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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욱 Feb 01. 2022

퍼실리테이션이 익어가던 시절

거버넌스, 911, 소통, 집단지성, 복잡계, 퍼실리테이션의 연결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1980년대 후반, 행정학 책에 나타난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멋있게 느껴졌다. 행정기관 만이 단독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정책을 토론하고 협의하여 합의를 이루어가는 것은 바람직하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물리학과 출신인 나로서는 행정학이 무척 낯설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충남대에서 도강을 한 적이 있었다. 몰래 조용히 숨어서 수업을 듣곤 했었는데, 하루는 교수님이 토론 수업을 하겠다면서 책상을 모둠으로 모아 앉게 하였다.



나이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도강생임이 탈로날까 두려워 수업에서 빠져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한다는 것인지 궁금하여 버텨보았다.


나중에 알게된 바로는 '난파선 게임'이라는 것이었다. 육지로부터 3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배가 조난을 당했고, 대부분의 물건을 잃어버리게 된 상황에서 30개의 아이템을 건질 수 있다면, 어떤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까를 묻는 게임이었다. 한 번은 토론없이 개인의 판단으로 점수를 메기고, 두 번째는 조별로 토론을 한 후 새롭게 우선순위를 개인별로 메기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30명 정도의 학생 모두 후자의 점수가 더 높게 나왔다. 집단지성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스스로 좀 잘난 줄 알았고, 내가 적어낸 답이 당연히 높은 점수를 얻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그 확신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내 마음속 거버넌스의 당위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이 사진은 포스팅의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공무원이 되고 난 다음 거버넌스는 책에만 있고 현실에는 없는 것 같았다. 동정협의회, 시정자문회의와 같은 다양한 협의체는 대부분 형식적으로 운영되었다. 공무원이 열심히 만든 회의자료로 별다른 논의나 토론 없이 자료를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지역유지들과의 사교 또는 상견례의 성격이 더 강해 보였다.


어떤 사안에 다루어 가는데 있어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논의하는 거버넌스는 민주사회를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아주 바람직한 방식으로 보여지는데, 왜 현실세계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거버넌스는 개념을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인 것인가?

권력자, 재력가, 지식인 등과 같은 힘있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결정방식인가?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는 못한 채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에 잘 적응해 갔다.



거버넌스와 함께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것은 언론이었다. 공무원의 선의가 왜곡되어 보도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공무원으로서는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런 왜곡은 공무원을 기자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악의가 들어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큰 행사를 앞두고 있는 경우, 일부러 시정에 대한 부정적이 기사를 낸다. 그러면, 시에서는 행사기간 동안 우호적인 보도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광고비를 책정하게 된다. 정부와 주민 간에 언론을 통하여 진실을 소통하는 통로에 결함이 크다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필자가 현장에서 직접 쵤영한 사진




2001년에는 공무원으로서 뉴욕에 파견되어 근무하면서 911을 겪었다. World Trade Center North Tower의 78층에 근무하였다. 다행이도 10분 차이로 목숨을 건졌고, 911 이후의 미국사회 움직임과 논의를 볼 수 있었다.


매일매일 1페이지의 상황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고, 그래서 미디어에 하루 종일 매달려 돌아가는 사정을 살펴야 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미디어가 정부와 혼연일체가 되어 복구를 돕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보도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는 ‘어떤 장관을 문책하고, CIA국장을 경질해야 한다’는 방식의 보도에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TV매체가 행정기관처럼 현장의 상황을 전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맨손으로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는 현장의 행정을 가중시키니 방문을 자재해 주세요.’ ‘굴삭기를 운전할 줄 아시는 분은 어디어디에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실수를 견제하는 것보다는 복구를 응원하고 협력하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다.


2개월여 동안 일일보고의 시기를 거치면서, 911의 복구과정, 정부와 언론의 관계, 그리고 미디어에 등장하는 각계 인사들의 911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을 학습하는 시간이 되었다.





당시 911의 원인과 복구에 관하여 내가 내린 결론 같은 핵심 키워드는 ‘소통’이었다. 미국과 중동이 소통을 잘 했더라면 911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가진자에게만 유리한 소통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가진 모두에 유리한 소통이 실현된다면 세상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텐데.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소통을 도울 수 있을까?


911은 소통의 씨앗이 내 마음 속에 심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거대한 세상의 소통 시스템을 미약한 한 사람의 힘으로 어찌한다는 것은 막막한 일이었다. 그렇게 몇년 동안 잊고 살았다.



2004년 참여정부는 정부혁신을 부르짖었다.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민간기업과 같은 효율을 높이자는 대대적인 운동이었다. 토론이 중시되었고, 민간기업에서 성공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경영기법에 대한 전폭적인 수혈을 시도했다.


당시 나는 국가전문행정연수원에 근무하면서 새롭게 설치된 혁신교육팀의 업무를 자원하여 맡았다. 청와대 혁신관리수석실과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를 주축으로 ‘혁신은 교육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혁신에 있어 공무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GE의 크로톤빌 연수원




GE의 워크아웃, 식스시그마, LG혁신학교의 혁신교육, KOTRA와 KT의 BSC 도입, 유한킴벌리의 지식노동자 등의 사례를 배우고 현장을 방문하여 실무의 생생한 스토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런 현장을 안내해 주었던 한국능률협회, 한국생산성본부 등의 컨설턴트로부터 액션러닝, 코칭, 퍼실리테이션의 개념을 전해들었다.


혁신은 권위있는 사람의 일방적 소통에만 의존하지 않고, 진자로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하는 방법과 기술로서 코칭, 퍼실리테이션이 주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는 퍼실리테이션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집단 또는 조직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퍼실리테이션으로 보였다. 누군가 똑똑하고 일 잘하는 한 사람을 육성하는 것 보다는 여럿이 무리를 지어 사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의 잇점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퍼실리테이션에 꽂혀서 다양한 책을 보고, 연수원에서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도입하여 시도하면서 퍼실리테이션에 관한 이해와 실무 능력을 키워가던 중에 운좋게 유학시험에 선발되어 영국 유학 길에 올랐다.


첫해에 취득한 Community Leadership, MA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이어서 이수한 Warwick대의 MPA 과정은 퍼실리테이션의 기초를 다지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복잡계를 기반으로 한 전략과 정책 개발, 지식 관리, 인간 경영, 성과 관리. 거버넌스, 재정, 변화관리 등의 주제를 퍼실리테이션 방식으로 직접 다루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조직개발, 퍼실리테이션에 관한 석사과정을 멋지게 하나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론과 실무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로망을 실현하고 싶었다.


이제 막막함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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