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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Dec 07. 2021

슈베르트 평전

수분이 모조리 빠져나가 바스락거리는 가을 잎들의 스침에 삶이고 인생이고 그냥 한없이 고개가 숙여지기도 하고 갑갑한 가슴앓이가 차갑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게도 한다. 매번 오던 가을인데 왜인지는 몰라도 우울해지는 적이 많아진다. 죽음이 흔한 직장(병원)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질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소진하고 마감할 때가 되어서 겠지만 죽음이 데리고 갈 그 알 수 없는 확인되지않은 공간에 대한 두려움. 어떤 종교인들은 죽음이후의 다른 삶을 꿈꾸니 죽음이 두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슈베르트에게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연상해보는 것은 의외였다.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그의 아름다운 음악,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긴 그가 겨우 32살에서 2달이 빠지는 삶을 살고 갔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짧은 인생에도 이렇게 많은 것들을 토해 낼 수 있구나. 그가 놀라웠다. 


슈베르트의 가곡을 들으면 즐겁기도하고 아름답다. 물레방앗간의 아가씨를 들어보면 익살스런 피아노와 음성들이 경쾌하고 익살스럽다. 처음엔 밝고 유쾌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삶을 읽고 보니 왠지 곳곳에 배여있는 옅은 그림자가 느껴졌다. 하지만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그의 음악이 슬픔이 아니라 투명하다고 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게도 느낄 수 있겠구나 싶다. 맑은 성정의 소유자. 친구를 좋아하고 친구들 틈에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할 줄 알았던 시골뜨기 슈베르트. 작은 키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수줍음 많고 대중에게 나서기를 꺼려하던 음악가. 베토벤을 우상으로 죽는 날까지 숭배했던 그였다. 하지만 죽는 그 순간 베토벤이 없다고 흥얼거리는 입술의 얇은 숨소리. 그가 가려했던 베토벤의 길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을까. 그의 연약함은 세상이 아는 연약함이 아니라 세상을 담아낼 수 있는 투명하고 큰 그릇이었다. 자칫 깨어질 수도 있지만 그 깨어짐 마져도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평범함. 그래서 그를 사랑하게 되나 보다 했다. 자유예술가. 누구에게건 속해있지 않은 프리랜서? 잘난 체하는 법 없이 겸손했으며, 허세가 난무하는 기성 사회에 섞이기보다는 뜻 맞는 친한 벗들과 어울리는 편을 선호했던 것도 슈베르트가 가진 한 가지 면모였다. 그래선인지 그의 작품엔 이성이 감정을 지배하지 않고 삶에 그대로 녹아 들어 있는 것인가 싶다. 


책을 읽는 중에 오랜만에 그의 21번째 소나타를 들었다. 첫악장의 귀에 익은 트릴은 잦은 숨소리 같은 트레몰로다. 심전도 장치의 가는 떨림. 그의 삶에 마치 안녕을 고하는 것같은 처연한 피아니시즘. 삶은 그렇게 꺼져가면서도 함께 아쉬워할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아쉬움이 그리고 지난 삶에 대한 후회와 고뇌 그리고 이내 포기해버리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한 멜로디는 조성진이 말한 것처럼 투명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죽음과 소녀, 긴 반달칼을 든 사자의 모습에 두려워 떨지않는 저항하는 듯한 사중주는 그가 그토록 닮고자 했던 베토벤 운명의 그 음율을 닮아 있었다. 운명을 깨치고 나가 4악장의 호른의 팡파레 같은 운명의 극복이 그의 사중주 3악장에도 있었다. 


긴시간 풍월당에서 출간한 두툼한 세권의 평전을 읽었다. 브람스와 슈만과 슈베르트. 어쩌다 보니 시대를 거꾸로 읽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 영화의 프리퀄처럼.... 브람스엔 슈만과 클라라가 있었고, 슈만에겐 슈베르트가 있었다. 두터운 책이지만 그렇게 읽는 재미도 조금쯤 특별한 것같아 읽는 속도도 빨랐던 것같다. 


슈베르트 평전은 다른 두권의 책과는 달리 번역본이다. 슈베르트의 작품에 대한 내용보다는 그의 인생과 그의 삶에 대한 해석이 많은 책이다. 작가 자신도 슈베르트의 삶에 충실하게 썻다하니 내심 작품해설에 대한 아쉬움이 크긴하지만 인간 슈베르트를 알기엔 이만한 책도 없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삶을 들여다 보면 작품이 쓰여진 시기의 슈베르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니 작품을 생각하고 해석하는 독자 개인의 생각도 꽤나 의미가 있겠다 싶다. 


거의 동시대를 살다간 세명의 위대한 음악가의 삶과 그들이 남긴 알수없는 고리같은 작품들의 연관성. 세권의 책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귀를 조금쯤 퀄리티 있게 해준 것같아 2021년의 마지막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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