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사월에 기대어

by 이상역

추운 겨울이 가고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월의 시간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아침에 구봉산을 올라가는데 나뭇잎이 자라서 숲이 두툼해지고 무거워졌다. 세월의 시계추는 제 갈 길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는데 내 마음의 시계추는 아직도 제자리에서 겉돌고 있다.


가는 사월 앞에 지난 시간을 톺아보니 남긴 것은 없고 반성과 후회하는 마음만 교차한다. 젊어서나 나이가 들어서나 사월이 지나가면 초라한 가슴만 움켜쥐는 신세다.


삼월에 새롭게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봄꽃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 사월은 보다 실체적인 대상을 찾기 위해 초록과 함께 풍성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산에서 만난 신록은 연두에서 초록을 향해 물결쳐 가는 생명의 향연이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도 초록과 마찬가지로 한 해를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


사월이 시들어 가는 언덕에 서면 내 마음은 언제나 고향의 뒷동산으로 향한다. 고향의 뒷동산에는 유년시절 배고픔과 허기를 달래주던 찔레순과 삘기가 자랐다.


뒷동산으로 찔레순을 꺾거나 삘기를 뽑으러 올라가면 세상이 달리 보였다. 여기저기 보기 좋고 맛이 좋은 찔레순과 삘기가 자라고 있어서다.


찔레나무 가시에 이곳저곳 찔려가며 찔레순을 꺾어 먹던 추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는 사월 앞에 서면 지금도 그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제는 가버린 시간이 되었지만 사월이 사라져 갈 때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각난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내게 고향은 지나간 시간을 톺아보게 하는 촉매제가 되어간다.


내 삶에서 지난 시절과 시간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고향을 떠나서는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고향은 시절과 시기를 가리지 않고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자 문학의 디딤돌이다.


저물어 가는 사월을 바라보면 직장에 다니며 보낸 시간보다 고향에서 보낸 시간이 더 자주 떠오른다. 지금 사는 곳에서 보내고 있는 사월도 고향에서 보낸 사월과 비슷하지 않으면서도 비슷하다.


사월이 가면 신록의 계절 오월이 다가온다. 비록 사월이 저물어 가서 서운하고 아쉽지만 그나마 고향에서 보낸 사월의 추억을 반추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저 하루를 무사하게 탈없이 보내는 것일까 아니면 무의미에서 유의미를 찾아가는 것일까.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 지나가는 사월 앞에서 아쉬움보다는 추억과 그리움을 한가득 안고 다가오는 오월을 맞이하는 것이 생명을 가진 자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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