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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Feb 18. 2019

“놀뫼 논산,  아리랑으로 승화시키다”

- 천재피아니스트 임동창과 함께

2017년 논산시민아카데미 첫 강좌가 3월 10일, 논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시민아카데미는 매월 둘째주 금요일마다 계획되어 있다. 기자는, 시청 평생교육과에서 주관하는 이 행사 첫 개강이어서 공식기사를 쓰고자 참석하였다. 그러나 임동창 특유의 분위기에 휩쓸리면서 관객 입장의 참관기가 낫겠다고 판단, 이 글을 공연 중계 형식으로 바꾸어본다. 


풍류로 풀면 다 된다?


저녁 7시부터 열린 봄맞이 아카데미는 특강이라기보다 놀이한마당이었다. 풍류아티스트, 천재 음악가라는 별칭의 피아니스트 임동창! 융복합과 통섭의 개척자인 그가 ‘풍류로 풀면 다 된다’라는 주제를 들고나와, 무대에는 9명 풍류학교 학생, 객석에는 200여 명의 시민을 앉혀놓고서 쥐락펴락해가며 한바탕 놀다 간 것이다. 완전 갖고 노는듯한 피아노연주와 즉흥춤, 퍼포먼스, 열창과 합창 등이 버물여지면서 임동창 특유의 입담과 풍류로 풀어나가는 시간이었다.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나비”처럼, 동서양을 넘나들고, 교양과 비속의 경계도 허물어져버린 두어 시간이었다.


충청도 풍수지리와 사람들의 특장을 덕담으로 풀어낸 후, 그냥그냥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촌철살인 찔러넣는 작업도 빠뜨리지 않았다. 문화의 삶을 경제성으로 접근하였다. 우리가 근면 성실하여 수출하는 자동차산업의 매출액과 해리포터 영화산업 등과의 매출 비교는, 문체부나 교육부 직원도 그렇고 국민들도 실감을 못하는 분위기다. 결국 문화가 먹여살린다는 현실론을 강조하였다. 서양음악가들이 모여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무엇인가?” 선정을 했단다. 이어서 “가장 힐링이 되는 곡은?” 이 두 콘테스트에서 동시에 뽑혀나온 “아~리~랑~”


우리 선조들이 노래를 만들 때는 자연을 따라, 순리대로 하였다고 일러주면서, 제자들과 함께 시연해 주었다. 이런 자연의 소리를 듣노라면 힐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문화DNA를 지녀온 한민족이 일본문화, 서양문화에 침몰되어 허덕이고 있다. 가수가 무대에 올라가 틀에 짜인 노래와 율동을 반복함으로써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쇼문화를 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임동창류는 확실히 달랐다. 무대설치도 단순하고, 동행한 제자 아이들도 평소 그대로인 듯싶다. 소위 짜고치는 각본 같은 게 엿보이지 않고, 매 순간 순발력과 재치가 번뜩인다. 쇼에서 최우선인 비주얼과는 애초부터 담 쌓은 듯싶고, 대신 그 자리를 청순, 순박, 진솔, 해학이 커버해가는 듯 보인다.


윤증의 거미줄(영주망)을 민요로


구경꾼과 한덩어리가 되는 마당극풍이다. 스타만을 돋보이게 하는 무대 조명은 서원에서도 엿보이는 거 같다. 화폐에 등극되어 있는 퇴계 영남학파는 상하 구별을 전제로 하지만, 돈암서원으로 대표되는 기호학파는 평등이니 말이다. 임동창 선생은 공연 의뢰가 들어오면 사전 답사를 한단다. 배경 무대도 봐야 하고, 배경지식으로 그 분위기에 걸맞는 콘텐츠도 마련해야 하기에, 그때마다 윤증고택과 돈암서원을 둘러보고 관련 서적도 살펴봤단다. 그리하여 탄생한 노래가 셋! 우선 영주망부터 살펴본다.


蜘蛛結綱罟(지주결강고) 

橫截下與上(횡절하여상) 

爲我語蜻蜓(위아어청정) 

愼勿簷前向(신물첨전향)  

거미가 거미줄 치는데

가로 치고는 바로 위로 아래로 친다

날 위해 잠자리에게 말하려므나

조심해서 처마 앞으로 가지 말라고


蜘蛛結綱罟(지주결강고) 

거미가 거미줄 치는데

橫截下與上(횡절하여상) 

가로 치고는 바로 위로 아래로 친다

爲我語蜻蜓(위아어청정) 

날 위해 잠자리에게 말하려므나

愼勿簷前向(신물첨전향)  

조심해서 처마 앞으로 가지 말라고



영주망(詠蛛網)은 명재 선생이 8살 때 지은 한시로서 ‘거미줄을 읊다’는 의미이다. 이 노래가 발표된 때는 2009-10-17였다. 장소는, 중요민속자료 제190호로서 충청도 대표 양반가옥인 노성면 교촌리 명재 윤증 선생 고택.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주최로 고택 앞마당에서 펼쳐진 '임동창과 함께 즐기는 풍류 한마당' 행사 때 후손인 준식(8) 군과 함께 발표하였던 것이다. 어린아이에 걸맞는 동요풍이다. 이 시에 대한 평이 몇 있다. 스스로의 예언이었는지, 윤증은 평생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후학 양성에만 진력하였다. “여기 거미는 아마도 정치판을 상징하는 것이지 않았겠느냐? 명재선생이 스스로의 앞날을 예언한 것처럼 보인다”며 임동창 씨는 개인적인 주석을 달고 노래를 시작하였다.



전국아리랑과 놀뫼아리랑

 

세종에는 세종아라는 가수가 있다. 세종아리랑을 부르면서 세종특별자치시 전속 가수처럼 활동중이다. 그런데 임동창 선생은 전국구가 되어, 가는 곳마다 그 지방에 걸맞은 선물을 주고 있단다. 지명이 붙은 정선아리랑처럼, (**) 아리랑을 작시 작곡해주는 릴레이 작업이다. 


이 작업은 극성 제자들 때문에 시발되었다. 임동창 선생은 제자들을 몰고 다닌다. 무대에서 자식들 부리듯 이거저거 시키고, 어투도 한 식구처럼 동고동락인 모양이다. 7년여 전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곳에만 선물해준 아리랑을 몇 시간이고 목청껏 부르더란다.  차내 고성인지라 신경 쓰였지만, 가만 보니 이리 신명나서 부르는 아리랑을 가는 곳마다 만들어 주는 게 어떨까 생각이 미치더란다. 그런데 논산은 특이하게 두 곡이나 만들었다. 하나는 2011-09-07에 펴낸 놀뫼아리랑. 돈암서원에 푹 빠져 있으면서 생각나는 그림이 하나 있었으니 시경 한록(旱麓)편에 나오는 연비여천 어약우연이 딱이다 싶어서, 그것을 시조풍으로 작곡하였다. 


아리-아리-아라 리-요, 

평안-을 얻-는- 곳-놀—뫼-넘어 간—안다.

솔-개-는 날아-하늘-에 이르--는데-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온다.


얼핏 들으면 용비어천가로 들리는 연비여천 어약우연은 연비어약(鳶飛魚躍)으로 더 알려져 있다. 글자 그대로는 솔개(鳶)가 날고(飛) 물고기(魚)가 뜀(躍)이다. 솔개가 하늘을 나는 것이나 물고기가 못에서 뛰는 것이나 다 천지자연의  오묘한 작용으로, 새나 물고기가 스스로 터득한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임동창 선생은 하늘과 땅이 통하는 데 의미를 부여하며, 그런 의미가 논산 선비 이미지와 부합한다고 본 모양이다. ≪시경 대아(大雅)≫ <한록편>을 좀더 들여다  본다. 


      瑟彼玉瓚(슬피옥찬) 산뜻한 구슬잔엔

      黃流在中(황류재중) 황금 잎이 가운데 붙었네

      豈弟君子(기제군자) 점잖은 군자님께

      福祿攸降(복록유강) 복과 녹이 내리네

      鳶飛戾天(연비려천) 솔개는 하늘 위를 날고

      漁躍于淵(어약우연) 고기는 연못에서 뛰고 있네

      豈弟君子(기제군자) 점잖은 군자님께서

      遐不作人(하부작인) 어찌 인재를 잘 쓰지 않으리오



『시경』에서의 본뜻은, 새나 물고기와 같은 미물이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는 모양. 또는 임금의 덕화(德化)가 골고루 미친 모양을 말한 것이나, 『중용』에 인용된 뜻은, 솔개가 하늘로 나는 것이나 물고기가 못에서 뛰는 것이나 다 도(道)의 작용이며, 천지만물은 자연의 성품을 따라 움직여 저절로 그 즐거움을 얻으며, 道는 천지 간에 널리 퍼져 가득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처럼 중용에도 인용되는 시경은, 우리 나라에 와서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게 인용되면서 새로운 해석을 낳았고, 임동창 선생에 의하여 논산에도 접목된 것이다. 



논어 학이편이 응원하는 선비촌 논산아리랑


놀뫼아리랑은 호응이 낮다 느껴져서인지 2012-10-13 논산아리랑으로 작곡을 하나 더 한다. 악보에는 굿거리(받는 소리) 휘모리(받는 소리)가 적혀 있다. 휘모리할 때는 함께 노래하다가 “메기는 소리” 부분에 와서는 현대판식의 랩으로 읊는 가사가 장황하다. 



(전주와 후렴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절] 평화에 자유에 아름다-운 곳 기쁨에 희망에 논산일세

[2절] 학이 시습지면 불역열-호아 배움에 기쁨에 논산일세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아니 즐겁지 아니한가)


[3절]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 먼데서 찾아와 논산일세

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아니 즐겁지 아니한가)


[4절] 인부지이 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스스로 기뻐요 논산일세 

人不知而不溫이면 不亦君子乎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면 또아니 군자가 아닌가)


[5절]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어럴럴 상사디야 논산일세


두 번째 아리랑을 작곡할 때도 고전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 중 논어 학이편을 입장시킨 것이다. 논산 아리랑은 길기도 하고, 청백으로 나누어 합창이 가능하기도 하다. 민요풍의 장단과 현대적인 랩이 동시에 섞이고 동서고금, 남녀노소, 청백성부가 리얼타임으로 합체되며 열기가 한창 달아올랐다.  이를 기점으로  한시간 정도, 기자는 페이스북으로 라이브 중계를 하였다. 오프라인 객석의 빈 자리가 온라인의 열기로 채워졌다. 무대와 객석이 합창하면서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 분기점에서 표출하는 청소년 각자의 인사말 또한 즉흥적이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역사적인 날, 각자의 역사적인 멘트 표출로 막을 내리는 듯 싶었다. 작별 인사가 끝나자마자 무대 위에서 또다시 열기를 뿜어내는 분위기에서, 청중들은 그 소리를 여운으로 간직한 채 귀가하는 클로우징였다. 



뭐라고 전해야 하나이 좋은걸?


기자 역시 귀가하여 원고를 쓰려다 검색해보니, 20여년 부산 살다가 논산에 정착중이라는 놀뫼진백(kangsi5709) 블로그가 포스팅되어 있다. 

“..... 스님인듯 스님 아닌 피아니스트라.., 젊은 제자들을 우~ 몰고 와선 수족처럼 부린다. 수족 중에서 송도영이라는 처자의 득음한 듯한 목소리는 들을수록 빠져들게 한다.

왔(what)씨(see)유(you)? 

미러(mirror)! 

아이(I) 씨(see) 발(foot)! 

충청인 이발사와 엉겁결에 빡빡이가 된 미국인 사이의 꽁트 입담도 좋았다. 우리 민요의 장점은 즉흥성에 있단다. 경기, 충청지방 농악을 '웃다리'농악이라 하는데, 세련미가 넘치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처럼 평안한 느낌을 준단다....”


현장 분위기 중계해주는 맛이 일품이다. 이런 문화행사를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 홍보 부족!  TV 대중문화권에서 잠시 마실 나와 평소 접하기 힘든 문화 향기를 좀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7 논산시민아카데미


논산시민아카데미는 사람과의 소통, 꿈을 이야기하고,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기회를 제공해주고자 하는 무료 특강이다. 주민들의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하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평생학습도시’ 구현을 모토로 하고 있다. 논산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12월까지 매월 1회씩, 총 10회 수준 높은 인문학 강좌를 제공할 예정이다. 


향후 프로그램을 보면 △김미경 아트스피치 대표(4.14) △최형만 개그맨(5. 12) △고미숙 고전평론가(6.9) △유홍준 前 문화재청장(7.14)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8.11) △강원국 前 청와대 연설비서관(9.8) △강성태 공부의 신(10.13) △공지영 소설가(11.10) △용혜원 시인(12.8) 등 사회 각 분야의 저명인사들 강연으로 이뤄진다. 문의는 평생교육과 평생학습팀 ☏041-746-5774


평생학습팀 담당자는 “시민아카데미가 평생학습도시 논산의 자랑이 되도록 보다 알찬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에게 배우는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며, “소통하는 열린 학습의 장으로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얻고, 따뜻한 행복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글/사진] 이지녕 

이 글은 『놀뫼신문』 2017-03-13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s://nmn.ff.or.kr/17/?idx=514828&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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