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 낮잠은 성장과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낮에 일정시간 낮잠을 자지 않으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밤잠에도 영향을 미친다.
요즘 손주가 두 돌이 갓 지났는데 낮잠을 재우러 나가려면 까다롭게 군다. 그간 손주를 재우기 위해 아기띠로 가슴에 안고 밖에 나가 재워 오는 것을 반복해 왔다.
그런 손주가 성장해갈수록 낮잠을 재우려고 아기띠만 걸치면 잠자기 싫다며 거부하거나 울어버린다. 처음에는 이삿짐 차나 사다리차 보러 가자면 웃으며 안기다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아는 것인지 아기띠에 잘 안기지 않으려 한다.
손주는 잠자기 싫다면서도 달래서 안고 나가면 조용해진다. 그렇게 손주를 데리고 밖에 나오면 손주의 질문이 쏟아진다. 할아버지 품에 안겨서 "이건 무슨 나무야", "은행 열매 어디 있어", "고욤나무 어디 있어" 등 온갖 질문을 한다.
손주가 질문하는 틈틈이 손주에게 자장가 삼아 "고향땅"이나 "오동잎"이나 "찔레꽃"과 같은 동요나 트로트를 불러주며 아파트 단지를 걷는다.
손주의 소나기 질문은 손주가 "집에 갈래"라는 말이 나오면서 현저히 줄어든다. 손주가 집에 가자고 하는 것은 "나 지금 졸려요"라는 말이다. 집에 가자는 말이 나오면 대부분 오 분 안에 잠이 든다.
손주가 낮잠을 자는 패턴은 일정하다. 손주는 아침에 일어나서 다섯 시간과 여섯 시간 사이에 잔다. 다섯 시간을 넘으면 손주의 신경이 날카롭고 화를 자주 내고 무언가 하나에 빠져 논다.
손주의 신경이 날카롭거나 화를 자주 내거나 몸이 늘어지는 행동은 곧 졸리다는 신호다. 그러면 아기띠를 걸치고 손주를 달래서 밖에 나와 질문을 하다 "집에 갈래"라는 말이 나오고 곧 잠을 잔다.
손주를 집에서 낮잠을 재우고 싶지만 손주의 끝없는 질문과 말 때문에 잠잘 시간을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구윈투수로 나서서 낮잠을 재워주고 있다.
나는 손주의 낮잠을 재우러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간다. 낮잠을 자는 패턴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손주가 더 크면 낮잠 재우는 일도 끝이 나겠지만 손주를 재우러 가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손주를 안고 밖에 나가 재우고 들어오면 낮잠을 두 시간 정도 잔다. 아기의 낮잠 두 시간은 성장과 발육에 좋은 것 같다. 손주가 낮잠을 자고 나면 행동과 말이 활발해진다.
손주는 낮잠을 잤을 때와 자지 않았을 때 차이가 뚜렷하다. 낮잠을 자면 행동과 말이 활발해지고 낮잠을 자지 않으면 행동과 말이 느려지고 화를 자주 낸다.
주중에 손주의 성장과 발육을 위해 딸네 집으로 낮잠을 재우러 왔다 가는 세월이 참 잘도 간다. 마침 어딘가를 다니다 그만두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손주의 낮잠을 재워 주러 다닌다.
손주의 낮잠을 재우기 위해 아침마다 구봉산에 올라가 걷고 체조도 하며 몸의 근력도 키운다. 아기를 재우는 일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특히 손주는 남자아이라 몸무게도 있어 낮잠을 재우려면 삼십 분 정도 걸린다. 몸과 체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삼십 분 정도 버티는 것도 힘들다.
최근에 손주는 할아버지가 자기와 놀러 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자기 방에 가서 웃으면서 양말을 꺼내 들고 와서는 신겨 달라하고 공원이나 뛰놀이방방에 가자고 한다.
그런 손주가 귀여워서 소파에 앉을 새도 없이 곧바로 손주의 양말과 옷과 신발을 신기고 밖에 나가 한 시간 정도 놀다 들어온다. 그리고 점심을 먹이고 손주를 재우러 밖에 나간다.
손주의 낮잠을 재워주기 위한 구원투수 역할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생겨 손주와 놀아주고 재워주는 것에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삼아왔다.
손주의 낮잠 재우는 구원투수가 끝나면 어떤 구원투수로 등장해야 할까.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면 나서고 그렇지 않으면 손주와 놀아주고 낮잠 재우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