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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Mar 17. 2022

애증의 회계, 여기에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지

그렇게 피해다녔는데...외나무다리에서 그것도 정면으로 마주하다

경영학과에서 회계는 필수과목이다. 회계원리, 재무관리, 관리회계 3과목을 1,2학년에 걸쳐 필수로 듣게 된다. 어렸을 적 부터 돈을 관리하고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회계도 친근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무제표는 뭐가 또 이렇게 종류가 많은지... 차변 대변 왜 두개로 나눠져있는지, 자산 부채 자본의 관계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호기로운 마음으로 첫 학기 회계 수업을 들었던 나는 챕터 5가 넘어가고부터 흥미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계공부는 나와 먼 이야기가 되었다.




인생의 선택지에서 나와 맞지 않아 지우게 되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회계와 관련 없는 방향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가 않는다. 그렇게 안심하던 찰나에 갑자기 그것도 아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매월 제출해야 하는 결산자료

매월 제출해야 하는 결산자료는 왜이렇게 많고, 이게 다 뭔지 어안이 벙벙했다. 세금계산서 발행주체가 누군지도, 기타소득은 뭐고 지분변동자료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기에 그 날부터 나는 세무법인 실장님과 천적이 되어야만 했다. 말이 안 통한다는게 이런거구나를 몸소 느꼈다. PM이 왜 회계담당자가 해야 할 결산을 하냐고 생각하는게 당연하지만, 회사에서 PM은 나밖에 없었고 회계담당자는 없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 내가 혼자 온전히 감당해야만 했다. 


회계공부로 밥 벌어먹고 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 날부터 발등에 불 떨어지듯 부랴부랴 내 회계공부는 시작되었다. 국세청에도 귀찮을 정도로 전화를 해댔고, 세무법인은 내 전화를 피할 정도로 전화를 해서 확인하고, 물어봤다. 

세무법인에 문의하기 위해 정리했던 자료

IR을 병행하던 나는 서비스 기획과 IR을 하고, 업무외시간에 결산자료를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결산자료를 만들다보니 알게된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IR자료에 들어가야 하는 회사 재무정보, 손익시뮬레이션 근거 데이터, 주주정보, 서비스에서 리워드로 제공했던 상품권은 왜 5만원을 초과해서는 안 되었는지... 그동안 몰랐던 너무나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계관련 업무는 날로 범위가 확장되었고 급기야 IR 재무자료와 손익시뮬레이션, 내부관리용 FP&A까지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회계공부는 딱 6개월만 하면 되는 기간제 베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미 회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그동안 이걸 모르고 무슨 수로 돈이 왔다갔다 하는 서비스를 기획하려고 했을까' 하는 생각에 온 몸의 세포가 자극되었다. 그리고 나는 당시 서비스 기획에서 가장 핵심이 되었던 상품권 정책을 담당하게 되었고, 상품권 정책은 과징금을 예방하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서도 유저에게 편의성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UX를 개편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퇴사한 시점인 지금도 당시 개편했던 그 정책이 서비스의 핵심 로직을 구성하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이제 회계공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 영원한 베프가 되었다. 이직준비로 잠시 미뤄두었던 재경관리사 공부도 시작했고, 이직 또한 회계와 관련된 곳을 찾아서 재무부서에 속한 재무시스템기획팀으로 들어가 막내 팀원이 되었다. 이제 시작인 내 인생에서 내가 죽도록 싫어했던 회계에 스스로 발을 디딜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앞으로 긴 여정을 지독하게 함께 하게 될텐데, 후 이제 증오를 뗀 애정하는 관계가 되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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