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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May 31. 2023

오래된 치즈 같은 성당 임실성당

성당기행 #24

처음 임실성당 앞에 서면 중세풍의 고풍스러운 성을 닮은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됩니다. 여름으로 접어든 날씨지만 부드럽고 온화한 바람이 성당외벽에 붙은 덩굴 잎을 스쳐 흔들고 지나가며, 한낮에 내리는 햇살이 성당의 외벽에 아주 근사한 그림자들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임실성당이 있는 임실에 도착하면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치즈로 가장 유명한 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을 곳곳에 치즈와 관련된 그림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자하게 생긴 신부님의 초상이 먼저 눈에 띕니다. 임실을 이 땅의 치즈메카로 만든 지정환신부님이십니다. 지정환 신부님의 본명은 디디에 세스벤테스로 벨기에 태생이며 1959년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이 땅에 첫발을 디디게 됩니다. 지정환 신부님은 전쟁 후 가난한 민중들의 피폐한 삶을 안타깝게 여겨 그들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1961년 부안으로 부임해서는 3년간의 간척공사로 농지를 만들고 1964년에 임실성당으로 부임해 척박한 땅으로 농사지을 곳이 변변찮은 이곳 임실을 온갖 노력 끝에 치즈로 유명한 임실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헌신과 희생으로 삶의 질을 바꾸고 큰 변화를 이뤄 낮은 데로 임하신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역만리 이름도 생소한 동쪽의 작은 나라에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내어주어 사제직을 수행한 초기 가톨릭의 푸른 눈의 신부들의 삶은 제가 성당순례를 하면서 가장 은혜가 되는 일들 중의 하나입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물과 같은 평화를 얻기도 합니다. 은혜에 빚진 자들이 또 희생과 봉사로 빚감음의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의 평화가 많은 곳에서 수많은 열매를 맺을 것 같습니다. 임실 역시 지금의 모습은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과 헌신으로 만든 기적과 같은 씨앗의 열매입니다. 희생과 헌신과 봉사가 기적을 이루어 내는 작은 씨앗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실성당은 당연하겠지만 어쩐지 발효가 잘된 치즈 같은 색깔과 향기가 납니다. 고성 같은 외모도 독특하지만 내부의 장식이나 색들도 치즈와 비슷한 색입니다. 오래 묵혀 발효된 치즈처럼 깊은 맛을 내는 성당입니다. 외벽을 타고 올라간 덩굴들이 멋스러움을 더하고 사제관벽을 타고 올라간 능소화도 아름답습니다. 제대 역시 뒷벽의 치즈 색과 사각으로 된 장식들도 부드러운 치즈를 닮아 있습니다. 지정환 신부님의 노고가 성당 안 곳곳에 묻어나는 느낌입니다.


성당을 나와 마을의 벽화와 임실치즈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된 기념관도 들러보았습니다. 산양유로 치즈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던 그들의 모습과 열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언덕 위에 지어진 산양유 협동조합건물도 둘러보았는데 1967년 사제관에서 만들던 치즈를 보다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지은 공장건물이라합니다. 단층이었으나 후에 2층으로 증축하여 1981년 임실을 떠날때까지 지정환 신부님이 기거하셨다고 합니다. 협동조합건물 앞 안내판의 글귀가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우연한 만남은 없다고 하느님의 뜻으로 우리가 만나게 되었음을 강조했던 지정환 신부를 만나고 되새겨 보는 자리이길 바란다. "


하느님의 선하신 계획안에 만나는 우리 모두가 특별한 의미와 목적이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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