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이란 과일이나 푸성귀나 해산물 따위에서 그해의 맨 나중에 나는 것을 뜻한다. 제철에 나는 것이지만 끝자락이라 대부분 자투리 형태로 좋은 것이 별로 없다.
지난 몇 주간 등산도 다니며 밤을 주웠다. 구봉산과 승산산의 어디쯤에 가면 밤을 주을 수 있다는 정보까지 얻었고 알게도 되었다.
밤도 조생종과 중생종과 만생종이 있어 나무마다 밤을 떨구는 시기도 다르다. 지금은 만생종이 떨어지는 시기라 아무 데나 가서 밤을 주울 수 없다.
구봉산은 만생종 밤나무가 자라는 곳이 없어 밤을 주을 수 없고, 승상산은 만생종 밤나무가 몇 그루 자란다. 띠리서 밤을 주우려면 구봉산을 거쳐 승상산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산에 올라가서 밤을 줍는 것도 마지막 행사가 될 것 같다. 다행히 만생종 밤나무가 자라는 곳을 몇 군데 알고 있어 알밤을 주워왔다.
앞으로 산에 올라가서 밤을 주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쉬운 마음도 들고 가을이 다 지나간듯한 생각이 든다. 이제는 산에 밤을 주으러 가는 재미보다 운동이나 하기 위해 가야 할 것 같다.
요즈음 산에서 할머니들이 도토리 줍기에 바쁘다. 도토리는 묵으로 만들어 먹어야 해서 아무나 주을 수도 없다. 도트리 묵은 묵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아 묵을 만드는 사람만 주워간다.
가을이 좋은 것은 나무가 봄부터 가을까지 정성을 들여 만든 열매를 얻는 기쁨을 맛볼 수 있어서다. 밤나무에서 밤을 주울 수 없으니 이제는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밤을 줍는 낭만을 만끽하니 가을이 풍요롭고 풍성하게 느껴진다. 나이 들어 어느 곳에 사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은 밤을 줍는 곳을 선택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어디서 밤을 주을까를 생각하며 등산길을 나서 본 적이 있는가. 등산이 고독한 자신과의 대화라면 밤을 줍는 것은 가을과 밤나무와 대화이자 속삭임이다.
매일 밤을 줍는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 삼아 밤을 줍다 보면 자신의 마음도 가을과 함께 물들어 간다. 삶은 오롯이 경제를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걷고 줍고 느끼고 만지고 보고 하는 것들을 누리며 사는 것이 삶이다. 가을에 밤 한 톨 줍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무슨 재미로 가을을 보내며 살아갈까.
끝물은 맨 나중에 나는 과일이지만 과일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계절의 신호수인 셈이다. 모든 것에서 끝은 다음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의 시작점이다.
오늘도 승상산에 올라가서 끝물인 밤을 주워왔지만 밤은 내년에 다시 만나야 한다. 그 만남을 위해 이제부터 서로가 준비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
계절은 서서히 가을을 넘어 겨울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추석이 지나자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밤나무를 찾아가서 끝물인 알밤을 주워 들자 그간 정이 들었는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년에도 알밤을 만나겠지만 그런 날을 위해 올해는 끝물인 알밤을 줍는 것을 마감해야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처럼 끝물이 있으면 새로움이 기다린다.
서울의 변두리에 살아가면서 알밤을 주워가며 사는 삶. 비록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밤을 줍는 낭만과 가슴의 풍요로움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재미있는 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