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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Dec 01. 2020

고독한 시간

어느 현재주의자의 ‘길을 찾는 여행’ (35회)

“시인이라면 누구나 견뎌내야 하는 일”


  벌써 보름째다. 생면부지의 예버덩이란 곳에서 시집 원고 정리와 에세이를 쓰겠다며 작정하고 입주한지. 처음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고, 나중에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입주 기한이 한 달로 정해져 있으니, 이제부터는 고개를 내려가는 가속의 시간일 가능성이 높다. 괜히 조바심치지 말아야 한다. 줄어드는 날짜를 생각하다간 평정심을 잃고 만다. 새로 적는 게 아니라 퇴고와 편집에 가까운 시집 원고 정리는 최대한 냉철해야 한다. 감성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에세이 역시 논리적 사고와 충분한 자료 정리를 필요로 하는 일종의 노동이다. 때문에 서두른다거나 긴장해서는 결코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지난 2주일 간 본업은 시작도 못했으니 여간 불안하고 우울하지 않았다. 일부러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어떤 작업이든 그것이 문필일 경우에는 착상이나 발상과 같은 출발 신호가 필요한데, 바로 그것이 없었다. 그렇게 지지부진 시간만 허비면서 예버덩의 귀한 쌀만 축내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하나의 착상이 떠올랐다. ‘정리와 퇴고가 아니라 교정을 본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자.’라는. 또 집은 한 채면 충분하다는 생각. 처음부터 완성도와 고차원의 성취를 기대할 게 아니라 차분히 교정을 본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게 현실적일뿐더러 솔직한 태도라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관된 자세로 교정을 보았다.



  딱 30년 전이다. 이제는 소설가로 유명하기도 하고 유능하기도 한 그가 1년 후배로 입학했다. 신입생 티를 얼마간 벗은 2학기 초쯤인가 그와 나는 학과 세미나 실에서 시와 소설과 문학에 대하여 꽤 주제넘은 대화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들 끝에 그에게는 또래집단의 보편 감각과는 다른 장기가 있음을 알았다. 가령 굿이나 무당을 미신적 습속으로 치부해 경원한다거나, 점이나 꿈 해몽 따위를 비과학적 일탈이라고 비판하는 추세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는 손금보기의 달인이라고 했다. 손금에는 길흉화복의 미래가 모두 들어 있다고. 또 손금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도 알 수 있고, 결정적으로는 수명까지 짐작해 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두 손바닥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새겨서 들고 다니는 존재들이었다. 나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모두 내 손 안에 들어 있는 거였다.     


  처음에는 별로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20대 초반의 열혈 청년이 믿고 의지하기에는 사실 너무 놀라운 불합리였다. 재미삼아 장난삼아 손을 내밀었다. 이러쿵저러쿵 그의 장황한 해석을 들으며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나의 미래를 모두 느꼈다. 세월이 흘러 다 잊어버렸지만 한 가지는 남아 있다. “형은 그냥 집 한 채 겨우 갖고 살 거예요.” 살아야 할 미래가 진짜 ‘구만리’인 청년이었지만 왠지 나의 미래는 밝기보단 어둡고 넉넉하기보단 가난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가볍게 시작한 장난이 ‘뜨거운 피’를 식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와 나는 졸업을 했고, 소설과 시로 갈라져 이래저래 자주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드물게 문단의 행사장에서라도 만나면 처음엔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곧 주고받을 화제가 없어지고 만다. 그런 그를 언젠가 만나 그 우울한 기억을 애기한 적이 있다.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터무니없는 ‘나의 기억’에 놀라는 눈치였다. 별걸 다 기억하신다며, 진짜 장난이었다며. 자신은 손금 해석의 달인은커녕 그런 행위는 고등한 지적 생명체에게는 전적으로 부당한 것이라는 관점을 가직 있다고 했다. 원래 고통의 기억은 때린 사람이 아니라 맞은 사람에게 남는다고 했던가.



  그런데 집은 한 채면 되는 것 아닌가? 한 채면 되지 더 있어 뭐 하려고? 애국심 투철해 세금 더 내려고? 아니면 집 없는 이웃에게 무상으로 사용권 주려고?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30년 전에는 왜 하지 못했을까. 왜 집 한 채를 가난의 이미지로 연결했을까. 혹시 후배의 말 가운데 ‘명사’(집 한 채)가 아니라 ‘부사’(겨우)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은 한 채면 충분하다. 마찬가지로 시집을 ‘시의 집’이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한 채면 족하리라. 만해도 소월도 단 한 권이다. 십 수 권을 가진 자산가 시인이라도 결국 한 권 가진 것만 못한 경우도 없지 않다.


  ‘차분히 교정을 본다는 마음으로’ 한 편 한 편 살펴보는 동안 참으로 많은 허점들을 솎아낼 수 있었다. 목표치를 낮추니 오히려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정확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뿐 아니다. 교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집의 편제까지 수정할 수 있었다. 모두 4장으로 분류한 가운데 각 장에 들어갈 작품들을 대대적으로 바꾸었다. 기왕의 편제도 나름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었지만, 새로이 작품 배치와 각 장의 순서를 변경하면서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되었다. 시집의 높낮이야 출간 뒤 평가받을 일이지만 어떻든 상당히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러한 전변의 과정은 앞으로도 있을 수밖에 없다. 각오해야 한다. 이미 세 차례나 경험한 바이지만 최종적으로 시집을 손에 쥘 때까지는 그야말로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언제든지 바꾸어야 하고, 얼마든지 고쳐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일, 시인이라면 누구나 견뎌내야 하는 일, 진짜 고독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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