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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Mar 11. 2022

정지용의 「백록담(白鹿潭)」

우리 문학 이렇게 읽기(26)

"환희와 희망이 실현되는 때가 오기를…"



   1

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咸鏡道) 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八月 한철엔 흩어진 성신(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山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      


   2

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 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 없지 않다.      


   4

귀신(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海拔) 육천 척(六千 尺)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 녀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여진다.    

  

   6

첫 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山길 백리(百里)를 돌아 서귀포(西歸浦)로 달어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힌 송아지는 움매-- 움매--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登山客)을 보고도 마고 매여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手色)이 다른 어미한틔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7

풍란(風蘭)이 풍기는 향기(香氣),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濟州) 회파람새 회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굴으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때 솨-- 솨-- 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측넌출 긔여간 흰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조친 아롱점말이 피(避)하지 않는다.      


   8

고비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삭갓나물 대풀 석이(石茸)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高山植物)을 색이며 취(醉)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白鹿潭) 조찰한 물을 그리여 산맥(山脈) 우에서 짓는 행렬(行列)이 구름보다 장엄(壯嚴)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여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긔지 않는 백록담(白鹿潭) 푸른 물에 하눌이 돈다.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좇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골에 한나잘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
- 정지용(1902-1950), 「백록담(白鹿潭)」 전문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으로 인하여 문득 찾아 온 가을이 놀랍고 반가웠다. 하지만 또한 입시철이 다가오고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오는 이 가을의 수능과 입시는 곧 이 땅의 여러 가정에 끝 모를 근심과 희망과 환희를 낳을 것이다.     


  여기 하나의 시선이 있다. 「백록담(白鹿潭)」의 여섯 번째 시에는, 난생 처음 새끼를 낳노라 혼쭐이 빠진 막 돼먹은 어미가 등장한다. 산길 백 리를 달려 서귀포까지 도망친 이 철없는 어미는 돌아왔을까? 어미를 여읜 송아지가 울며불며 말을 보고도 매달리고, 등산객을 보고도 매달리는 이곳으로 어미는 다시 돌아왔을까? 애비 노릇이라곤 연습도 없이 매일 매일 낯선 상황을 겪고 있는 철없는 나도, 우리 새끼를 ‘모색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까 봐 운다.     


말아, 다락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웨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편인 말아,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데 달을 보며 잔다.     

- 정지용, 「말 1」 전문(『정지용 전집 1 - 시』, 민음사, p.71.)


  여기 또 하나의 시선이 있다. ‘다락같은 큰 말’에게 ‘검정 콩 푸렁 콩’을 주겠다며 슬퍼하지 말라는 기특하고 기특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지금, 언제나 사람 편인 이 말은 왜 그리 슬픈지도 모르면서 달랜다. 망아지가 아니라 말을 달랜다. 참 그렇다. 말만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은 때가 되면 누구나 ‘먼 데 달’을 보며 한숨을 짓기도 한다.     


  비평가 유종호 선생은 「백록담(白鹿潭)」의 ‘어미’를 기아(棄兒)공포증과 단명(短命)공포증에, 「말 1」의 ‘화자’를 고아공포증과 부모상실공포증에 연결시키면서 정지용의 시편이 발표되었을 1940년대 전후 우리 사회의 평균 수명이 40세 전후였음을 적었다(『시란 무엇인가』, p.115).     


  누구나 자식이며, 대다수가 어버이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근심이 아니라 환희를,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실현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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