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by 이상역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학습의 결과물로 경험한 것을 획득하고 저장하여 나중에 다시 회상할 수 있는 뇌의 기능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정보를 보유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기억되는 정보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모든 감각 기관을 통한 경험뿐만 아니라 사건의 순서 관련자료와 정보, 수식과 같은 논리적 해석 등 매우 다양하다.


아침마다 구봉산과 승상산에 산책 겸 등산을 가는데 집을 나서기 전에 핸드폰을 가져가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막상 옷을 입고 집을 나서면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고 집을 나서는 날이 종종 있다.


그리고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는 것을 기억하는 시점도 제각각이다. 어떤 때는 아파트 단지를 나서기 전에 기억해서 집에 들어와 핸드폰을 가져가거나 어떤 때는 산에 올라가 등산하다 핸드폰을 가져오지 못한 것을 기억하게 된다.


나이 들어 기역력이 감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손치더라도 뒤늦게나마 그것을 기억하는 것만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자 기억력이 젊은 시절처럼 왕성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잊는 일이 잦아졌다.


기억력이 좋은 것과 머리가 좋은 것의 상관관계는 잘 알지 못한다. 누군가는 기억력이 좋아 유년기에 대한 추억을 대부분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유년기 추억이 생각나는 것도 별로 없다.


요즈음 손주 보러 일주일에 몇 번씩 간다. 두 돌이 지난 손주가 성장할수록 몸의 움직임과 행동이 활발해졌다. 아이의 성장기에는 종일 밖에 나가 놀아도 지치지 않을 만큼 활동적이다.


손주의 근육 발달을 위해 손주네 집에 가면 손주랑 점심을 먹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 공원에 가서 함께 걷거나 뛰어다닌다. 공원을 돌아다니다 건너편 아파트에 설치된 놀이터 몇 개를 찾아다니며 놀다 들어간다.


그렇게 손주와 돌아다니며 겪는 것인데 손주의 기억력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삼주 전에 나무나 꽃 이름을 알려 준 것을 기억해서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를 돌 때 그 지점에 이르면 확인하듯 내게 묻곤 한다.


한 번은 손주네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걸어가는데 손주가 "이거 무슨 나무야"하고 묻길래 나무를 보니 나도 이름을 알 수 없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인해 보니 가막살나무였다.


핸드폰으로 나무 이름을 확인해서 손주에게 "이 나무는 가막살나무야! 열매가 빨갛게 달렸네"라며 말해 주었다. 그리고 주 지나서 손주를 데리고 다시 그곳에 이르자 손주가 "가막살나무 어디에 있어!"라며 묻는다.


나는 사실 그곳에 가막살나무가 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손주는 어떤 것을 기억해서 그 지점에 이르면 나무가 어디에 있는 지를 묻는 것일까.


그때 나도 가막살나무란 이름을 처음 알았고 손주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삼주 전에 알려 준 것을 어떤 것을 기억하고 연관 지어 말하는 것인지 신비로울 뿐이다.


뿐만이 아니다. 손주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특정한 지점에 이를 때마다 확인하듯 내게 나무와 꽃에 대하여 질문한다. "나리꽃 어디 있어", "죽은 메타세쿼이아 어디 있어", "고욤나무 어디 있어", "장미꽃 어디 있어", "찔레나무 어디 있어", "수국 어디 있어" 등 손주를 재우거나 놀면서 나무나 꽃 이름을 알려 준 것을 기억해서 내게 물어댄다.


지금까지 많은 아이를 보아왔지만 손주처럼 돌 무렵에 기억력이 좋은 아이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반복해서 가르치거나 훈련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손주와 함께 걷다가 손주가 사물에 대하여 물으면 한번 설명하고 지나가는 것인데 그것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가 그곳에 이르면 잊지 않고 묻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신비로울 뿐이다.


기억력의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손주를 데리고 다니면서 새삼 궁금해졌다. 손주의 손을 맞잡고 단지 내를 걸어 다니면 손주는 자기네 차와 내 차와 할머니 차가 어디 있다는 것을 금방 안다.


나는 차 번호와 외형을 대충 보고 내 차인지 여부를 구분하는데 손주는 숫자도 모르는데 걸어가다가 옆에서 보고도 누구 차 인지를 구분한다. 손주는 차의 어느 부분을 보고 누구 차인 지를 구분하는 것일까.


기억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모든 감각기관의 경험을 통해 저장하고 회상하는 것이라는데 손주는 어떤 경험을 통해 뇌에 저장하고 회상하는 것일까.


기억력이 좋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억력이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닌가. 어쨌든 손주도 지금의 기억력을 잘 살려서 나중에 공부 잘하는 아이로 씩씩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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