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녕 쌩글삶글 Feb 25. 2019

흑룡회와 논산의 미·션

[기자의 눈] 미스터션샤인 앞길의  암초 제거를 보며

미스터 션샤인의 베일이 서서히 벗겨지더니, 지난 주까지로 해서 4회까지 풀렸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4일 방송한 ‘미스터 션샤인’ 3회는 10.1%를 기록했다. 드라마사에서 가히 기록적인 수치이다. 

일등 공신은 역시 드라마 작가의 최고봉 김은숙이다. 2016년 ‘태후’, 2017년 ‘도깨비’에 이어 2018년엔 ‘미션’이다. 잠깐, 불후의 서양명화 ‘미션’과의 혼선을 피하기 위하여 용어 정립부터 하고 간다.  태후 = 태양의 후예, 미션 = 미스터 션샤인.  Sun Shine 논산은 ‘선·샤인 랜드’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제작진은 1900년대 당시 표기법에 따라 ‘션·샤인’으로 내보냈다. 그래서 미·션이다. 

논산 선샤인랜드에 세팅돼 있는 눈깔사탕도 파는 ‘불란셔 제빵소’ 간판! 당장 떠오르는 어떤 제과점의 PPL(간접광고)이다. 아씨(김태리 분)가 맛깔스레 먹는 장면을 떠올리며 구동매(유연석 분)가 돈을 지불하고 사먹는다. 구동매, 그는 누구인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끔찍한 수모를 겪다가 흑룡회 간부의 눈에 띄고 신임을 얻어서 고향인 한성지부장으로 돌아온다. 그는 긴 칼 옆에 차고 인정사정없이 베는 장안의 공포 그 자체이다. 주인공 이병헌의 카리스마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는 존재이다. 


처음에는 '흑룡회' 소속으로 나왔던 구동매(화앤담픽처스 제공)


그래서일까, 최근 인터넷에서 갑자기 흑룡회가 급부상하였다. 극의 전개에 따라서 한일합병 일등공신인 흑룡회를 미화할 소지가 다분해졌기 때문이다. 네티즌의 친일 시비 제기에 제작진은 즉각 반응하였다. “친일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흑룡회 → 무신회로 바꾸겠다”고 사과문을 전격 발표하였다. 실제 3회부터 그렇게 방영중이다. 자칫 위기를 바꾸어서, 오히려 시청률 상승에도 기여하게 만든 역마케팅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이다. 차제에 몇 가지 생각이 갈래를 친다. 

 

즉각적인 수정

우선 제작진의 깔끔한 태도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국내를 넘어 아시아권까지 뒤흔드는 대작가 김은숙과 그 그룹이 전혀 간파하지 못했던 점을 일개 네티즌이 콕 찝어 주었다. 작가나 제작진으로서도 대응할 말이 있었겠지만, 거두절미 정중하게 사과하고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였다. 글을 쓰거나 사업을 해나가다 보면 오류나 지적 사항이 생기게 마련.   한 시민이 논산시 블로그 내용에서 오류라고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걸었단다. “내 이름부터 대라 하더라구요. 그냥 받아서 정정하면 되지, 무슨 절차가 그리도....” 다음부터는 전화 같은 거 걸기 싫더라고, 행사 현장에서 기자 만난 김에 하소연이다. 


미투와 섹스 스캔들에 대한 당사자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라진다. 승복 vs. 법적대응!   물론 억울하면 법에 호소할 일이지만, 앗쌀하게 승복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남자다워 보인다. 공적인 일도 엇비슷하다.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치명적인 오류나 지적 사항이 속출한다. 공청회를 거쳤다 해도 그럴진대, 밀실 행정때는 말해 무엇하랴. 어이 없어 보이는 일에 시민들이 혀를 끌끌 찰 때, 그때라도 관계 부처는 나서서 즉각 궤도 수정을 하면 된다. 만사 OK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첫단추를 잘못 꿴 그대로의 초지일관이 관성인 거 같다. 


스토리 보물창고논산 선샤인랜드 

두 번째 생각은, 논산을 근 ·현대사의 산 교육장으로 부각시킬 필요성이다. 미션이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 역사에서의 암흑기에 속하고 조명이 덜 됐던 1900년 전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국사시간에 한국 최초 전기가 언제, 어디에서 들어오고, 철도나 우편 등등의 서양문물 연대기를 왼다. 항일운동을 한 단체들은 물론, 일진회처럼 친일한 조직들 이름을 상당수 암기해간다. 


극우단체 흑룡회는 1901년 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가 한반도, 만주, 시베리아 일대의 낭인들을 모아 결성하였다. ‘흑룡’이라는 명칭은, 일본이 흑룡강(黑龍江, 아무르강) 일대의 주도권을 차지하도록 지원함을 목표로 하여서였다. 흑룡회는 낭인들의 무력집단였을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기관지《흑룡》도 간행하였다. 대아시아주의를 지원하여, 쑨원(孫文)이나 에밀리오 아기날도와 같은 혁명론자에 자금을 빌려주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명성황후 시해를 비롯하여 한일합병의 실무자들이었다. 일찍이 해상에 손을 뻗친 그들은 독도를 지도에서 지우면서 리앙코르트암이라 명명하는 등,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독도 분쟁의 원조이자 원흉이다. 이 조직은 숫자가 많지 않았음에도 1900년대 아시아의 역사를 휘갈겨왔던 실세 조직이다. 1946년 연합군에 의해 해산되었지만, 1961년, 흑룡구락부가 재결성되어 아직도 실존하는 극우조직이다.  

이 조직 하나를 통해서도 방대한 아시아사, 아니 세계사가 파노라마로 전개되고 있다. 션샤인 촬영장을 보여줄 때 “여기는 조선 최초로 전기 점등식을 한...., 구동매가 사탕을 산 제과점....” 이런 관광지식 해설도 필요하겠지만, 심도 있는 곁가지 이야기도 샘물처럼 솟아날 곳이 선샤인랜드다. 스토리텔링이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 문·무를 겸비한 논산만의 보고(寶庫)다.  


논산스러움으로 승화

 

세 번째. 미션의 대박에 기대기도 하지만, 더불어서 논산만의 ‘논산스러움’에 대한 갈증이다. 미션은 스토리를 상당 공개하여 스포일링됐음에도 여전히 신비요 긴장의 연속이다. 매주 토·일밤 9시 브라운관 앞에 모여든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한다. 과연 대작가 김은숙스럽다. 최근 그녀가 칭찬하고 격려한 드라마가 하나 있다. 현직 문유석 판사가 쓴 ‘미스 함무라비’가 그것이다. 그가 이 대본을 생생하게 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배경 무대가 다름 아닌 자기 일터이기 때문이리라. 전업작가가 아무리 파고들고 빼어난 필력을 발휘해본들, 수십년 몸담았던 내부자들보다 리얼하게 그려낼 수가 있을까? 논산이야기, 논산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답은 간명하다. 오랜 동안 논산땅에서 직접 살아온 사람, 그러면서도 기록하는 데 겁내거나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서준다면 딱~이다. 본지가 하반기를 맞아 영입한 시민기자(市民記者)들이 금상첨화 주인공이기를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 이지녕

[사진] 화앤담픽처스 제공

이 글은 『놀뫼신문』 2018-07-19일자 ‘기자의 눈’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s://nmn.ff.or.kr/23/?idx=1052493&bmode=view

작가의 이전글 예술은 가까운 곳 일상·속에, 기억·속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