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 어디로 가나

by 이상역

가을이 깊어지자 나무에서 낙엽이 하나둘씩 떨어져 거리를 배회한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은 생성과 소멸의 작용이고 낙엽을 통해 순환이란 자연의 법칙을 깨닫게 한다.


가을이 되면 자연에서 자라는 나뭇잎이나 풀잎은 고개를 떨구고 대지로 돌아간다. 그리고 내년을 기약하거나 소멸하여 영원히 땅으로 돌아간다.


사람도 계절을 따라 순환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나이 들어 생명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세상을 순환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생명 순환작용생명의 주기라 부른다. 생명의 주기는 길거나 짧거나 자신의 운명에 달려있다. 나무는 나뭇잎을 통해 매년 순환하며 자라는 것이 보이지만 사람은 나이만 성장할 뿐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손주를 재우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돌면 많은 것을 만난다. 그중에 감나무에 달린 감을 바라보며 자주 대화를 나눈다. 손주는 감나무 근처에 갈 때마다 "감은 무슨 색이야"라고 묻는다.


그러면 내가 "감은 처음에는 초록색이고 주황을 거쳐 붉은색의 홍시가 된다. 홍시는 먹을 수 있고 붉은색 홍시가 땅에 떨어지면 갈색이 되고 나중에 검은색으로 변해서 흙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몇 번 설명을 해주었더니 손주를 안고 감나무를 지나가려 하자 손주가 "감은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손주는 내가 무엇에 대하여 설명하면 가만히 듣다가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다.


손주가 감이 땅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 법칙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감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말을 통해 진화하고 깊어진다.


감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해주면서 손주에게 "꽃잎이나 나뭇잎이나 사람도 나중에 모두 땅으로 돌아간다"라는 설명을 덧붙여 준다.


그러자 손주가 "매미는 애벌레로 땅속에 들어가고, 나리꽃도 상사화꽃도 내년 봄에 볼 수 있어"라고 말한다. 손주의 말에는 자연에서 태어나는 생명의 법칙과 삶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매미가 애벌레로 땅속에서 지내다 땅 위로 올라와 내년 여름에 우는 것이나, 나리꽃이나 상사화꽃이 땅으로 돌아갔다 내년 봄에 다시 꽃을 피우는 것 모두가 생명의 현상이자 법칙이다.


매미와 나리꽃의 범위를 더 확장해서 동물이나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내년에 똑같은 사람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서 더 자라고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두 돌이 갓 지난 아이가 감이 땅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삶의 철학을 배우고 생명의 법칙을 이해하는 출발점에 서는 것이다. 손주가 두 돌이 지나자 대화가 가능하고 말하는 것에서 재미가 느껴진다.


가끔 어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흉내 내거나 부모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말을 응용해서 하는 것을 바라보면 다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사고와 생각은 폭풍처럼 성장하는 것 같다.


가로수 은행나무를 만날 때마다 손주는 "은행 어디 있어"라고 묻고는 "은행은 먹을 수 있어"라는 말을 연결 짓는다. 그리고 산수유나무에 매달린 빨간 산수유 열매를 보면서 "술이나 차로 담가 먹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아이의 학습효과는 무서울 정도로 빨리 나타난다. 누군가 아이의 머릿속에 말을 입력을 해주면 그와 동시에 사고작용을 통해 바로 말하는 놀라운 출력 시스템을 갖추었다.


손주를 재우러 밖에 나가거나 놀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걸어갈 때마다 말을 조심한다. 손주에게 나무나 풀과 관련한 것을 삶과 연결 지어 설명해 주는데 그것을 생각했다가 스스로 정리해서 말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서 자라는 메타세쿼이아를 바라보며 싹이 난 것은 산 것이고 싹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라는 것을 분별하고 어디쯤 가면 죽은 메타세쿼이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놀랍다.


손주와 단지를 돌면서 새로운 나무의 이름과 열매를 몇 번 설명해 주면 이튿날 그곳을 지나가면 고욤나무나 찔레나무나 장미를 보러 가자고 한다.


나무 이름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통해 생명의 법칙을 이해하는 삶의 철학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나무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고 나무 이름과 열매와 먹을 수 있는지 등을 설명해 준다.


손주와 공원에 갈 때마다 땅에 덜어진 낙엽을 주워 들고는 내게 "무슨 잎이야!"라고 묻는다. 그러면 "은행나무 잎이야"라고 말해주고 "나무에 있는 것은 나뭇잎이고, 나무에서 떨어진 것은 낙엽이야"라고 덧붙여 설명해 준다.


땅에서 바람에 날아가는 낙엽은 그냥 낙엽이 아니라 어디서 떨어진 것이고 나뭇잎과 낙엽을 구별하라는 의미로 설명해 준다. 그러면 손주는 몇 번 말을 듣고 나뭇잎과 낙엽을 구별할 줄 안다.


가을은 어디를 가나 아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많다. 나무 열매나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나 단지에 서 있는 나무나 아이가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교육의 현장이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 노는 것도 좋지만 아이가 생각할 수 있도록 나무나 풀이나 꽃을 보고 설명해 주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자연에서 만나는 것은 아이가 직접 몸과 마음으로 부딪힐 수 있다.


나무의 열매나 나뭇잎을 따서 만져보고 색깔도 알려주고 열매와 나뭇잎이 어디로 가는지도 설명해 준다. 아이의 생각을 사물 이름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더 깊어지도록 자연의 이치까지 말해준다.


물론 손주가 내가 말하는 것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 알지는 못한다. 그저 자연을 바라보며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이의 생각을 깊어지게 하지 않을까 해서다.


자연에서 자라는 것은 순환의 법칙에 따라 땅으로 돌아간다. 손주가 언제쯤 이 말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해하기 전에 먼저 말로 손주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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