명인데 우선 반죽 제대로 치는 사람부터가 많지를 않아요. 1차발효  → 분할 → 성형 → 2차발효 → 가마에 굽기( → 식힌 후 구워서 크림이나 쨈으로 다시 성형  → 완성) 이런 제과 제빵 공정에서 한 단계인 성형이나 가마 정도는 하지만, 나머지는 모르거나 미숙한 경력자가 많아요.”



기자가, 제과제빵 국비교육 등에 대하여 아는 체하자 대뜸 말을 자른다. “학원 나온 교육생 100명이 현장에 나오면 한 달 후에는 다 못하겠다면서 10명쯤 남아요. 세달쯤 지나면 겨우 한두 명만 남는 게 이 세계입니다. 일 자체가 3D보다 더 하면 더하고요, 일하는 과정에서 인간 관계도 깨지기 십상인 구조예요. 공정별로 분담하는 시스템에서 발효팀이 정성껏 넘긴 빵을 가마에서 자칫 태워버릴 경우, 전체가 난리 나지 않겠어요?” 


호텔셰프처럼 멋진 백색 모자 쓰는 환상은 이내 박살이 난다는 것이다. 국민학교 학력에 교수까지 된 어느 빵아저씨 이야기는 이 시대의 사표요 전설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는 빵만이 그의 외길였기에 가능한 금자탑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길은 길을 만들어가고, 공부는 공부를 만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싶은데, 김사장의 공부가 그러한 거 같다.


빵 스토리 곁들여 먹어 보세요


바케트의 경우, 발효나 반죽을 제대로 치지 않으면 주저앉아서 모양이 잘 나오지 않거나 색깔이 맛있어 보이지 않다고 한다. 김사장은 여기 진열된 빵들이 하나하나 회심의 작품으로 내놓는 거라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알맞게 부풀어 올라 탐스럽고 먹음직스런 빵들이 그냥 빵공장에서 척척 나오는 줄 알았던 기자는, 심봉사처럼 개안하는 느낌이었다. 귀도 번쩍 열렸다. 천하의 노름꾼 샌드위치 백작이 시켜먹어 유래했다는 샌드위치, 프랑스왕비가 선호한 초승달을 의미한다는 크라와상... 기자는 서양 빵스토리가 익숙지 않아서 동양적인 시장떡집의 모찌로 화제를 돌렸다. 이 모찌집은 대한민국 명소 랭킹에도 들겠기에..... “이제 우리는 그 집과 같은 모찌를 안 하지만, 우리 빵집 모찌는 반죽을 한 시간 이상 더 쳐서 잘 굳지 않고 말랑말랑해요.” 습기를 많이 보듬는 떡집은 주로 쌀로 하지만, 빵은 밀가루 외에도 호박, 옥수수, 쌀, 흑미를 재료로 추가한단다. 쌀빵은 다시 쌀롤케이크, 흑미파운드, 호박빵.... 과연 빵숲은 『빵·숲』이로다!


김 사장이 위쪽에 있을 때는 제과제빵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교육생 중 얼굴 검은 외국인도 더러 있었는데, 단체로 사진 찍을 때 본인 얼굴도 검어서 잘 나오지 않더란다. 그 때 사진기자가 몇 번 더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는데, 이번 놀뫼신문용 사진도 잘 나오지 않아서 가게를 다시 찾았더니 그런 얘기 꺼내면서, 자신의 분신인 빵이나 잘 찍어달라는 주문이다. 


“주방장이나 소설가는, 될 수 있는 한 보지 않는 게 좋다” 했던가....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대기업이 자랑하는 화려한 외관이나 포장, 심지어는 위생 같은 것도 초월하는 그 무엇이 전통 시장에는 있다. 얼굴도이 검은 데다 무뚝뚝까지는 아니지만 전형적인 시장풍 아저씨 김 사장은, 첫방문때처럼 재차 방문한 기자에게 빵 한 조각 권하지 않는다. 이래저래 맛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사진만 찍다가, 들어올까 말까 끼웃하는 손님을 보면서 권하였다. “이 집 빵 무자게 맛있어요!”  “저, 이집 단골이거든요!”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은 사람에게 돌아온, 유쾌 통쾌 상쾌 부메랑 한방이다. 


[글·사진] 이지녕 


이 내용은 『놀뫼신문』 2017-11-21일자 4면에 실린 글입니다. 

시간 지났어도, 여전 침샘 건드리는 빵냄새네요~~흠^흠^
 공짜빵 하나, 여전 못 얻어먹었고요^^


https://nmn.ff.or.kr/18/?idx=515421&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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