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기행 #12
들뜬 화려함이 넘치는 여행지보다는 말없는 침묵이 흐르는 공간이 때로는 가장 적합한 여행지 일 수도 있다. 명례성지는 자아를 돌아보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다. 밀양의 낙동강변에 위치한 명례성지. 일상에 찌들어 영육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 나 같은 이에게 근사한 선물과 같은 곳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청명한 봄 하늘이었다. 그 하늘을 이고 있는 낙동강변을 걸으며 입속에서 절로 나오는 찬송을 불렀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볼 때......
명례성지는 이제민 신부님이 건축주가 되고 건축가 승효상이 건축한 건물이다. 얼마 전부터 읽게 된 그의 책의 주된 언설은 건축은 인문학이다라는 주제였다. 건축가이면서 글 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인문학 책 한 권을 읽는 것처럼 빠져드는 그의 책을 벌써 6권 정도 읽게 되었다. 삶이 녹아있는 건물. 영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터에 그 영성을 그대로 드러낸 건축이 있는 가하면 이와는 반대로 부동산의 가치로만 평가되는 도시의 건물들이 내뿜는 조잡한 물질 지향주의. 마치 게토와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아파트 거주민들. 삶을 지치게 하고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건축물들에 무슨 안락함이 있을까? 승효상은 그런 건축이 판치는 도시를 비판한다. 어쩌면 명례성지는 그런 도시민들에게 주는 경계 밖의 아늑한 피난처가 아닐까. 명례성지를 돌아보면 그러한 건축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어두운 방에 한줄기 빛이 들어와 방안 어느 한구석을 비추고 그 좁은 빛 속에 떠돌던 먼지들이 가라앉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상도 여기에 내려놓고 가고 싶었다. 눈시릴 만큼 파란 하늘, 청정한 공기를 폐 한가득 집어넣었다. 마치 몸속의 모든 피가 바뀌는 듯했다.
조그만 명례 마을 골목길을 따라 나타나는 낙동강변에서, 언덕을 올려다보면 1896년 경남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진 자그만 한옥성당 하나가 보인다. 너른 언덕에 단아하게 자리한 성당의 품세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태풍에 쓰러져 1938년에 다시 지었다고는 하나 이미 그로부터도 84년 이상이 되었으니 그 세월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이제민 신부님이 이 땅을 성지로 조성하려고 구상하였을 때 한옥성당이 주인공이 되어 다른 시설물들은 성당을 위한 배경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 구상처럼 실제 성당 앞에 서면 종탑과 한옥 이외에는 다른 건축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멀찍이 명례성지의 기념탑인 듯한 사각형의 건물이 보이기만 할 뿐 아름다운 동산이 전부 인 것처럼 보인다.
독특한 기념성당은 마치 축대로 쓰이는 듯한 노출 콘크리트로 되어있다. 강변 쪽에서 보면 그렇게 보인다. 성당이 있는 땅 위에서 보면 발밑에 이런 구조로 된 성당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이 안 된다. 지형의 높낮이를 따라 지어진 기념 성당은 마치 지하 시설물 같으면서도 땅 위에 있는 듯한, 그래서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도 한다.
성당 주위의 조경도 무척 아름답다. 마치 널따란 정원처럼 잘 조성되어있다. 사실 성지를 가보면 이런저런 조상이라던가 건물들이 조밀하게 놓여있기가 보통인데, 명례성지는 달랑 오래된 한옥성당이 다인 것처럼 보인다. 언덕 위에 14처가 놓인 길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다 보면 열린 하늘과 시야의 한계가 모자란 낙동강변의 넉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화창한 하늘이 낙동강변의 아름다움 위에 떠있었다. 작고 미약한 존재는 그렇게 하느님이 지으신 큰 자연 앞에서 한 줌의 먼지와 같은 존재가 된다. 군데군데 놓인 벤치의자도 짓눌린 영혼이 잠시 쉬며 묵상하기 좋은 휴식처였다. 이것이야말로 성지의 역할이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