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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Jan 26. 2019

갈미한과처럼 물리잖는
알콩달콩 식구들

- 논산 광석면 갈산2리 :  갈미한과와 경로당밥잔치


논산 마을기업이 총 8개이다. 그 중 한과를 하는 곳이 두 군데이다. 하나는 벌곡면의 전통맛고을공동체이다. 2012년 지정을 받은 곳으로서 ‘윤오복더덕향한과’로 유명한 전통한과 생산 판매업체이다. 다음해인 2013년도 지정을 받은 마을기업은 광석면에 두 곳이다. 우선 갈산2리영농조합인데, 전통한과 및 전통주 제조판매 및 체험을 사업내용으로 하면서 윤여정 당시 이장이 대표를 맡아서 출범하였다. 같은 해, 같은 면 사월리에서 “안산마을공동체”도 태동하였다. 전통 장류 제조 판매 및 체험을 겸하는 곳인데, 갈산리와 가까워서 그런지 판매 행사 같은 때에도 보조를 같이 하는 편이다. 



오는 (2018년) 2월 11~14일 논산시청사 농협 앞마당에서 설 선물 판매전이 펼쳐진다. 시청에서는 사내방송을 하여서 가급적이면 한과나 전통장류를 명절 선물세트로 장만하도록 권유한다. 추석 때도 4일 정도씩 시청앞마당에서 가판을 하는데, 갈미한과와 함께 나란한 이웃이 하나 있다. 메주로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의 장류를 만들어서 들고 나오는 옆동네 ‘안산마을’이다. 천막을 치고 좌판을 벌일 때 다른 마을기업도 합류하고 그러면 장이 더 흥겨워지련만, 8개의 마을기업과 9개의 사회적 기업의 연대나 연합이 말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다. 


같은 동네 안에서 마을기업을 통한 대동단결도 쉽지 않았다. 갈산2리는 모두 55가구이다. 2013년, 그러니까 5년전 마을에서 몇 차례 회의가 열렸다. “마을기업이 되면 5천만원이 들어오니까, 하자! 그런데 영농조합법인으로 해야 하니까 출자금은 30만원씩 내자.” 그래서 참여한 가구가 37가구, 약 70%가 찬성쪽이었다. 그러나 다음해 “아무래도 20만원을 더 출자해서 50만원씩 하자”고 상정했을 때 상황은 급반전.... 추풍 낙엽처럼 우수수~~ 더 이상 투자를 원하지 않는 22명에게는 받았던 출자금마저 몽땅 돌려주고 나서 정리해보니, 남는 것은 15명의 출자금 750만원. 이렇게 굳어지고 확정된 상태는 지금까지 그대로이다. 



[갈산2리영농조합법인]

-법인형태: 영농조합

-소재지: 광석면 갈산2길 14

-대표자: 윤여정

-회원수: 15명

-마을기업약정체결일: 2013.11.20.

-목적사업: 전통한과 생산판매

-2017매출액: 5천만원

-기부활동: 2016년 한과100만원 상당 관내어린이집과 사회복지시설에 기탁


마을기업으로 지정되고 나서 두 번의 정부지원금을 받았다. 첫 번째는 5천만원, 마을회관 앞에 있는 건물 리모델링하고 한과제조를 위해 기본 설비 갖추고 저온창고, 건조기도 들여놓았다. 두 번째는 2천만원. 바로 옆 건물에 흰떡 기계를 들여놓았다. 그 떡방아간 벽에는 멋진 소나무를 그려놓아서 운치도 돋보였다. 

 

마을회관과 마주하고 있는 이 두 건물은 모두 마을 재산이다. 마을 단위로 기업을 시작했으니 매년 돈은 얼마씩 벌었는지 궁금해진다. 지난 5년간 매출액을 보면 첫해 1천만원, 둘째해는 2천만원.... 이런 식으로 매년 1천만원씩 정비례 증가일로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합원에게 돌아간 배당금은 시원치 않은 상황ㅜㅜ 생각만큼 매출이 신통치 않은 까닭이다. 


어쨌거나 생산 과정부터 살펴보았다. 한과선물세트 단일품으로 판매가 3만원이다. 세트 속에는 일반적인 누에모양의 한과가 주종이고, 강정으로는 깨강정, 쌀강정이 들어 있다. 동네에서 출하한 찹쌀을 사다가 여러 공정을 거쳐서 기름에 튀기면 급격하게 부풀어 오른다. 그것을 물엿에 묻혀 티밥을 잘게 부순 연사로 묻히면 완성품이다. 갈미한과를 맛본 사람들의 이구동성은 “지름 쩐내(기름 찌들은 냄새)가 안 나고 식감이 상큼하다”. 강정은 완성후 칼로 잘라내는데, 이 모든 작업을 15농가가 공동으로 한다. 


처음 마을회의때 “마을 기업을 하게 되면 업종을 무얼로 할 것인가?”가 논의되었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해오던 일, 즉 찹쌀로 한과만들기와 체험, 그리고 동동주 담가서 파는 걸로 얘기가 모아졌다. 동네에서 해오던 방식 그대로 과자도 만들고 술도 빚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며 한과 잘하는 데 찾아다니며 벤치마킹도 했다. 그렇지만 결론은, 남의 것 많이 보는 것보다 내가 한번이라도 더 직접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량으로 하다 보니 온도나 습도를 잘 맞추지 못하여 상품 가치가 없어서 아깝지만 버려야 하는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 15명이 함께 나와 공동 작업을 하는데, 탁월한 리더가 나서서 진두지휘하지 않는 형태이다. 서로 얘기하고 상의해가면서 해가다 보니까 이제는 실력도 저절로 상향평준화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각자 스스로 터득해가는 집단 업그레이다. 


 

벅찬 판로 턱걸이


생산이 괘도에 진입하여 제품의 질은 탄탄해졌지만, 이제부터 문제는 판로이다. 가장 많은 판매는 외지에 나가 있는 가족 친지 등이 총동원되는 체면 판매이다. 그 다음으로는 명절때마다 시청이나 면사무소에서 팔아주는 명절특수이다. 갈산리 바로 옆인 성동산업단지에도 광석면장으로 있던 김영태 관리소장이 주선하여 판매해본 적이 있단다. 그러나 지속되지는 못했는데, 산단 내에 명절선물세트 제조처가 있어서 충돌하는 모양새 때문였다고...


판매 못지않게 한과체험비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작년도 생활개선회 전체 모임에도 일정량을 준비해 가지고 갔다. 일인당 체험비 5천원으로 산정해서 100명분으로 계약하고 나갔지만 실제 만들어간 사람은 두 배 이상였으니, 배보다 배꼽이 크긴 했지만 홍보 차원에서는 보람찬 시간이었다. 성남시 태평동 주민자치위원회와 자매결연을 맺은 터라서, 그들이 버스를 몰고 광석 시골로 내려오면 호박도 따고 한과도 만들어서 갖고 올라간다. 그러나 유치원 아이들이나 초·중 학생들이 찾아와 체험하기에는 장소부터 협소하다. 장소 확보와 체험시설 확충부터가 문제이지만, 영농조합원 대다수가 고령자여서 누가 체험을 온다 하여도 올인하여 지도할 교사가 없다. 인력 문제는 갈산리만의 현상은 아니겠기에, 마을기업을 지정할 때는 사후 운영까지 예상하고 지속 가능성까지 담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본인 생업 제쳐두고 바깥에 나가서 맨투맨 영업 뛸 사람도 거의 없고, 더더군다나 인터넷에 띄워 판매한다는 것은 농촌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갈미한과처럼 주어진 선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는 걸로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기왕지사 투자한 이상 지속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대책이 시급하게 느껴졌다. 


처음에 기획했던 동동주는, 동네 자체 소비 수준이다. 이 또한 누군가 나서서 표준화를 비롯하여 법적, 제도적인 보완 작업을 해나가야겠지만, 한과 하나도 여의치 않은 마당에 일만 벌이는 꼴이다.  현재로서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점에서 가산점이다.  다만, 기왕지사 설비도 갖추고 기술력도 보완된 마당에 화룡점정, 마지막 단계인 마케팅만큼은 시청 사회적경제과에서 판매전담팀을 구동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갈산리 정듬뿍 집밥


영농조합으로 생각만큼 돈은 못 벌지만, 갈산2리 마을회관 신발장은 오늘도 문전성시이다. 점심때뿐 아니라 저녁때도 잔칫집이다. 밤에는 잠까지 자는 동고동락 시작 직전인데, 이 동네에서는 무려 8명이 신청했으니 살림집도 이만저만 큰 집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마을회관 경로당에서는 3시 세끼가 이어진다. 이웃사촌들이 먼데 떨어져 있는 자식이나 친척보다 더 가까워져서, 그야말로 한솥밥 한식구나 진배없는 동네풍경이다. 그렇다고 대가족 살림비가 나라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1년에 난방비와 운영비로 나오는 돈이 월 30만원 안팎이니 밤낮 엄청난 대식구들 생활비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들쭉날쭉하기는 하지만 점심때는 15명, 저녁때는 10여명 안팎으로 식사를 나눈다. 그 쌀값이나 부식비는, 정해진 회비나 규칙이 없다. 각자 알아서 집에 있는 양식이나 반찬, 부식들을 날라와서 한자리에 펼쳐놓는 것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 뜨끈한 동태국과 꽁치졸임이 나왔는데, 이런 것은 시장에서 돈 주고 사와야 하는 것들이다. 외지에 나가 있는 자녀들은 안다, 우리 부모님이 어디에서 3시세끼 맛나게 드시고 다니는지를! 그래서 그들은 용돈을 마을회관에다가 낸다. 그 내용이, 달력을 뒤집어서 건 백짓장에 그대로 적힌다. 돈으로만 내는 게 아니라 귤 같은 과일 한두 박스로도 내고 간다. 이러다 보면 수요와 공급 불일치할 때도 많을 거 같은데, 희한하게도 10여년째 평균율을 유지해왔단다. 


여기 경로당은 갈산1리와 함께 하다가 9년 전 박한수 초대노인회장때 새 회관을 증축하였다. 당시 임성규 시장은, “영세민까지 10만원 이상씩 추렴해 온 동네가 합심하여 마을회관을 짓다니요....” 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짜 칭찬 받을 일은 한솥밥먹기였다. 현재 회관 자리는 움푹 들어간 논 자리였다. 그걸 복토하고 돋우는 데 시간이 물 쓰듯 걸렸다. 잠깐 하다 말 줄 알았던 인부들 밥해 메기는 일이, 어느새 예닐곱 달로 늘어났다. 동네일이니까 구경 나온 사람들도 때가 되면 밥숟가락 하나씩 더 놓고서 하게 되는 공동 식사는 시골 마을의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하다가 좀 지나니까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한솥밥 식구가 되어 갔다. 하루 이틀도 아니었으니 밥해서 내놓는 사람들이야 징그러웠겠지만, 동네사람들은 귀가 입에 걸렸다. 밥도 함께 먹으니 더 맛나지, 머지않아 놀이터 동네 사랑방도 생길 거이고.... 그러나 마냥 공짜밥을 먹을 수만은 없자, 집에 있는 먹거리들을 챙겨가지고 나오기 시작하였다. 


갈산표 들밥 집밥

서기수 노인회장

 

이렇게 갈산2리는 한솥밥동네가 되어간 것이다. 2대 박병태 회장을 거쳐서 작년 9월에는 올해 71세인 시골에서는 젊은이축인 서기수 씨가 노인회장직을 맡았다. 부인인 이경숙 씨는 최장수 부녀회장 기록 보유자로 웬만한 감투 안 써본 게 없는 사이클링 히트 러너이다. 생활개선회논산시연합회장, 4-H후원회 이사와 감사, 농협이사, 농업산학협동심의회 의원....이런 캐리어보다 빛나는 것은 동네주모로서 밥당번이다. 대외활동이 잦아서 외식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동네밥이란다. 


남편인 서기수 회장은 꽃할배 요리사이기도 하다. 일전에는 식사당번인 부인이 외출하게 되자 대신 주방으로 들어가 카레요리를 해내어, 지금까지의 식단과는 색다른 차별화를 기하였다. 기자가 방문한 날, 최근 집밥강사모임에서 회장으로 당선된 김길희 씨가 갈산리를 찾아와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였다. 논산시적십자협의회장을 역임했던 캐리어 우먼답게 활동적인 김길희는 매년 꽃할배로 들어오는 신입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는 집밥강사로도 활동중이다. 계룡에 “미나미”라는 제과제빵업체가 있다. 여기서 케이크도 제조하는데 원통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깎여져 나가는 빵들은 아깝다. 맛은 기가 막히게 그대로인 그것들을 모아서 사회복지단체 같은 데 전달해주면 엄청난 호반응이라는데..... 이 배달 업무를 묵묵히 해주는 장본인이 다름 아닌 서회장이라고, 대놓고서 칭찬릴레이다. 


서회장은 그간 벼농사뿐만 아니라 노지 수박농사도 10여년간 지었단다. 밭떼기로 500만원에 넘기라고 해도 안 넘겼는데, 그 두 배인 소비자가로 팔아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해도 수박 농사를 버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러자면 얼마나 정성이 들어갔을까..... 2002년부터는 처남에게 인계받은 잔디업을 해왔는데, 요즘 잔디업계 경기가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이래저래 시간이 나니까 노인회장으로서 동네일에 충실하고, 꽃할배봉사에도 나가는 상황이다. 현재 갈산리 프로그램은 금요일 요가, 올해부터하기로 한 월/수 한글대학, 저녁때는 독거노인 8명을 위한 동고동락이 스탠바이중이다. 


현재도 동고동락 공동체 수준인데, 본격적인 동거/동락까지 하게 되면 명실공히 한동네, 한식구가 될 것이다. “예전에 나홀로 이불 속에 계시던 분들이 동네 마을회관으로 걸어서 나오니, 이제 우울증 같은 것들은 저리 가라가 됐어요!” 안 나오면 “오늘은 왜 못 나오셨나?” 물어보게 되니 밤새 안녕 걱정도 줄어들었단다. 무엇보다도 함께 먹다보니 사람 사는 정(情)들이 도타워졌다고, 신문에다가 황 시장 칭찬 잔뜩 쓰라고 압력들이다. 


얘기를 마치고서 일어나려 보니 몸이 묵직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점심은 단단히 과식을 한 모양이다. “오늘은 빵을 내려놓고 가지만, 커피가 다 떨어져서 달랑달랑하니 다음번에는 커피 한 박스 내려놓고 가겠습니다”라고 하니, 그런 거 당체 신경 쓰지 말고 오가는 길에 스스럼없이 문 열고 들어오기만 하라신다. 


[글·사진] 이지녕 


(이 글은 1년여 전인 놀뫼신문 2018-02-07일자에 2면 동네방네에 실린 겁니다.
 다시 설날 명절이 되어서 올립니다.)

https://nmn.ff.or.kr/23/?idx=514628&bmode=view


연관기사(2018-02-13)

https://nmn.ff.or.kr/21/?idx=515529&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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