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각기 다른 회사에서 다른 포지션과 연차로 근무하는 우리들에게는, 의무와 직분에 따라서 맡아하는 일이 다르게 있다는 겁니다. 그 말은 적어도 이 조직에서 만큼은 "내가 이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명확한 나의 파이(pie)가 있다는 걸 뜻합니다.
기획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획자는 커피 타는 것 빼고 다한다던데?" 음... 웃프지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본업이 아닌 일이라 기피하는 일들이 있죠. 그렇다면 '본업이 아니니깐 내가 안 해도 누군가 할 거야.'라고 생각하고 내 일에만 집중하는 게 좋을까요? 혹은 '아무도 안 하니 내가 다 할게.' 라며 내 본업도 아닌 일을 다 받아서 해줘야 할까요?
업무의 종류 4가지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모든 업무가 다 내 메인 업무 같고,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나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일의 성격을 알고 우선순위를 잘 조정해서 나의 한정된 리소스를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낍니다.
1. 메인 업무
내 직무에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만큼 이름도 '메인 업무'라고 지었습니다. 내가 이 회사를 들어온 이유도 이 '메인 업무'를 하기 위함이고, 회사에서 나를 뽑은 이유도 이 '메인 업무'를 이니셔티브를 지고 갈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서비스 기획이 직무라고 했을 때, UX/UI 디자인이나 개발 업무가 아닌, 서비스의 근간이 되는 '시스템의 구조'부터 시작해서 서비스의 '기능 부분'까지 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플로우를 정리하고, 유관부서와 협의하여 정책을 세우고, 기능을 정의하는 그 일 말입니다. 메인 업무는 전체 업무 중에서도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에 시간을 가장 많이 확보해야 하고, 내 우선순위에서 제일 위에 있어야 합니다.
2. 수명 업무
수명 업무는 한 마디로 말하면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상사가 급하게 필요해서 부르는 일로, 시간 자체가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일을 받는 즉시 해야 하므로 하고 있던 다른 일을 올스톱해야 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아마도 회사에서 승진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수명 업무를 컨트롤하는 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저도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이런 수명 업무가 굉장히 많았는데, "ㅇㅇ업체에 사업을 제안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사업제안서 오늘 안에 디벨롭해서 PDF로 전달해주세요." 같은 종류의 일이었습니다. 주 1,2번 정도면 당연히 내가 해야지 싶겠지만, 하루에 1번으로 자주 있으면 정말 지치는 일이긴 합니다. 어느 정도 직장인 짬이 생기면 '오늘 안에 가능하기는 한데, 급하게 완성하여 고객사에 공유하는 것보다 회사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전략 부분을 조금 더 보완하여 다음 주 월요일까지 공유드리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제안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3. 운영 업무
회사의 영속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건 직무가 무엇이냐에 따라 1순위인 '메인 업무'가 되기도 합니다. 주로 재무회계나 CS 업무, 물류관리와 같은 종류의 직무가 이 운영 업무를 메인 업무로 가져갑니다. 저 같은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운영 업무는 메인 업무가 아닙니다. 운영 업무는 어느 정도 반복되는 작업이 많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그 업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가 되어있습니다. 운영 업무를 메인 업무로 한다는 말은 언제나 대체될 수 있지만, 그만큼 중간에 흐름이 끊기면 비즈니스 자체가 돌아가지 않는 중요한 일이라는 거겠죠?
기획자의 입장에서 운영 업무란 기획하고 구현한 시스템이 잘 운영되는지를 매달 체크하는 일, 데이터가 잘 들어갔는지 싱크를 맞추는 일, CS가 들어오거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4. 숙원사업
오래 묵혔던 회사일을 숙원사업이라고 합니다.
사내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규모의 일인 만큼 시스템의 근본을 건드리는 일이지만, 회사 대내외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 당장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이 되어 미루고, 운영 업무로 대체했던 일입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이 숙원사업을 끝마쳤을 때 '쾌변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숙원사업은 3년, 5년, 길게는 10년 이상 묵혀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 결함으로 일이 커지면, 누군가가(주로 CS 부서에서) 이슈화를 합니다. 윗단에서 그 사업을 함으로써 추후 비즈니스에 금전적/비금전적으로 리소스가 많이 절감될 거라고 판단이 되면 그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즉 상황이 역전되면 전사적으로도 큰 프로젝트가 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기획자에게 이 숙원사업은 아픈 손가락이고,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숨어있던 대왕 여드름과 같은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네 가지 업무의 성격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내가 하는 직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에게 메인 업무는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ex) 메인 프로젝트를 1개 진행하는 중, 오전 8시에 상사에게 수명 업무를 요청받은 상황이라면?
- 오전 8~10시 수명 업무
- 오전 10~11시 운영 업무(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두고 모든 운영 업무를 몰아서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