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리마가 우는 계절이면 누군가에게 그리운 편지를 써서 보내고 싶다. 받을 사람은 정하지 않고 그냥 편지를 써서 우체국에 가서 소인을 찍어 그간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과 안부를 적어 보내고 싶다.
고독한 가을이 되면 왜 편지를 쓰고 싶은 것일까. 편지는 사랑하는 연인이나 그리운 부모님이나 형제 그리고 자식에게 안부를 전하는 수단이다.
그간 편지를 써 본 지도 오래다. 통신 발달에 따라 핸드폰으로 문자나 카톡으로 소식을 전하는 시대니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써보고 싶다.
편지는 자기가 간직한 마음의 표현이다. 말로 연인에게 전하는 것보다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이 전달력이나 표현을 확실하게 전할 수 있다.
말은 마음의 깊이를 느낄 수 없지만 편지는 몇 번 읽다 보면 그 사람의 본심까지 다다를 수 있다. 요즘도 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 편지함에 넣은 봉투를 보기는 하지만 편지다운 편지는 별로 없을 듯하다.
쓸쓸한 가을이면 그간 만나지 못한 사람의 소식도 궁금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건강 소식도 궁금하다. 편지를 써서 물어보는 것이 성의가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물어볼 수 있다.
나이 들어갈수록 편지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필요성도 엷어져만 간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마음을 담는 일이고 그리운 마음을 표출하는 기회이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길이다.
재수하던 시절 편지를 자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홀로 낯선 곳에 떨어져 자취생활로 마음을 의지할 곳도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사촌 동생과 근 일 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았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학원에도 친구가 없어 오롯이 자취집과 학원을 오고 가는 단조로운 생활이었다.
재수하면서 종종 문학책을 읽으며 인상에 남는 문장이나 좋은 글을 편지로 옮겨 적어 편지를 주고받았다. 사람의 마음은 편지를 보내면 답장이 언제 오나 하는 기다리는 마음이 된다.
학원에서 돌아올 때마다 자취집의 우체통에 답장이 왔나 하고 들여다보는 것이 일과였다. 편지에는 기다림과 그리움과 소식이 오기를 온전하게 기대는 마음의 의지가 담겨 있다.
막상 답장 편지를 받고 기대하던 내용이 없어도 답장을 받았다는 안도감과 다음의 소식을 전하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으로 변한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재수하던 시절을 견디고 지나왔다.
그리고 문안산 포대에서 군대를 보내던 시절 행정반에서 근무하던 군인이 연인과 매일마다 편지를 써서 보내고 연인도 매일같이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편지의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우체부가 오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편지를 써서 보내기 때문에 월요일이면 군인 앞으로 2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 군인은 행정반에서 일하며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 일과였다.
어쩌다 우체부가 올 시간이 지나거나 오지 않으면 문 밖을 바라보며 우체부를 기다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매일같이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도 정성이자 사랑이다.
나는 지금까지 매일마다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없다. 매일같이 편지를 써서 보내는 사람을 본 것은 문안산 포대에 근무하던 시절 그 군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매일같이 편지를 써서 보낼 정도로 연인을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심심풀이 삼아 편지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매일같이 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사연도 많지 않았고 할 말도 없었다.
어떤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는 몰라도 매일같이 편지를 써서 보낼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서 행동하고 실천한 것이 아닐까.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고 싶다. 수신인이 누가 되었든 그리운 마음을 담아 아주 먼 곳으로 띄워 보내고 싶다.
가을은 수확이란 결실의 풍성함을 맛보게 하지만 사람의 가슴에 고독이 스며들어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도 자란다. 그런 마음이 생겨나면서 그리운 사람에게 연필을 들고 편지를 쓰게 하는 것 아닐까.
이번 가을에는 아름답고 멋진 편지를 써서 따뜻한 남쪽나라로 보내고 싶다. 그 편지의 답장은 바라지 않지만 남쪽나라의 근황과 소식을 전해 들을 수만 있어도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