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말하기 기회 만들기
2022.07.15
런던에 온지도 어언 2주. 영어의 본고장에 왔으니 매일매일 영어로 말하고, 늘지 않는 영어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생각했지만 사실 스트레스는커녕 영어를 말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다. 집 밖으로 나가봐야 마트나 카페가 전부이다 보니 쓰는 영어도 한정적이었고, 그나마 왈버를 만나 운동을 할 때 영어로 수다를 떨 수 있었지만 그럴수록 근육에 관한 어휘만 풍부해질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나, 어떻게 하면 런던에서 영국인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을까를 폭풍 검색했고 그 결과 세 가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1번은 데이팅 어플로 친구 만들기.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세상 어디에도 매력적인 이성과 대화하는 것보다 더 빨리 언어가 느는 방법 따윈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유부남에게는 매우 적절치 못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예선 탈락이다.
그리고 2번이 바로 내가 채택한 방법인데 meet up이라는 오프라인 동호회 어플을 통해 영국인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 어플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오프라인 약속을 잡고, 실제 약속 날짜에 다 같이 모여 술을 마시며 놀거나 공통의 관심 분야를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사이버펑크 시대에 이런 휴머니즘 넘치는 어플이 있다니! (참고로 3번째 방법은 공공시설의 Lecture를 이용하는 방법인데, 이건 다음에 시도해보기로 한다).
얼른 어플을 설치해 모임들을 검색해보니 무!려! "한국어에 관심이 많은 런더너들의 모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얼른 참가신청을 날렸고, 그 날짜가 바로 오늘이었다. 약속 장소로 출발 전 나는 면도를 하고, 쭈쭈에 니플 밴드도 붙이고, 머리에 왁스를 바르는 등 가장 "말을 걸고 싶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이윽고 도착한 약속 장소. 정말로 펍에는 백인은 물론 이탈리아인, 인도인, 중국인 등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다양한 인종의 런더너들이 모여있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융숭한 대접을 받는 이곳은 그야말로 낙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국인을 앉혀두고 2시간을 한국어로만 떠들고 있는 나. 이것은 참석 취지에 매우 어긋나는 행동이다. 얼른 "이번에는 내가 한 10분 동안 영어로만 얘기할 테니 니들은 나의 말을 끈기 있게 들어달라"라고 강요(?)한다. 당연히 오케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모임에서 한국인은 정말 븅신 짓만 하지 않으면 매우 호의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단지 그들이 공부하고픈 언어를 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따지고보면 우리도 단지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백인들을 융숭히 대접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가며 4시간을 술을 마시고 놀다 보니 회화가 일취월장 성장하는 기분이다. 이 모임에 가장 좋은 점은 내 영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도로 적어진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저들의 한국어보다는 내 영어가 더 낫기 때문이다. 보통의 영국인이 더듬더듬 말하는 나를 답답하게 여긴다면 그곳의 영국인은 이른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나의 영어를 듣는다. 이토록 건강하게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가 있다니.
또 다른 큰 장점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펍에서 다 같이 만나기만 할 뿐, 본인이 원치 않으면 맥주 한 잔 시키지 않고도 실컷 떠들고 올 수 있다. 애초에 회비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자기가 마실 음료를 바에 가서 시켜서 오면 된다. 이론적으로는 집에서 물통에 음료수를 담아서 와도 되지만, 그래도 남의 가게서 그건 너무 양아치 짓이니 그러지 않도록 한다.
틈틈이 이런 모임에 참여해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어 볼 계획이다. 목마른 자만이 우물을 파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