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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친 곳의 낙원 Jul 11. 2022

[Day6] 457 단상 in London

"PD니까 유튜브 잘하시겠네요?" -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2022.07.05

간만에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 유학생활 동안 유튜브 채널은 꼭 하나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나, 그간 틈틈이 찍었던 영상들을 편집해보기로 한다. 그래 봐야 집에서 출발하는 장면, 면세점에서 담배를 사는 모습, 처음 런던에 도착해서 얼타는 모습, 헬스장에서 PT '당하는' 모습 따위가 전부. 나름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영상으로 본 내 모습은 븅신도 이런 상븅신이 따로 없었다.

이 대단한 대사를 하는데 NG를 5번 내어버린 나.

나름 방송국에서 10년 동안 노잼인 촬영본들을 심폐 소생시키는 일을 해왔지만 이렇게까지 노답인 영상들은 정말 처음이다. 그래도 PD인데 어쩜 대책 없이 찍어왔는지. 도저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빠니보틀이나 곽튜브 같은 초대형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을 틀어본다.   '편집이 거칠다', '맥락이 없다' 알로 봤던 유튜버들의 영상이 무한도전보다  대단해 보인다. 어쩜 저렇게 별거 없는 장면을 B 시트콤스럽게 포장해내는지.


하루 종일 지지고 볶으면서 대충 볼만하게는 붙여냈지만 유튜브는 콘텐츠 생지옥. '볼만하게 만들었다' 봐주는 순하디 순한 TV 시청자들은 그곳에 없다. 남들과 다른 포인트가 없다면  영상들은 태평양 같은 유튜브의 심해 속을 부유하는 쓰레기되어버릴 터다.

마치 화성에서 구조되지 못한 멧 데이먼의 비디오로그처럼...

내가 가진 캐릭터가 무엇인지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되돌아본다. 회사를 나와 유학 간다고 떠벌리고 다닐 땐 스스로 뭔가 특별한 길을 선택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내 인생은 콘텐츠 하나 뽑아내기 힘들 정도로 평범했다. 회사 밖 세상이라는 곳은 그만큼 별에 별 일이, 별에 별 사람이 모여사는 곳이었더랬다.


유튜버로서는 다소 현타가 오는 결론이지만, 본업인 학생으로 봤을 땐 아이러니하게도 묘하게 힘이 났다. 사실 영국에 넘어와서 다소 많은 내 나이와 섣불렀던 퇴사에 대한 뒤늦은 걱정이 엄습하는 밤이 많았더랬다. 하지만 결국 세상엔 의외로 나와 같은 결정을 한 사람들이 많았고, 다들 저마다의 밥벌이를 하며 잘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어떻게 되어도 좋게 되어버렸다. 유튜브가 떡상하지 못하면 내 상황은 평범하디 평범한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살면 그만이고, 유튜브가 떡상하면...미친 결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유튜브 수익으로 유복하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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