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수수꽃다리는 라일락으로 부르고 수수꽃다리는 라일락과 비슷하나 잎의 형태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라일락은 잎이 폭에 비해 길고 수수꽃다리는 길이와 폭이 비슷하단다.
어느덧 사월의 햇살이 저물어 간다. 며칠 전까지 개나리꽃, 산수유꽃, 매화꽃이 꽃대궐을 이루더니 꽃이 지고 수수꽃다리가 진한 꽃 향기를 피웠었다.
오늘처럼 지구가 무더워지기 전에는 라일락꽃은 오월에 피는 대명사였다. 그런데 오월이 오기도 전에 사월의 끝자락에서 라일락꽃이 피었다가 스르륵 지면서 짙은 향기마저 사라졌다.
세월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태양의 정수리를 향해 돌진해 간다. 아침에 산책을 나갈 때마다 도로 옆에 핀 수수꽃다리꽃에서 짙은 향기를 맡곤 했는데 꽃이 지자 향기가 나지 않는다.
수수꽃다리 향기가 지자 봄날의 두 번째 꽃대궐이 한창이다. 첫 번째는 매화꽃, 개나리꽃, 산수유꽃, 벚꽃이 꽃대궐을 이루더니 이어서 철쭉꽃, 영산홍, 자산홍, 황매화, 이팝나무꽃 등이 꽃잔차를 벌인다.
사계절 중 봄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다.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은 연이어 벌어지는 꽃잔치다. 꽃이 잔치를 벌이면 봄날의 요지경 속으로 한없이 빠져든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꽃잔치 사이에는 명자나무의 붉은 꽃이 징검다리를 놓는다. 도로변이나 천변에 심은 명자나무가 진한 붉은색으로 도로변과 천변을 빨갛게 물들이다 사그라들었다.
명자나무의 붉은 물결이 사라지자 흰색, 분홍색, 짙은 분홍색, 엷은 붉은색, 노란색 등이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루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봄날에 이렇게 많은 꽃이 피는지를 몰랐다.
직장에서 물러나니 눈에 들어오는 다양한 꽃들이 신비스럽고 신기하다. 겨울이 가고 찾아온 봄은 나날이 무르익어 계절 속으로 침잠해 간다.
세상을 봄꽃으로 꾸밀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낙원은 없을 것 같다. 봄꽃은 사람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어나게 하고 성나고 화난 마음을 누그러트리는 진정제다.
봄꽃을 바라보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까. 봄꽃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죄를 짓는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꽃은 사람의 표정과 마음을 누그러트리고 변화시키는 촉진제다.
봄꽃에서 가장 진한 향기를 피우는 것은 어떤 꽃일까. 아마도 수수꽃다리꽃 향기가 아닐까. 수수꽃다리꽃 향기는 봄의 향기를 대변하는 나팔수란 생각이 든다.
글 주제로 삼기 좋은 것이 봄꽃이다. 봄꽃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써도 질리지 않는다. 자연에서 피는 봄꽃을 차분히 바라보면 세 번에 나누어 피면서 꽃잔치를 벌인다.
이른 봄에는 나뭇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먼저 피고 이어서 나뭇잎과 꽃이 동시에 피고 마지막으로 나뭇잎이 나고 꽃이 핀다. 봄꽃은 두 번째 꽃까지는 사람에게 대접을 받지만 마지막에 피는 꽃은 꽃이 피는지도 지는지도 모르게 한 세상을 살다 간다.
우리네 삶도 봄꽃처럼 단계적으로 나누어 살아가지 않을까. 꽃이 먼저 피는 시기는 청춘이고 나뭇잎과 함께 꽃이 피는 시기는 중장년이고 나뭇잎이 나고 꽃이 피는 시기는 노년기에 해당한다.
젊음이 좋은 것처럼 나뭇잎이 나기 전에 피는 꽃이나 나뭇잎과 동시에 피는 꽃은 사람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러나 나뭇잎이 나고 피는 꽃은 사람에게 사랑과 관심을 덜 받는다.
수수꽃다리 향기를 맡을 수 없으니 봄날의 정서와 운치도 떨어지는 것 같다.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봄날이 아쉬운 것은 봄꽃이 만발한 시기에 스스로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해서다.
봄꽃이 한창 필 때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막상 가는 봄날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인생살이가 다 그렇듯이 봄날이 가듯 마음에 움켜쥔 것도 조용히 내려놓고 허허실실 살아가야 한다.
오늘은 다른 일은 제쳐두고 두 번째로 핀 꽃잔치 구경이나 가야겠다. 가는 봄날이나 아쉬워하며 궁상맞게 앉아 있는 것보다 저문 들녘에 나가서 꽃잔치나 바라보며 춘심이나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