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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Jan 26. 2019

혼인날 닭이 알 낳으니
길조로다, 길조!

- 계룡시 사계고택과 전통혼례

지난 (2018년 10월) 20일 오전 사계고택에서 두 쌍이 결혼식을 올렸다. 모두 전통결혼식으로 치루어졌는데 10시부터는 왕대리 장애인신부가 휠체어 타고, 11시부터는 캄보디아 새댁이 가마타고서 산넘고 물건너 계룡에 시집을 왔다. 


사계고택은 여늬 대감집처럼 문턱이 높지 않다. 결혼식 하루 전날에는 ‘사계김장생 문학상 시상식과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렸다. 영산홍 피는 봄에는 제4회 사계고택 어린이 사생대회가 열렸다. ‘별빛이 내리는 밤’은 사계고택 인문음악회의 이름이다. 


이러저런 행사명에서 보듯 닫혀 있기만 하던 사계고택은 빚장을 열고 쇄국정책을 풀어제침으로써, 명예까지 얻었다. 작년에 '유유자적 사계고택 체험'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것이다. 명예의 전당이라는 노블리스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턱을 한껏 낮추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계김장생문학상 시상식을 마치고


사계김장생 문학상과 문학의 밤


결혼식 전날인 19일 불금에는 사계고택에서 문학행사가 2부로 열렸다. 1부는 한국문인협회계룡시지부(지부장 박주용)가 주관한 제14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시상식! 올해 출품된 230여편의 작품 중에서 신인문학상, 특별상에 각각 3명씩 선정하여 시상했다. 신인문학상은 소설부문 박하의 ‘해미’, 시부문 우혜린의 ‘일시정지’, 수필부문 이진복의 ‘코뚜레 없는 소가 되어’가 선정되어 상장과 상금 각 100만원씩 수여했다.  


올해 신설된 ‘계룡시민을 대상으로 한 특별상’은 동화부문 송우들의 ‘아로의 바다’, 시조부문 송치훈의 ‘섬, 너를 보낸 후’, 수필부문 김애경의 ‘고양이’가 선정되었다.


2부는 밤 10시까지 문학의 밤으로 깊어갔다. 수상자 작품 낭송 및 신작시 발표회, 최병학의 하모니카 연주, 울림 하나의 시노래 등이 이어져 고택을 찾은 다수의 시민들에게  가을밤 정취와 문학의 향기를 듬뿍 안겨주었다. 


생전 처음 가마 타고 장가 가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고택은 또다시 분주해졌다. 전통혼례 재현이지만, 마당극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준비하는 시간이어서이다. 계룡 왕대리에 살고 있는 장애인부부 한쌍이 먼저 도착했고, 다문화가족 한쌍도 뒤를 이었다. 


혼주는 그 두 쌍이 아니라, 계룡시청의 권유를 받은 기호문화유산활용진흥원(이사장·김선의)이 나섰고, 기왕 치루는 김에 고택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서 전통혼례로 준비하였다. 이 혼례는 충청도 출신이 대표로 있는 한국전통혼례원에서 집례하였다. 


마당에 결혼 축하 하객들이 그닥 많지는 않았다. 캘리 강사가 자리를 펴면서 빈 자리를 메웠고, 윤재은 시의원이 내내 자리를 지켰다. 혼례는 홀기 소리에 따라서 천천히 진행되었다. 서양의 웨딩은 대화가 흐르고, 동양의 혼인은 침묵이 흐른다. 첫번째 신부가 입장할 때는 휠체어 소리와 함께 자그마한 소리가 있었다. 원래는 소슬집 대문도 아니었고 돌계단도 아니었단다. 나지막 오르막길이었는데, 복원시 돌 계단으로 만들어 버린 모양이다. 


이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선의 이사장의 기억에 따르면, 행랑채에서 혼인을 치러준 적이 한번 있다고 한다. 할머니는 두레일이나 관혼상제 어떤 때 가릴 거 없이 연중 소박한 밥상으로만 차렸고, 그것을 온 식구가 차별 없이 함께 먹는 ‘골고루 가난한 삶’으로 일관했다고 술회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삶은 사계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화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 간단 없이 이어지는 난세에 살면서도 국가와 백성을 섬기는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였던 사계선생은 대학자요, 큰 스승이기 이전에 가난한 청백리였다. 고령의 나이에 고난의 의병장으로서 완전 낮아지는 삶을 선택하였다.  이런 사계선생의 애민정신이 이번 다문화가족과 장애인가족의 사계고택 전통혼례예식이라는 꽃으로 피어난 듯도 싶다. 

김선의 이사장은 축사에서 “문화재청 생생사업으로 사계고택에서 소외된 이웃 두 쌍의 혼례를 거행하게 되었는데, 사계 할아버지가 기뻐하실 거”라고 소회를 밝혔다.


돌발 해프닝에 어깨들썩 한마당


혼인식은 시종 엄숙 & 진지 모드이면서도, 무대가 실내 아닌 마당인지라 해프닝 발생 빈도가 높기도 하다. 신랑에게 엄청 큰 젓가락으로 백설기 떡을 들어올리라 명하니 신랑은 낑낑 댄다. 이건 충청도 방식인데, 집례자가 전국으로 보급시켰다고 자찬 너스레다. 끝판에 신랑에게 노래 시켰으나 춤으로 대신할 즈음, 안 시켰으면 서운했을 법한 어와둥둥 어깨춤이 한폭의 나빌레라~~ 두 번째 혼인에서는, 집례자가 캄보디아 새댁을 베트남이라고 부르자 신부친구들 득달같이 ‘캄보디아’를 열호한다. 막판에는 청보자기에 쌓여 있던 닭이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몸부림을 치더니만 알을 하나 쑥 빠뜨린다. 그 순간을 집례자나 하객들이 두 눈으로 목도하면서 외친다. “경사로다, 길조로다!” 온 마당이 어깨춤으로 들썩~들썩~ 


이 길조를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리자 “아직도 전통혼례를 올리는 곳이 있는지?” 의아하다는 리플도 올라왔다. 이에 질세라 김선의 이사장은 길게 올렸다. “문화재청 생생사업으로 사계고택에서 장애우 한쌍과 다문화가족 한쌍의 결혼식이 있었어요. 신부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는데 뭉클하더군요. 2부에서는 신부가 캄보디아에서 왔는데 너무 예뻤구요. 하객으로 오신 장애우, 다문화가족들  모두 즐거웠습니다. 또한 결혼식도중에 닭이 알을 낳는 해프닝(?)도 있었어요. 모두들 길조라고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행사인데, 너무 감동적으로 매년 하려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사계선생님도 흐뭇해하실것 같아요.”


매년 한다??? 전통 혼례는 혼인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막상 하고 싶어도 장소나 집례자 구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작금 정부의 출산정책이 다각도에서 중지를 모으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급드는 생각 하나! 우리가 어렵게 살던 시절에도 관혼상제 중 혼인은 인륜지대사, 으뜸 경사였다. 이웃 동네까지 떠들썩한 고을의 잔치였다. 그런 기쁨을 이벤트로라도 이어간다면, 요즘 학생들이나 청년들이 그런 넉넉함과 진중함에서 자극받는 바 결코 적지 않을 성싶다. 마치도, 『미스터 션샤인』에서 가마 가두 행렬을 보며 동양의 신비에 휩싸이는 듯한, 연무대발 고애신 『미·션』의 열풍처럼~~~~



[글·사진] 이지녕


(이 내용은 『놀뫼신문』 2018-10-24일자 6면에도 실렸습니다.)

https://nmn.ff.or.kr/17/?idx=1275523&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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