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바구니 사랑

by 이상역

그간 책을 읽는 틈틈이 글도 서툴게 써왔다. 그런 글이 하나둘 쌓이니 글의 부피도 꽤 두툼해졌다.


삶의 흔적이 쌓이면 인생이란 우물이 깊어지듯이 글에도 정제된 마음이 서서히 고여간다. 비록 글쓰기가 전업은 아니지만, 자주 다듬고 헐다 보니 엉성하게나마 글 바구니가 만들어지곤 한다.


그런 글 바구니가 하도 신기해서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면 실밥이 터졌거나,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모양이 허술해 보인다. 그럴 때마다 글에 무슨 미련이 남은 것인지 끙끙대며 꿰매고 헐고 다듬는 연습에 매달리게 된다.


시골에 살던 시절 아버지가 새끼줄을 꼬아 만든 둥근 바구니를 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그 바구니를 만들기 전에 여러 날 동안 지푸라기를 추려 가며 가는 새끼를 꼬아 놓으셨다.


그리고는 날을 잡아 저녁을 일찍 먹고 사랑방에 앉아 새끼를 손과 발로 둥그렇게 얽어가며 늦은 밤까지 만드셨다.


이튿날 아침에 문을 열고 봉당에 놓인 둥근 바구니는 바라볼수록 멋스럽게 다가왔다. 그 바구니에는 아버지의 투박한 정성과 여러 날의 기다림이란 인내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들이 쓴 글을 읽으면 멋스럽게 다가오는데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멋스럽지도 썩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그런 글 바구니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바라볼수록 허술해 보이고, 잘 생기지도 않았고, 멋스럽지도 않아 괜스레 짜증만 늘어간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글 바구니를 버려둔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버려둔 것이 떠올라 이것도 인연인가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노트북을 열고 이곳저곳 다듬거나 허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가끔 글 바구니에 매달려 다듬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가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옅은 욕심이 솟아난다. 내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듯이 글에 나타나는 삶의 모습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 같다.


글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마음이 달라지듯이 글도 나를 대할 때마다 달리 대한다. 글은 시시각각으로 둥글거나 사각형이나 삼각형으로 변하는 심술보다. 마치 내 마음의 변화처럼 글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어떠한 글이든 정성과 마음을 다해 써야 한다. 나는 아직 장인정신이 한참 부족한 것 같다.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은 자신의 혼과 정성이 깃들지 않으면 도자기를 세상 밖에 절대 내놓지 않는다.


장인은 도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깨고 부순다. 철저한 자기 사랑이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도자기에 일치시키려는 승화된 만남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면벽을 뛰어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노력과 시간이 흐른 뒤다. 도자기에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몰입해야만 자신이란 그릇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도자기를 만난다.


사소한 물건도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갖 정성과 열정을 기울여야 하듯이 글도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쓸 수는 없다. 글도 좋은 재료와 기다림이란 시간과 사람의 정성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아름다운 글이 탄생한다.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이 들여다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오늘도 글의 허름한 부분을 가려보고자 옹고집을 부려가며 허물고 꿰매는 일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는 신세다.


그나마 삶에서 허술한 글이나마 옆구리에 끼고 문학이란 거창한 노래를 부르며 보내는 세월이 즐겁기만 하다. 글쓰기는 어렵고 힘들고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란 것을 절절히 체험하고 있다. 더해서 인생을 걸만한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란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시골에서 아버지가 만든 소박한 바구니는 온갖 정성과 열정을 다한 결과다. 매일 일상과 사투를 벌이면서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서투른 글이나마 다듬기 연습을 하는 중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에서 향기가 솔솔 피어나면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 그러한 향기를 전달받은 날은 기분이 온화해지고 나를 이끄는 은은한 무엇인가를 만난 듯이 마음도 충만해진다.


어떠한 글이나 그 글에는 사람의 마음과 혼이 내재되어 있다. 그 마음이 진실하게 정화되어 승화 작용을 거쳐 향기로 다가올 때면 잔잔한 자극을 받는다.


글을 쓰는 행위는 삶의 아름다운 비상이다. 자신이 쓴 글을 타인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문학의 시작이자 타인과 삶을 동행하려는 내밀한 마음의 표출이다.


내가 쓴 글에서는 아직 풋풋한 향기가 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맑은 향기를 내겠지 하는 꿈을 꾸지만, 그런 날이 올 수도 아니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삶이 참 좋다. 그렇다고 내가 쓴 글에서 억지로 향기를 피우며 살고 싶지는 않다. 저 홀로 있다가 스스로 향기를 피우는 그런 글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내 삶이 글에 투시되어 나타날 때마다 미미한 희열을 느낀다. 그것이 마냥 즐겁고 좋아서 내가 쓴 글을 자주 들여다보고 다듬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쓴 글에는 지나온 삶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그 삶의 흔적을 통해 나란 자화상을 만나기도 하고 미래의 나를 마주하기도 한다.


오늘도 허름한 책상에 앉아 글 바구니를 열심히 다듬는 중이다. 이 글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어떤 꿈을 꾸게 할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이 글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다듬는 작업이 그저 즐겁기만 하다. 더불어 내가 쓴 글에서 삶의 은은한 향기를 맛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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