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즙맛이 가심비로도 이어지는 서민맛집, 논산시청 골목 #햇잎석갈비
<햇잎갈비>는 논산에서 제법 유명한 맛집이다. 아니, 맛집이었다. 햇잎갈비는 전국 프랜차이즈인데, 논산에서는 8년 전 김태수 천경필 부부가 시청 인근에서 개업을 하였다. 장사가 곧잘 되었다. 4명의 직원과 함께 일 매출 200 정도를 찍었다. 손님들이 몰리는 날이 많아서, 대기하는 동안 2층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한산해지면서 급기야 문이 닫혔다. 불철주야 강행을 했던 탓에 주인장 허리에 통증이 도졌고, 전 세계를 강타중인 코로나도 가세하였다. 주인장 건강이 회복되면서 가게를 마냥 비워둘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재오픈 구상을 했다. 준비기간은 꽤 걸렸다. 간판은 그대로 하되 햇잎~갈비 사이에 석(돌石)자만 돋보이게 추가하였다. 메뉴를 갈비에서 석갈비로 전환하려 하니 예전 브랜드 이름을 그대로 쓸 수 없지만, 본사에서는 흔쾌히 OK해주었다. 예전 총 30억의 매출을 일으켜준 파트너 업체 주인에게 ‘No’ 할,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메뉴를 바꾸면서 내친 김에 내부 인테리어도 전면 다시 했다. 방석집에서 입석으로, 코로나 예방을 위한 아크릴시설까지, 4천 정도의 거금을 투자하였다.
시설도 중요하지만 식당의 핵심은 음식! 예전에는 햇잎갈비 본사의 식재료 받아다가 요리만 정성껏 해서 내오면 되었다. 이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 자체 개발 메뉴를 내놓는 창업이다. 메뉴는 석갈비로 단일화했다. 숯불 내오고 굽고 물빠짐 시설로 연기 제거하는 등의 번거로움은 건너뛰게 세팅하였다. 주방에서 구워온 따끈 석갈비를 식객들은 입으로 쏙 넣기만 하게끔 간소화하였다.
고기맛의 진수는 육즙(肉汁)에 있다. 주인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밀려오는 손님들을 대비하여, 미리 살짝 삶아두거나 초벌구이 해놓은 걸 내놓으면 왔다다. 무엇보다 시간이 절약되어서 좌석 회전률이 높아지니 말이다. 그러나 손님 입장에서는 손해다. 약간이라도 퍼석거리거나 질겨져서, 소위 씹는 맛 식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혀는 미세한 차이라도 콕 찝어낸다.
가격도 큰 변수다. 고기집이 저렴할 수야 없겠지만, 와중에도 싸고 푸짐한 집이라면 문턱 넘는 발걸음 가비얍다. 재오픈한 햇잎석갈비집의 대표메뉴는 석갈비, 그 가격은 점심특선 9천원, 저녁은 12,000원이다. 가격차가 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다. g수가 약간 달라지고, 반찬에 개인샐러드가 나오고 안 나오고 정도의 차이니 말이다.
메인 메뉴는 석갈비 단일이지만, 사이드메뉴로는 9찬이 깔린다. 동물성인 석갈비를 보완해줄 식물로 상추가 상식(常食)이지만, 보쌈처럼 싸먹을 수 있는 것들이 좀 된다. 적겨자는 사철 진상이다. 적겨자는 이 집 주인이 시골집에서 직접 재배하므로 양이나 질에서 부족함이 없다. 색깔이 엇비슷한 빠알간 비트도 슬라이스로 썰어놓으니, 식욕을 자극하는 쌈이다. 백목이버섯와 세발나무를 겨자로 버무린 하양 야채무침도, 고기의 느끼함을 중화시켜 주는 백의의 천사다.
여주인의 깊은 손맛이 배어 있는 된장국은, 이밥을 더 땡기게 해주는 밥도둑이다. 고기보다 밥이 더 땡길 때는 갈비탕이 한 몫 한다. 예전에도 있던 메뉴인데, 그때는 본사가 제공하는 가공식품이었다. 지금은, 푹 곤 육수에 굵직굵직 갈비가 들어가는 가정식이며, 가격은 1만냥이다. 식사 메뉴로 냉면은 석갈비 포함 냉면이며, 갈비탕과 동일한 가격대다.
저녁에는 주당들을 위한 메뉴도 추가했다. 소갈비버섯전골. 돼지석갈비보다 1천원 비싸지만 국물이 필요한 술안주로 제격이다. 공기밥과 함께 하는 ‘국물이 있는 저녁’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음식맛은 혀가 귀신 같이 안다. 그런데 음식맛은 혀 세포만의 고유 권한이 아니다. 우리는 음식을 눈으로도 먹고, 귀로도 먹는다, ‘칭찬은 귀로 먹는 보약’이듯이.....
음식은 요리사의 손끝에서 나온다. 아니, 요리사의 머리끝에서 나온다. 마음끝자락에서 발원하는 맛은 깊고 그윽하다. 주방장의 요리실력도 예술이지만, 주방장 자체, 주방장의 삶이 요리의 요체(要諦)다.
주인장 김태수 천경필 부부의 삶이, 그 이야기들이 맛나다. 억척스럽기 그지없는 김태수 사장은 이번 재개업을 준비하면서 내외부 시설을 거반 직영으로 했다. 목수일 같은 경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가게의 얼굴인 간판얘기부터 들어본다.
3층 건물이 면적이 있다 보니 삥 두른 간판도 면적이 좀 된다. 7~8년 지나다 보니 간판 마루목 표면이 터져서 무성의해 보였다. 업자에게 얘기해보니 스카이 부르고 하는 작업이므로 견적 1500. 엄두가 안 나서 더 알아보니 500까지는 내려왔지만, 이도 코로나 시대에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시골에서 리프트 기능이 있는 경운기를 1톤 트럭 뒤에 싣고 왔다. 터진 마루목 곳곳을 그라인드로 갈아낸 다음, 그 위를 오일스텐으로 칠하였다. 산에서 도 닦듯, 도심에서 사흘간 줄기차게 갈고 닦고 칠했다. 비오는 날은 그 비 그대로 맞으면서 진도를 뺐다. 사나흘 꼬박 걸렸다. 들어간 재료비는 총 26만원, 결국 60분의 1로 해결한 케이스다.
내부 인테리어도 자력으로 밀어부쳤다. 어설프거나 아마튜어티가 나지 않도록 신경에 신경을 쓰고 정성 기울였다는 사실은, 새 단장된 결과물에서도 입증이 될 성싶다. “처음부터 알거나 잘 하는 사람 누가 있겠어요? 배우면서 해나가면 되죠!” 이런 정신 자세는, 메인 메뉴를 바꾸어가는 데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내외부 시설 다시 하는 데는 달포 넘게 걸렸지만, 소프트웨어인 메뉴 개발에는 6개월 정도를 투자하였다.
두 부부는 애초 식당을 생각할 때, 반짝 유행 타는 이색요리보다는 지속적으로 찾는 메뉴를 선정하였다. 외식문화의 꽃은 갈비라 보고 첫번째는 햇잎갈비, 재오픈때는 석갈비다. 충청권에서 석갈비로 유명한 집이 꽤 된다. 대전에 예닐곱 군데 되는 띠울참숯석갈비. 그런데 띠울(골)은 상월면 대명리 자연부락 이름이다. 저수지 주변 상권은 보통 붕어찜 등 민물고기 요리집이 대세인데 세종시 연서면 고복저수지는 석갈비집이 널럴하다. 번호표 나눠주는 산장가든은 기업형에 속하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저수지일대 석갈비집들 대부분이 그 일가친척들이라는 설도 있다. 인근 공주 석갈비 전문점 ‘배꼽’도 명소이다.
김태수 부부는 이런 맛집들을 섭렵하면서 연구를 거듭하였다. 그간의 경험치에다가 지역 특성을 염두에 두고 논산 지역에 맞는 맛과 서비스에 절치부심, 공을 들인 지 어언 반년. 그러나 재오픈 소식에 이구동성 걱정의 소리 일색이다. “코로나 와중에 무슨 식당이냐?” “그 동안 문을 닫고 해서 잊혀지거나 실추된 이미지 살려내려면 장난 아닐텐데...” 그래설까, 오히려 오기 같은 게 발동했다. ‘김태수’라는 개인 이미지 회복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평범한 식당 주인 김태수, 그가 뭐 그리 대단했길래?
시청이 들어앉은 자리를 기준으로 해서 시내쪽은 아파트 대단지다. 그 중 시청과 길건너 바짝 인접한 곳이 놀뫼아파트고, 그 끝자락 코너에 수퍼가 하나 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10여 년 전 그곳 이름은 KC마트였다. 2005년 그곳은 건설회사 사무실이었다.
그곳에 어느날 <임대> 글자가 붙었다. 김태수 씨는 그 자리가 수퍼 자리로는 딱이라고 봐서, 건물주와 계약을 맺었다. 30평 규모의 매장을 보증금 3천에 월 80만원, 5년으로 계약했다. 시설비 6~7천 들여서 마트를 꾸몄는데, 1년 후에는 초두비용 1억 부채를 다 갚았다.
이후 4년 동안 장사가 불티나게 잘 됐다. 잘 된 것도 있지만, 잘 했다. 한번 다녀간 손님 얼굴을 죄 기억했다. 그건 기본이다. 재방문한 손님이 ‘담배’를 발음하면 그 손님이 지난 번 사간 담배까지 기억해서 즉시 뽑아내 주었다. 주유소도 그렇지만 수퍼는 지천이기 때문에 길 건너서까지는 찾지 않는 게 소비자의 편의성이다. 그런데도 KC마트 단골들은 안 그랬다.
이러다 보니 주변 대형마트도 영향을 받았다. 당시 해태마트는 500평/ 40명 규모였는데 일매출액이 700정도였다. 한편 동네수퍼인 KC는 30평/ 2인였는데도 일매출 150였다. 매일 들르는 마을금고 직원에게 30만원씩 저금을 맡겼고, 그 결과 저축상도 받았다.
마트 이야기를, 약간 더 해야겠다. 시청 위쪽으로 아파트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대형마트들도 입점을 서둘렀다. 해태마트도 그렇지만 우리홈쇼핑도 주변 상권을 점령해갔다. 그러다가 주인이 LG마트에 세 주었는데 LG는 대기업식으로 경영하는 과정에서 주차장 인심을 잃는 등.... 그래서 상당수 손님들이 건너편 장군마트로 넘어갔다. 이런 고래등 싸움 한복판에서 30평 규모의 소규모 수퍼가 신화적 매출을 유지해갈 수 있었던 것은, 목 좋은 상권이나 재운(財運) 외의 그 무엇이 있었다.
원래 김대표는 오리온 제과 영업팀이었다. 5년간의 양호한 실적, 그 후 재입사 2년 이렇게 총 7년 근무하는 동안 직원 연수를 통하여 상권분석 등 경영 공부를 여러 차례 하게 되었다. 윤홍기 소장은 경청하는 직원 하나만 찝어서 집중 공략해가는 강의 스타일로 유명한데, 88올림픽 전 오리온제과 연수 시간에 타겟이 된 직원이 김태수였다. 당시 경청했던 내용들은 월급쟁이 시절에 절박하지 않았지만, 독립군이 되면서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오리온 퇴사 후 아이스크림 장사를 11년 했는데 한두 해만 호황였고 나머지는 죽을 써야 했다. 경쟁사와의 지나친 출혈경쟁 탓이었다. 그 후 선택한 업종이 수퍼였다. 그는 틈만 나면 바깥으로 나와서 마트 일대를 통과하는 유동인구와 차량들을 카운팅하였다. 주먹구구식 구멍가게 운영에서 벗어나 과학적 경영에 피치를 올렸다. 분석결과는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5년 상승곡선을 그었다.
수퍼할 동안 돈이 좀 모아져서 옆 건물을 사두었었다. 대로변에서 좀 비껴난 위치이므로 식당이 적합해 보였다. 그래서 시작한 게 햇잎갈비! <햇잎>, 새싹, 새 잎이 돋아나는 그 햇잎이다. 그런데 발음상 ‘깻잎’ 이미지도 연상되고 갈비와 연이으면서 ‘햇살’이나 ‘햅쌀’로도 튄다. 어쨌거나 봄의 햇살에 솜아나는 새잎, 새싹이다.
햇잎 재오픈일을 9년 전 오픈했던 날짜 2월 22일로 맞추었다. 재도약을 다짐하며 출발한 지 한달에서 두달째다. 오가면서 간판 작업 등 재오픈 준비과정을 보게 된 예전 고객들이 조금씩 찾아주고 있다. 아직은, 예전 매출 대비 1/4 수준이다. 초창기다 보니 가족경영이다. 힘은 더 들고 수입은 언제 바닥을 칠지 암중모색중이다. 그럼에도 예전에 알던 분이나 지인 들에게는 재오픈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인지상정에서도 그랬지만, 지금까지 오랜 장사 경험의 발로이기도 하다.
“지인들은 인사 겸하여 한두 번은 와주시죠.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단골 확보는 또다른 차원인 거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되는 품질과 만족도가 진짜랄까요~~ 저는 거래처도 누구 소개를 받는다기보다, 생면부지 여러 곳을 찾아 검색하고 실증해서 결정해요. 단골들도 그렇다고 봐요. 백지 상태에서 오신 손님이 직접 먹어 보고, 그래서 맛이나 가성비, 가심비 등을 종합한 다음 단골 여부를 결정하잖아요, 예전 우리 단골들이 그랬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