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이다. 그리움은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 발로 밟아보고 싶은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삶이란 지금 순간에 누리는 찰나의 시간이다. 세상 어디를 가든 이 한 몸은 살아갈 수 있지만 그리움이 남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벌써 겨울이란 그림자가 서서히 밀려온다. 가을에 때아닌 비가 자주 내리더니 가을을 데려간 것인지 가을의 풍성함과 풍요로움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는데 날씨가 쌀쌀해졌다.
아침에 구봉산을 향해 걸어가는데 마치 이곳이 내가 살아가는 곳인가 할 정도로 낯설게 다가온다. 이곳에 이사 온 지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마음에는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살아온 곳 어디나 그리움이 되어 남아 있지 않은 곳은 없다. 지나온 발자국마다 애증과 애환과 괴로움과 슬픔이 묻어 있지만 그중에 그리움을 넘어 애정 어린 곳은 과연 어느 곳일까.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니 한 해를 마감하는 기분이 들고 아침에 떠오른 태양이 저녁노을을 그리며 서녘하늘로 고개를 떨구니 올해도 그냥저냥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봄부터 가을까지 무엇을 위해 바쁘게 달려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참 빠르게만 흘러간다. 삶의 공간은 정적인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시간이 동적으로 변해 빠르게 흘러간 기분이 든다.
가족을 이끌고 이곳저곳 남부여대 하며 이사를 다니며 살아온 삶을 생각하니 서글픔과 함께 아이들에게 변변한 보금자리 하나 마련해 주지 못하고 고생만 시킨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무엇을 위해 그리 이사를 다니고 아이들을 이끌고 온 산천을 구경하며 산 것인지 돌아보니 참 허접스런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런 일들이 내게 다가오고 발생한 것일까.
누가 무엇을 위해 나를 삶이란 무대로 이끈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뒤늦게 돌아보니 그렇게 살아온 삶이 부끄럽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왜 젊은 시절에는 삶을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삶을 추구하며 산 것인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삶 속에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곳은 어느 곳일까. 하기사 한 곳에 정이 들만하면 짐을 싸서 떠나고 정착의 기운이 스며들기도 전에 다시 보다리를 싸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갔으니 정이 든 곳이 있을까.
내 삶은 구름 따라 바람 따라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통해 다른 길은 갈 수는 없었는지 하는 의구심도 인다.
직장을 물러나고 또다시 이사를 와서 살아가는데 이곳이 과연 내가 생각한 곳인지 아니면 삶의 최종 목적지인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 삶이란 것이 내가 생각하거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삶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기대며 살아왔지 내가 계획하고 선택한 것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없는 듯하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어디이고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정한 것은 없다.
생계를 위한 직업을 부여잡고 가족이 생기다 보니 몸이 가족과 직장에 저당 잡히고 나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직장 따라 가족을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지금에 와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곳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기가 사는 곳 모두가 그리움으로 남는다면 그 삶은 참된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게 과연 참된 삶을 형성하고 만들어주고 가꾸어 준 곳은 어디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리움이 성장하도록 만들어 준 토양이나 디딤돌은 고향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지금 현재의 순간이 그리움으로 남기를 바라지만 지나고 나면 그리움보다 애증의 공간으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 사는 곳이 그리움으로 남는다면 그 삶은 풍요로운 삶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을 정녕 좋아하고 곁에 두고 애타하는 그리운 마음이 생겨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산 곳을 그리워하는 날이 찾아올 수 있도록 지금이란 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그리움으로 남길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