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향기에 서린 삶

by 이상역

아침에 삼익파크 옆 골목길을 돌아가는데 아카시아 향기가 후각을 자극해 온다. 성당 뒷산인 구봉산에 올라가 가벼운 체조를 하며 건너편 산자락을 바라보니 아카시아 꽃이 눈에 들어온다.


구봉산 등산을 마치고 가랑비가 내리는 승상산에 들어서니 우산을 쓸 필요가 없다. 숲이 우산처럼 우거져 비를 막아준다. 능선 걸어가는데 아카시아꽃이 가랑비에 젖어 흐느적거리며 떨어진다.


가랑비에 젖은 나뭇잎에서 빗물이 마른 낙엽에 떨어질 때마다 머릿속의 생각이 튀어 오르고 아카시아 향기는 빗물을 타고 내려와 지나간 추억을 들쑤시며 사각사각 젖어든다.


중고등 시절 학교에 가려면 잣고개를 넘어서 가야 했다. 그 시절 잣고개를 넘어가는 학생들은 읍내에서 보내준 통학버스 한 대에 의지했다.


비가 오는 날 근 백여 명이나 되는 학생이 버스 한 대를 타고 가는 날이면 비를 맞은 학생들의 몸에서 비릿한 냄새가 풋풋하게 배어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버스가 비포장 도로인 잣고개를 올라가려면 학생들의 몸이 뒤로 쏠렸다가 잣고개 정상을 지나서 내려갈 때는 학생들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렇게 학생들의 몸이 지쳐갈 때 의자에 앉은 학생이 버스 창문을 열어젖히면 아카시아 향기가 밀물처럼 "쏴아"하고 들어왔다.


그러면 버스에 몸을 이리저리 쏠리며 힘들어하던 학생들이 아카시아 향기가 후각을 깊게 자극하 "와~"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그 시절 통학버스에 의지해 잣고개를 넘어가면서 아카시아 향기를 달콤하게 음미하던 학생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고향에서 학창 시절을 마치고 과천에서 직장 생활하던 시절이다. 고향에서 오월마다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지내다가 타지로 나와 생활하면서 아카시아 향기를 잊은 채 보냈다.


그러다 사십 대 중반 오월 어느 날 아무도 근무하지 않는 주말에 직장을 나올 때였다. 그날은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출근하다 모처럼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았다.


그날 맡은 아카시아 향기는 고향에서 보낸 학창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면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해 주었다.


오월이면 유독 아카시아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 후각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지나간 추억을 자극하거나 기억을 끄집어낸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지도 그럭저럭 십 개월이 되어간다. 그간 이사를 다녔지만 그리 높지 않은 산 근처로 이사를 한 것도 처음이다.


나는 산이 좋다. 산은 성장기에 매일 보고 자랐고 산에 올라가 열매도 따먹고 땔감도 얻었다. 그러니 산은 나를 키워주고 성장시켜 준 은인이다.


아침마다 산책 겸 운동삼아 산을 오르다가 이곳에 와서 오월의 아카시아 향기를 만났다. 아카시아 향기는 고향에서부터 사십 대를 거쳐 이순이 넘어서까지 나를 따라다닌 셈이다.


오월의 아카시아 향기는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간다. 내가 배워야 할 것도 아카시아처럼 진득한 향기는 아니더라도 은은한 사람 냄새라도 피워 나를 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순이 지난 나이에 승상산 산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가랑비에 젖은 무거운 나뭇잎은 바람과 햇볕이 짐을 덜어주겠지만 두 어깨에 짊어진 짐은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가는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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