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감사 일기 (10)
곧 백수가 아니게 될지도.
1. 나를 찾는 회사들에게 감사합니다!
개발자 경력 3년이면 크고 작은 회사들에서 연락이 종종 오는데, 그때마다 '아직은 의사가 없지만, 의사가 생기면 연락드려도 될까요?'라고 회신한다. 그러다 엄청나게 높은 연봉 협의가 가능하다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한테 이렇게나 많이 줄 거란 말이야?'라는 호기심으로 회사를 알아보고 티타임을 가져보자는 연락을 했다. 당장 다시 취직할 의사가 크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정말 괜찮으면 들어가 볼 생각도 있었다.
모든 면접이 끝나고 내가 연봉을 제시할 차례였다. 처음 나에게 연락 주실 때 적혀 있던 예시 금액이 이전 회사 연봉의 100% 인상률이었는데, 엄청난 액수이지만 그냥 그 액수 그대로 제안했다. 어처구니 없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뭐 애초에 그렇게 연락이 왔으니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제안을 받아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말문이 막혔다.
많은 고민을 했다. 지금 내 경력에서 이 연봉은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받지 못할 금액이다. 회사도 괜찮고, 돈만 보자면 안 갈 이유가 없었다. 회사의 접근성이 아쉽긴 한데, 그거야 이사를 가면 된다. 다만, 이렇게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나라는 고민이 컸다. 예전처럼 회사의 서비스를 파악해가고 새로운 동료들과 어울려가며 열심히 일을 하겠지.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평일의 모든 시간을 다시 회사에 투자하겠지. 지금처럼 다이나믹한 일상은 많이 잃게 되겠지만. 아, 어쩌나!
'제안 정말 감사드리지만, 당장은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하셔서 그러겠다고 했다. 다시 회사를 다니면 지금 당장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백수가 되면서 시작한 나의 새로운 활동들이 앞으로의 나에게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태 저절로 돌아가는 톱니바퀴 속에 살았다면, 지금은 내가 의식적으로 돌려야 돌아가는 톱니바퀴 속에서 산다. 학교, 취준, 회사라는 당연해 보이던 목표들을 좇고 그러한 단체에서 정해주는 일과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닌, 불명확한 목표를 찾고 의심하고 시도해보는 이 시간이 앞으로의 나에게 더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좋은 제안에 감사드리지만 지금은 이대로 더 살아보겠습니다!
2. 스포츠마사지를 잘 배우고 있는 나 자신에게 감사합니다!
스포츠마사지 수업도 일주일이면 끝난다. 와- 벌써 시작한 지 2개월이 되었다니! 시간 참 빠르다! 수업은 2주, 1개월, 2개월 이렇게 3가지 코스가 있다. 사실 2주만으로도 모든 부위에 대한 기술을 배운다. 하지만, 1개월과 2개월 코스가 있는 이유는 이론으로는 알고 있는 것들을 체득할 때까지 반복 연습을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시작하는 김에 정말 제대로 배워가고 싶어서 2개월 과정을 신청했고, 어느새 그 2개월이 끝나간다.
동작들은 꽤나 능숙해졌고, 쌤도 잘한다 해주시고 나한테 마사지를 받는 사람들도 만족하신다. 과정이 끝나가는 지금은 이제 동작들의 순서에 익숙해지고, 내가 잘하는 동작과 못하는 동작을 파악해 잘하는 것 위주로 나만의 순서를 짜가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 수업 동안은 동작들의 순서를 외우는 것에 집중했다. 되돌이켜보면 정말 꾸준히 열심히 연습해왔다. 수업 시간에 쌤을 도와 조교 같은 느낌으로 아직 서투르신 분들을 같이 봐주기도 한다. 쌤이 '취미로만 하기에는 조금 아깝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도 기분이 좋다.
앞으로의 걱정은 이렇게 잘 배워둔 기술을 어떻게 해야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을지이다. 수업이 끝나면 주변 지인들한테 꾸준히 해주거나 마사지사로 취직을 하지 않는 이상 이제 기술을 응용할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 귀하게 배운 기술 오랫동안 잘 써먹어야지!
3. 주말에도 꾸준히 나와 공부하는 나 자신에게 감사합니다!
나는 집에 있을 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집중해서 보려는 건 아니고 그냥 적막하니까 배경음악 삼아 틀어놓는다. 그런데 그런 걸 한번 보기 시작하면 시간이 훅 지나가 버린다. 외출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낼 것이다. 기억에 남지도 않고 푹 쉰 것 같지도 않은 그런 시간. 중간중간 책 조금 읽으려다 말고를 반복하겠지.
나 자신이 그럴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웬만하면 일어나서 한두 시간 내에는 집을 나간다. 약속이 없으면 근처 단골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한다. 주말에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보통 낮 12시에 집을 나간다. 공부하고 피아노도 치다가 저녁을 먹으러 잠시 집으로 돌아가는데, 가장 어려운 건 저녁을 먹고 나서이다. 배부르니 조금 졸리기도 하고, 누워서 편하게 유튜브나 보고 싶고, 오늘은 이 정도만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태까지 그 유혹을 받아들였을 때 '쉬길 잘했다'보다는 '아 역시 나갔어야 했는데!'라는 후회가 많았다. 타임 킬링으로 영상을 본다고 피로가 풀리는 것도 아니고, 보는 영상들이 그만큼 가치가 있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 일단 몸을 움직여서 나가면 뭐라도 한 가지를 더 하고, 다른 풍경이나 사람들을 보며 뭐 하나라도 더 느낀다. 집에 혼자 있으면 작은 화면 속에서 내가 끌리는 영상만 편식한다.
휴- 오늘도 다행히 그냥 누워버릴까 하는 유혹을 이기고 나왔다. 덕분에 이렇게 글을 하나 더 쓰게 된다. 고생했다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