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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Dec 29. 2021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작년 이맘때였다. 문제없이 잘다니던 직장에 호기롭게 사직서를 던지고 한달정도를 쉰적이 있다. 애초에 생각은 두달정도 쉬고 다시 일자리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사람 사는게 어디 계획대로야 되겠는가. 같이 있던 직원들도 의아해했던 뜬금없는 사직이었다. 왜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 차곡차곡 쌓아둔 돈도 없으니 돈이나 쓰면서 살자는 맘은 애초에 없었다. 다만 하루종일 음악이나 들으면서 빈둥거리고 싶어졌다. 책도 읽고 산책도 하면서 그야말로 반 건달로 사는 것도 재미있겠거니 했다. 누구는 요즘같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시대에 참 배부른 소리라 할법도 하다. 예정된 직장도 없고 그렇다고 기다려 본들 선듯 데려갈 만한 탁월한 능력도 없지만 누가 뭐라든 하고 싶은데로 하고 싶었다. 


정말 곧이 곧대로 삶을 느끼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소진해 가기 시작하는 육체를 감지하고 부터 그냥 이대로 폭삭 주저앉아 버리고 말 것같은 인생에서 한번쯤은 빠져 나오고 싶었다. 삶은 늘 고통스럽다. 지나갔다 싶으면 찾아오는 고뇌의 순간들이 끝나지 않을 것같기도 했다. 이 정도 살았으면 모든 것 다 버릴 지언정 나라는 존재가 조금쯤 혼자가 되는 순간을 즐긴다 해본들 그리 호사롭지는 않을 것같았다. 


매일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근처에 있는 가을의 공원길을 음악과 함께 걸었다. 가을 잎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마냥 나를 위해 비추는 연극의 스포트 라이트 같았다. 무슨 말이라도 중얼거리며 독백도 해보고 방백도 해봤다. 그 스쳐 갔던 무수한 고통들에게 들어보라는 듯이. 


그 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한웅큼의 자유가 뭉퉁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또 다시 삶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날이 곧 오겠다는 두려움때문이고 이 시간이 너무 좋아서 아끼고 아껴 먹는 어린날의 사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반 그 반의 반 그리고 또 그 반의 반.... 결코 쏘아진 화살이 과녁을 맞출 시간에 도달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찰나를 의식할 수 있는 초인적인 관념만 있다면... 그러나 결국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쏜 화살이 과녁에 맞아 흔들거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반의 반을 위해 집요하도록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면 마치 하루가 몇일이라도 되는 것같이 느리고 느리게 느껴졌다. 


최승자 시인의 책을 읽다가 문득 작년 이맘때의 일탈이 생각난 것은 아마도 시인의 시니컬한 삶에 대하여 내 삶 역시 어딘가 시니컬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 것이 계기다. 처음 들어보는 시인의 이름이지만 왠지 어디서 한번은 들어 본듯한 이름. 서가에 있는 책을 한번 흩어 보았다. 있었다. 막스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아 그렇군 이 책이었어. 이 책의 역자가 시인이었다. 독문학을 전공한 독문학도 답다고 생각했다. 


표지의 사진엔 담배를 피우는 시인의 모습이 흑백 이미지로 표현되어있다. 옅은 담배연기가 영혼의 잔재 같았다. 마법처럼 표지사진에 홀려 책을 주문했다. 


20대 중간쯤의 나이에 벌써 쓸쓸함을 안다. 깨고 나면 달콤했던 예전의 쓸쓸함이 아니고 쓸쓸함은 이네 내 머릿골속에서 중력을 갖는다. 쓸쓸함이 뿌리를 내리고 인생의 뒤켠 죽음의 근처를 응시하는 눈을 갖는다.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보이지도 않게 조금씩 망가져가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13p)


표지를 넘기면 제일 먼저 보이는 글이다. 1976년 쓴 산문. 아마도 그 때 시인의 나이가 20대중반쯤이었나보다. 20대 중반에 삶의 쓸쓸함을 알다니. 천상 시인이다. 시인은 고통을 알아야 시를 쓸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머릿골 속에서 느끼는 쓸쓸함의 중력. 세상 모든 것이 쓸쓸함으로 남는다. 쓸쓸함이 쌓이고 쌓여 온 삶을 내리 누르는 중력과 같은 무거움. 수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남은 쓸쓸함이 때늦게 내게도 무거운 중력 같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땅바닥에 납작하게 눌러붙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주저 앉아 있어서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펴고서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고 싶다. 움직이고 싶다. 다른 많은 것을 보고 싶다. 내가 아닌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썩은 웅덩이로 부터 눈을 들어올리기만하면 저 들판과 길에 나도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이 내 눈의 수정체 속으로 헤엄쳐 들어오고 어느 순간 나는 엉덩이를 탈탈 털고 일어나 걷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순간을 꿈꾸고 있다. 내가 첫발을 떼어놓은 그 순간을 .....(26p)


계속되는 폭력처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늘 상처를 남기고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야 남은 삶을 그나마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남아야 그래야 견딜 수 있었다. 그때 그것을 알게하고, 그 쓸쓸함이 오히려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시인처럼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저하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공간.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혼자 있었던 그 순간이 한번도 떼어놓치 못했던 첫발이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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