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아래 닿는 흙의 촉감이 달라졌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긴장을 풀고, 말랑해진 틈마다 공기를 가득 채웠다. 폭신한 땅을 밟으며 천천히 걷다가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작은 이파리들이 하나둘 머리를 내밀고, 이끼는 푸르게 뻗어가는 중이다. 다시, 봄이다.
아침 해가 뜨면 집을 나선다. 산책한 지 8개월에 접어든 나의 개와 함께다. 새벽부터 먼 곳에서 실어온 채소와 과일을 내려놓는 가게 주인, 두꺼운 외투를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 반려견과 산책하는 몇몇의 보호자들을 거쳐 공원에 들어서면 녀석의 꼬리가 올라간다. 몸을 한 번 푸르르 털고 나와 눈을 마주친 후 힘차게 걷는 녀석의 귀는 걸음마다 펄럭이고, 경쾌한 흔들림을 따라 나도 박자를 맞춰 걷는다.
공원 중간에 있는 너른 잔디밭이 허전해졌다. 요새처럼 가장자리를 둘러싼 억새 군락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탓이다. 그저 두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새봄에 자라나기 위해서는 무참히 베어야 하는 모양이다. 삶을 위한 선택과 다르지 않다. 나의 개는 억새 있던 자리를 탐색하고 싶은 마음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한다. 다리는 뒤로 빼고 목만 길게 늘여 무더기에 코를 박는 모습이 그렇다. 개의 모습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호기심 많은 겁쟁이. 우리는 여러모로 닮았다.
나에게 산책이란 반드시 지켜야할 약속이고, 나의 개에게 산책이란 세상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산책을 하기까지 1년의 준비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함께 나아가고, 나아지기로 했다. 나와 그를 연결하는 두 개의 줄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며 가까워지는 것도 산책의 효과다. 함께 걸을 땐 몇 가지 규칙도 존재한다. 사람이 나타나면 방향을 틀거나 먼 길로 돌아가기,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마주오면 한쪽 끝에 바짝 붙어 멈춰서기, 최대한 녀석의 의견을 존중하되 내가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는 건 싫어도 따라주기 같은 것이다.
잔디밭에서 잠시 뛰어놀다 징검다리를 몇 번 건넌다. 돌 계단을 차분히 올라 부드러운 흙을 밟은 후엔 모래 위에서 잠시 쉬는 시간이다. 오가는 사람을 경계하고,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고, 달라진 공기를 느끼며 두어 번 눈을 맞추면 집으로 돌아갈 때다. 녀석과 나의 하루를 여는 산책. 오늘은,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