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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Jan 06. 2021

답변자와 질문자

어느 현재주의자의 ‘길을 찾는 여행’ (40회)

“진정한 청년은 ‘질문하는 사람’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일등보다는 꼭 2등을 할 것만 같은 강박에 빠졌다. 우승보다는 준우승을, 최우수상보다는 우수상을, 장원보다는 차상(次上)을 받을 것만 같은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등을 해 보지 못한 공부 탓일까. 내 성적이 오르면 ‘그놈’의 성적은 매번 더 올랐다. 내가 100점을 받으면 그 과목은 만점자가 수두룩하게 나왔고, 내가 90점을 받으면 1등 하는 걔는 꼭 100점을 받았다. 내가 놀 때 같이 놀고, 공부할 때 같이 공부하는 1등. 혹시 몰래 과외를 받을 지도 모르는 그 친구를 이겨 보기 위해 나는 밤늦게까지 공부하고는 했다.     


  잠을 쫓으려 한여름에는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담갔고, 어느 때는 컴퍼스로 허벅지를 찔렀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1등은 언제나 그놈이었다. 키도 컸고 심지어 얼굴까지 잘 생겼다. 성격도 좋아서 언제나 급우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나의 이류의식, 이등주의의 시작은 그놈과 같이 다닌 중학생 때부터였다. 심지어 반 대항 교내 합창대회에서도 우리 반은 준우승에 그쳤다.     



  고등학교 때에는 문예반 활동을 해서 자연스레 백일장에 나갈 기회가 많았다. 처음 나간 경주의 목월백일장에서는 꼴찌 상인 입선(入選)을 받았다. 그로부터 졸업할 때까지 참 많이도 받았지만, 3학년이 되기 전에는 주로 장원이나 최우수상이 아니라 차상이나 우수상을 많이 받았다. 문예반에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많아 언감생심 장원이나 최우수상을 꿈꾸는 것은 몽상에 가까웠지만 묘하게도 꼭 1등상이 먼저 눈에 띄었다.     


  대학도 재수 끝에 턱걸이로 들어갔다. 신춘문예는 예선 탈락과 최종심 탈락을 차례차례 겪었고, 서른을 훌쩍 넘겨 겨우겨우 등단했다. 나름대로 노력을 다했음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첫 시집을 6년 만에 발간하고는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시와 시집을 상재(上梓)하는 시인 본연의 일에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두 권의 시집을 더 낸 나는 네 번째 시집 원고를 정리하기 위해 예버덩문학의집에서 두문분출했다.  



  어쩌면 청년기의 마지막 시집이 될지 모른다. 이류의식과 이등주의에 갇힌 늦깎이 시인의 삶에서도 그나마 청년다운 도전과 열정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록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세계에 대하여 질문하고자 했다. 질문자로서 나는, 표현보다는 의미를 외부보다는 내부를 현상보다는 실체를 고민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나의 청년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기야 횡성에서는 모름지기 일흔 살까지는 청년이라고 할 수 있다.     



  앞만 보고 가느라 뒤를 돌아보지 못한 탓이다. 작업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만 들여다 본 탓이다. 가끔씩 창밖 풍경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뒤를 돌아본 적은 없었다. 기약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 이제야 책상 뒤로 커다란 창이 있으며 그 창밖으로 돌담이 있고 나무가 있고 푸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이 아니라 뒤도 좀 보고 살아야겠다. 등 뒤의 맑고 청량한 하늘을 보고 살아야겠다.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고 창문을 열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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