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감사 일기 (9)

혼자의 시간.

by 이한솔

1. 근처에 킥복싱짐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옛날에 약 4개월 간 복싱을 했다. 엄청 재밌었다! 갈수록 힘이 실리는 느낌이 좋다. 오래는 다니지 못했는데, 복싱짐의 위치도 애매했고 퇴근 후의 피로감도 컸다. 그 당시에는 본가에서 회사로 통근했는데, 통근 왕복 3시간이 걸렸다. 약 1년 간 그렇게 통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맨날 그랬는지 싶다. 회사 점심시간마다 혼자 샐러드를 먹고 남은 시간 눈을 붙이곤 한걸 보면 엄청 피곤했지만 어찌 저찌 버티면서 살았나 보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복싱짐에서 운동을 하고 나오면, 집까지 다시 15분을 걸어가야 했다. 거리가 애매해서 버스를 타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이 15분이 날이 더워질수록 힘들어졌다. 운동이 끝나고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15분을 걸어가면 또 땀이 나고, 집에 도착하면 한번 더 씻는다. 또 씻는 것도 귀찮지만 걸어가면서 다시 땀나는 게 거슬렸다. 그러다 보니 한 두 번 빠지게 되고, 그러다 그만두었다. 복싱짐이 본가 코앞에 있었다면 더 할만하지 않았을까?


요즘 백수가 되면서 엄청 많은 새로운 활동들을 시작했다. 그중 운동은 따로 시작하지 않고, 평소에 하던 홈트레이닝만 하고 있었다 (홈트라고 해봤자..). 그러다 스포츠마사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킥복싱'이라는 간판을 마주쳤다. 카카오맵에 검색해보니 내부 시설도 깔끔하고 회원들도 잘 관리하고 있어 보였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들어가서 결제했다. 밴드랑 글러브도 다시 구매하고! 새로운 시작은 항상 두근거린다.


KakaoTalk_Photo_2021-04-16-14-00-56.jpeg 재밌게 해 봐야지!!


시작한 지 이제 2주일째다. 펀치는 이전에도 해봐서 익숙하지만, 킥은 정말 처음 해봐서 다리도 안 올라가고 자세도 엉성하다. 골반을 그렇게 높이 올려보려고 한 적이 없어서 골반도 아프다. 하지만, 갈수록 튼튼해질 몸과 체력을 생각하면 계속 더 열심히 하고 싶어 진다. 근처에 킥복싱짐이 있어서 이렇게 새로운 시작을 해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강해져야지! 꾸준히 하기를..! (해외 대학원에 붙으면 어차피 얼마 못하겠지만..)




2. 혼자의 시간에 감사합니다!


백수가 된 이후로 지금까지 엄청나게 많은 약속과 연락에 묻혀 살았다. 달력을 보고 약속이 없는 날이면 제일 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동네 친구라도 불러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오전에 학원을 다녀오고, 카톡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과 연락하고, 저녁에 약속을 다녀오고를 매일같이 반복하다 보니 자기 개발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카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별 연락이 없어도 계속 열어보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기획 단계에 있던 사이드 프로젝트들이 슬슬 개발 단계로 넘어오고 있다. 그러면서 나도 다시 개발 근육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적는 투두 리스트에 '개발 공부'를 넣기 시작했는데, 거의 실천해내지 못하는 걸 보고 '아, 슬슬 일상의 균형을 되찾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 일이나 사이드 프로젝트의 업무가 아닌 나 스스로의 공부를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약속 없는 날들을 너무 허전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계속 돌아다니고, 사람들과 연락하고 만나다 보니 책상에 앉아 조용히 내 할 일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어느새 지루하게 느끼고 있었다. 나 자신이 발전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시간인데! 이전에는 이 시간을 즐기며 엄청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SNS를 덜 신경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관성은 남아있지만. 한편,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는 건 계속할 건데, 나 혼자 공부할 시간을 다시 신경 쓰면서 할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금요일도 지난주 까지만 해도 항상 약속이 있었다. 스포츠마사지 학원을 마치고, 한 시간 정도 뭔가를 하다 보면 약속을 다녀오고 하루가 끝났다. 금요일에 이렇게 다시 개발 공부도 하고 여유롭게 글을 쓰는 게 참 오랜만이다.


KakaoTalk_Photo_2021-04-16-14-01-08.jpeg 오랜만의 이런 여-유-


다시 혼자의 시간을 즐겨봐야지!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약속들을 잡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하지만..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3.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내 성격에 감사합니다!


친구들이랑 만나면 내가 말을 참 잘 들어줘서 좋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고민거리들을 말해주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처음에는 말할 생각이 없던 것 까지 말해버리면서 장난스럽게 '케빈 효과'라고 불러주는 친구도 있다. 내가 별 특별한 걸 하는 것도 아닌데,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고민들을 말해주고, 나한테 의지하고 내 의견을 궁금해하는 마음들이 정말 고맙다!


그냥 듣는 거랑 집중해서 듣는 건 화자의 입장에서 분위기의 차이가 느껴진다. 이 느낌이 얼마나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상대방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반응의 속도, 그런 미세한 시그널들이 내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는지, 아니면 조금 다른 생각에 잠겨있는지에 대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말을 하다가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뒷 이야기가 더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음, 그랬어!' 하면서 굳이 말을 안 하게 된다. 반면, 상대방이 내 이야기에 몰입한 느낌이 들면 신나서 말이 계속 나온다.


그렇게 신나게 말하고 내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와 닿았다고 느껴져야 후련하다. 옛날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겉을 맴돌면, 그 공간에서 무언가 빈틈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 빈틈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놀면서도 무언가 허전하고 부족하게 느낀다. 반면, 정말 집중해서 경청을 하면 상대방과 연결되며 빈틈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나도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화자로서 말할 때, 상대방이 몰입하고 있다는 느낌이 안들 때 생기는 허전함을 안다. 그런 허전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항상 경청하려는 노력이 습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열심히 듣다 보면 이야기에서의 감정의 변화도 더 세세하게 느껴져서 재밌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최근에 여러 친구들의 고민을 들었고, 내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경청할 수 있는 내 성격에 감사하다!

이전 09화백수의 감사 일기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