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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베 Nov 29. 2017

토끼 소주의 유의미한 가치

뉴욕 소주?

소주는 양반이 마시는 고급술이었다. 쌀로 막걸리를 만들면 맑게 뜨는 청주는 웃어른에게 먼저 올렸다. 아래에 남은 탁주는 노동자들의 술이었다. 막걸리를 빚은 후 정성스럽게 증류해야만 소량 얻을 수 있는 소주를 평민은 쉽게 접할 기회가 없었다.


소주가 서민의 술이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유례없는 급속한 산업화와 그 시기를 함께한다. 농업 사회이던 시절에는 당연히 막걸리를 주로 마셨다. 그리 높지 않은 도수로 적당한 취기가 올라 육체노동의 고됨을 조금이나마 덜어줬고 든든하기까지 했다. 


1960년대에 산업화가 진행되면서부터 속도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섞은 값싼 희석식 소주는 이 시절부터 폭발적으로 판매량이 늘어난다. 개인의 부와 나라의 경제성장을 위해 미친 듯이 일해야 했고 그 애환을 풀어낼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술은 맛으로 즐기는 게 아니었다. 취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1960년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진로 소주 광고를 보면 이런 시대상이 잘 드러난다. 해가 지자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한 건물에서 빠져나와 일렬로 한곳으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두꺼비집’. “향기가 코끝에 닿으면 혀끝이 짜르르르 하네”라는 가사의 CM송이 울려 퍼진다. 이보다 명확한 의미 전달이 어디 있겠는가. 1980~1990년대까지 이어진 산업화의 광풍은 ‘부어라 마셔라’ 하는 한국 음주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이제야 이런 문화가 지양되는 시점이 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음주 문화에 다시 적응하는 중이다. 취향을 들먹이기 시작했고 소주에 대한 다른 접근과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 맥락은 화요나 미르 등 전통 방식에 가깝게 소주를 생산하는 것이다. 또 다른 맥락은 기존의 희석식 소주를 만들던 회사들이 쓰는 쉽지만 반응이 확실한 방식이다. 처음처럼 순하리, 자몽에 이슬, 이슬톡톡 등 알코올 도수를 줄이고 다른 향이나 탄산으로 그 허전함을 채운 제품이 바로 그것이다. 둘 다 시작점은 같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무작정 취하기만을 위해 술을 마시지 않는다. 역한 알코올 냄새를 싫어한다. 반세기 넘도록 한국을 지배해온 희석식 소주가 맛없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았다.


둘 다 반응은 뜨겁다. 그렇지만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인다. 도수를 낮추고 향이나 탄산을 첨가한 쪽은 잠깐씩 폭발적으로 유행하고 시들해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전통 방식의 소주를 생산하는 쪽은 조용하지만 유의미하게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증류식 소주 중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인 화요의 경우 괜찮은 수준의 레스토랑이나 주점 등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좋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그에 어울리는 좋은 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 작은 시장을 화요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수요는 분명히 생겼는데 이 사업에 뛰어들려는 기업이나 개인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토끼 소주가 화제다. 토끼 소주는 미국 뉴욕에서 생산하는 미국 최초의 한국식 증류 소주다. 브랜 힐이라는 인물이 한국 체류 중 소주의 매력에 빠져 1년 동안 술 빚는 법을 배운 후 뉴욕에서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누룩은 수입할 수가 없어 직접 배양에 성공하면서 더욱 이목을 끌었다. 실제로 뉴욕에서 꽤 성공을 거두고 있다. 맛본 사람도 거의 없는 한국에서도 덩달아 화제다. 흔한 사례가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안 다룬 매체가 없을 정도다.


‘토끼 소주가 정말로 훌륭한가’보다는 웬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역수입했다는 데 열광하는 것이다. 한류 신화에 목을 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의 아무개가 뉴욕 브루클린에서 맥주 만드는 법을 배워 와 한국에서 그 사업을 시작했다는 정도의 이야기다.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토끼 소주는 여러 면에서 실제로 훌륭하고 브랜 힐은 진지하게 이 일에 임하고 있다.


토끼 소주의 성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문화가 우수하다느니 하는 논리로만 접근하지 않으면 된다. 소주 그 자체로 이야기해보자. 소주는 훌륭한 술이다. 우리는 반세기 동안 그 사실을 잊고 살았다. 뉴욕의 한 젊은이가 이 사실을 다시 주지시켰다. 토끼 소주의 사업 모델만 벤치마킹해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술 문화와 시장은 분명히 재편 중이다. 소규모 양조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이 크래프트 맥주를 만든다. 그리고 나머지는 주로 막걸리를 생산한다. 한 가지만 명심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진짜 맛있는 소주의 등장을 갈망하고 있다.




*<에스콰이어> 2016년 8월호에 실린 본인의 기사를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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