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흙에 담긴 추억

by 이상역

아침에 구봉산을 걸어가는데 성당 뒷산의 능선을 누군가가 깨끗하게 황토흙바닥을 빗자루로 쓸어 놓았다. 신발을 신은 채 걸어가기에 미안할 정도로 황토흙의 맨바닥이 그대로 드러났다.


황토흙은 그냥 바라만 봐도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시골에 살던 시절에는 매일 황토흙을 밟아가며 생활하다 도시로 올라와서는 황토흙을 밟으려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한다.


요즈음 건강을 위해 맨발로 황토흙 걷기가 유행이라더니 주변에 사는 누군가가 빗자루로 쓸어가며 관리하는 것 같다. 맨발로 황토흙을 걸으면 혈액 순환과 체중관리와 스트레스 해소 및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건강 백세시대를 맞아 몸의 건강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는 것 같다. 맨발로 황토흙을 걸어가면 발바닥의 찬 기운을 통해 몸에 시원한 느낌이 전달되어 혈액을 촉진하고 피로를 해소하는 것 아닐까.


산 능선의 황토흙바닥을 빗자루로 쓸어서 반들거리는 것을 바라보니 지난 시절에 겪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 마당은 황토흙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농가에서 마당은 농사의 큰 일을 하는 장소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마당을 조성할 때 아버지는 앞산에 올라가서 돌이 없는 누런 황토흙을 하루 종일 지게로 퍼 날랐다.


마당의 여기저기에 쌓아 놓은 황토흙에 짚을 작두로 썰어 넣어 물과 황토흙을 버무려서 흙을 펴가며 발로 밟았다. 그리고는 길고 납작한 송판으로 마당을 평평하게 고르고 며칠 동안 가족들이 밟지 못하도록 했다.


농가에서 마당이 중요한 이유는 가을철에 수확한 벼나 콩이나 팥을 탈곡할 때다. 마당에서 탈곡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거친 싸리비로 한 번 쓸고 나서 입비를 들고 마당의 흙바닥이 반들거리도록 쓸어냈다.


마당에서 추수한 벼 한 톨이나 팥 한 톨도 버리지 않으려고 황토흙바닥을 쓸어내고 탈곡이 끝나면 다시 입비를 들고 바닥에 떨어진 벼나 콩이나 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쓸어 담았다.


그런 마당에서 개구쟁이 시절 친구들과 구슬치기 놀이를 즐겨했다. 구슬치기는 친구의 구슬을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입으로 흙먼지를 호호 불어가며 바닥이 반들거리도록 닦아냈다.


친구가 내 구슬을 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얼굴을 흙바닥에 대고 입으로 흙을 불어 내면 흙먼지로 얼굴을 뒤집어쓰곤 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친구들과 구슬치기 놀이에 빠져 저녁을 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황토흙에 담기는 추억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 셈이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의 구슬을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황토흙을 이용했지만, 아버지가 황토흙 마당을 입비로 쓸어낸 것은 가족의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성당 뒷산의 황토흙바닥을 누군가가 싸리비로 쓸어 낸 것은 사람들의 몸 건강을 위해서다. 그만큼 황토흙에는 시대를 담아내는 추억과 간절함과 건강성이 담겨 있다.


구봉산 길을 걷다 황토흙을 바라보면 마음이 건강해지듯이 도시에서 황토흙을 만나는 것도 이제는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산을 올라가야 흙을 만날 수 있듯이 산을 오르지 않으면 흙조차 만날 수 없는 시대다.


시골에 살던 시절 어디를 가나 황토흙을 밟고 다녔는데 오늘날은 황토흙을 밟으려면 일부러 찾아가는 시대로 변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인심도 각박해지고 훈훈한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것도 하나하나 사라져 간다.


흙은 사람이 생존하는 동안 밟고 살다가 죽어서는 돌아가야 할 영원의 자리다. 아무리 과학과 의학이 발전해도 흙을 떠나서 사람이 살아갈 수 없듯이 건강을 위해 황토흙을 밟는 것도 사람의 본능적인 행위다.


구봉산을 한 바퀴 돌고 마지막에 다시 성당 뒷산의 황토흙을 신발로 밝으며 내려오는데 황토흙에서 사람의 냄새가 아닌 도시적인 냄새가 배어난다.


황토흙은 자꾸 밟아야만 평평해지고 반들거리듯이 내일도 그리고 모래도 성당 뒷산의 능선에 올라가 황토흙이나 밟아가며 지난 시절의 추억과 잊어버린 시간을 떠올리며 구수한 노래나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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