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전하는 말(言)의 기술
지난밤 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이번 휴가에는 화술에 관한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뜬금없는 화술이란 말에 의아했다. 화술? 이라며 되묻는 내말이 조금쯤 어색하게 들렸는지 너는 말을 잘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휴가기간에 말잘하는 기술에 관한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매번 휴가를 나오면 대단한 벼슬을 하는 것처럼 놀러다니고 돈쓸 궁리만 하던 네가 왠일인가 싶었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아서 생각의 변화라는 것도 있는 것인지 싶어 나름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매번 그러는 것처럼 오래가지 못할 것같아 슬쩍 입술꼬리가 올라간다.
세상의 애비 애미가 그렇듯 난 네가 덩치만 큰 어린아이라 생각했다. 애비된 사람은 늘 자식에게 기대치가 큰 법이다. 너는 막힘없이 말은 많이 하지만 항상 머리속의 생각을 간추려 논리있게 말하는 것에는 조금쯤 부족한 듯했다. 아주 어릴 적 너는, 답답한 마음에 억울하면 눈물부터 흘리고 화부터 냈다. 애비가 윽박지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때문인지 고등학교에 다닐때부터인가 너는 나와의 대화를 꺼리기 시작했고 그 옛날 내가 아버지와 그랬던 것처럼 장막같은 서먹함이 둘사이를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런 너가 이제 군에 갈 나이가 되면서 관계가 좀 나아지기 시작한 건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네가 나이가 들어서 애비를 생각하는 맘이 조금쯤 애처러워져서 그런건지. 애비의 자리가 조금쯤 이해가 되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너와의 거리가 지척만큼 가까워 진거같아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네가 말을 잘하고 싶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거같다. 아무래도 머리속에 든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남들에게 말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멋진 일이다. 말잘하는 사람들 중엔 웅변에 능한 사람도 있고, 토론에 능한 사람, 그리고 세일즈에 능한 사람도 있다. 참 강의를 잘하는 사람도 있구나. 애비가 생각하기론 말을 잘한다는 것이 그런 방법에 관한 책 몇 권 읽는다고 원하는 만큼 될 것 같진 않다.
우선은 다양하고 많은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어떤 주제건 한가지 정해서, 정해진 기간 동안 읽으면 더 좋을거 같다. 그 기간이 얼마가 되느냐는 별로 문제가 될 거같진 않다. 한달도 좋고 일년도 좋다. 정치든 인문학이든 철학이든 네가 좋아하는 음악이든. 같은 주제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읽다보면 중복되는 것도 많을 것이고 한 주제에 관해서는 어디서든 말할 수 있는 거리(소프트웨어)가 많아질 것 같구나. 말이란 것이 머리에 입력하여 저장해 둔 것이 많아야 입을 통한 출력이 쉬워지는 것이니 설사 날 때부터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사람에게 input이 없으면 언젠가는 output 할 게 없지 않을까?
언젠가 괴벨스 평전을 읽은 적이 있다.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의 아주 두꺼운 책이다. 알다시피 부정적이고 과장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의 입지전적이고 기적적이며 아주 특별한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그가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괴벨스는 아주 어릴 적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골수염까지 앓으면서 병상에서 지낼 수 밖에 없는 허약한 절름발이가 되었을 때 그는 문득 자신을 억누르는 열등감에서 일어서고 대중들보다 더 나은 위치에 서기위해서는 오로지 지식의 습득으로 자신의 위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어릴 적부터 마치 세상의 활자화된 모든 것들을 읽어 내고야 말것처럼 덤벼들었다. 결국 그는 그토록 꿈꾸던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히틀러의 눈에 들어 혁명의 최일선에 서서 대중을 선동했다. 절름발이에 지팡이를 짚은 160cm의 키작은 컴플렉스를 가진 이 하찮은 루저 괴벨스는 수많은 영웅을 만들어 독일인들에게 나치즘의 역사적 사명과 위대함을 각인시키고 나아가 전쟁 의지를 북돋웠다. 그러나 괴벨스가 만든 최고의 작품은 바로 ‘히틀러’ 그 자체였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선전은 히틀러를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신적 존재로 만들며 ‘총통 신화’를 일구어냈다. 독일의 전 민족이 몰락의 순간까지 히틀러에게 복종하도록 이끌었다. 독일 국민들은 전쟁뿐 아니라, 나치가 저지른 수많은 끔찍하고 잔인하고 광적인 모든 일들의 책임과 죄를 히틀러가 아닌 다른 나치 지도자들에게 돌렸다. ‘총통’은 그런 일을 저지르기엔 너무도 숭고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출판사 서평중에서) 그의 행동과 연설이 결과적으로 유태인들과 유럽인들에게 크나 큰 상처가 되었긴 해도 그의 연설은 언제나 힘이 있었고 대중들을 사로잡는 무었인가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힘은 바로 지식의 습득인 독서에 있었고 결국 그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었던 신체적 열등감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길위의 철학자"라는 자서전을 쓴 에릭호퍼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에릭호퍼는 아주 어릴적부터 시력을 잃었지만 15세되던 해에 어떠한 연유로 다시 시력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부터 다시 시력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독서량은 엄청났다. 집근처 도서관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책에 대한 집착이 컷었다고 한다. 호퍼의 집요함은 결국 그를 무학의 세계적인 사회주의 철학자로 만들었고 부두 노동자와 함께하며 미국 사회운동의 개척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위대한 연설가 한사람이 만들어지는데 있어서 책의 기여도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두사람은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지식의 습득이라는 방법으로 이겨내려했으며 엄청나게 input된 data들이 그들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 가치관들을 기반으로 대중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너가 군에 들어간지 몇달쯤 지났을 때, 넌 책을 많이 읽고 있다고 말했다. 난 그 말이 한없이 기뻣다. 특히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고 큰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다고 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거라는 것은 너도 잘 알겠지. 말이란 것은 은연중에 자신의 인격과 가치관과 윤리관 세계관 같은 것들이 미묘하게 녹아 입을 통해 나온다고 생각한다. 네가 읽은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 대해서 말을 하면 넌 자뭇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자신있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처럼 책을 통한 저자와의 소통은 독자의 수준을 높이고 그로 인하여 논리적인 말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말을 잘하는 기술이란 것은 금방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책들을 읽고 거기서 서서히 녹아든 지식들이 네 인생의 철학이 되어 누구앞에서든 당당하고 자신있게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이다. 군에서 맞는 두번째 겨울이구나. 강원도의 매서운 추위와 끊임없이 내리는 눈도 이젠 올해로 마지막이구나. 군에서 내리는 눈에 무슨 감상이 있겠냐만 그래도 두번의 겨울이 없었다면 그런 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경험 역시 소중한 인생의 자산인 만큼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잔소리 같은 글을 맺는다. 사랑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