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낮잠에 대한 소회

by 이상역

삶에서 두 돌 되기 전 아기의 낮잠 재우기를 평일에 해 본 적이 있던가. 시골에서 태어나 부모 농사일을 돕고 직장에 다니면서 밥벌이하느냐 낮에 아기 재우는 일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내 자식이 태어났을 때 주말에 낮잠을 재운 기억은 나는데 아득한 지난 이야기다. 낮에 아기 재우는 것은 쉬운 듯 하지만 매일마다 시간을 지켜 재우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힘들다.


직장에서 물러난 뒤 몇 년 간 회사 근무를 하고 나자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직업의 세계에서 물러나자 여유롭고 느긋한 시간이 생겨 손주 낮잠 재우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나이 들어 처음으로 손주의 낮잠을 재워보았다. 아기띠를 두르고 밖에 나가 낮잠 재우는 것이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근 일 년간 손주의 낮잠을 재우기 위해 보낸 시간은 되돌릴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이 되었다. 아기띠로 손주를 안고 밖에 나가 아파트 단지를 돌며 보낸 시간들. 잠들기 전까지 손주가 세상을 향해 던진 질문들. 손주와 할아버지가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의 단어를 속삭였던 순간들.


이제는 그런 추억과 시간이 밀물에 밀려나면서 서서히 모래톱처럼 가슴에 쌓여간다. 손주에게는 그 시간이 정서와 성장의 발판으로 할아버지에게는 그 시간이 깊은 사랑과 그리움으로 변화시켰다.


손주가 태어나던 해부터 첫돌 때까지는 주말마다 가서 낮잠을 재웠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직업의 세계와 연이 끝나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가 손주의 낮잠을 재웠다.


그런 참여를 통해 손주가 성장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함께 걸으며 세상의 바람을 겪었다. 더불어 손주의 낮잠을 재우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겪고 새로운 것도 알게 되었다.


내 가슴에 손주를 안는 것은 세대와 새대를 안거나 안기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손주를 가슴에 안으면 자식을 품에 안았던 시간이 생각나고 부모나 조부모의 품에 안겼던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결국 손주를 가슴에 안는 것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그 연결을 통해 내리사랑과 치사랑을 생각하며 삶의 소중한 시간을 돌아보고 내일이란 미래의 세상을 내다보게 된다.


그나마 손주가 할아버지의 빈약한 품에 안겨 잠을 자 준 것을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손주를 품에 안으면 세상의 따뜻한 것들이 내 안에 들어와 잠을 자는 듯한 기분이 든다.


손주가 성장할수록 아기띠를 두르고 밖에 나가 재우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아기를 재우는 기술이 부족해서 손주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막막했지만 그때마다 해답을 찾아 데리고 나가 재웠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두 돌 되기까지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 시기란 생각이 든다. 아이의 성장이나 발육이나 발달이나 의사표현 등 모든 것이 그 기간에 형성되고 완성된다.


손주의 성장과 발육을 위해 오롯이 밖에 데리고 나가 낮잠을 재우거나 공원이나 놀이터에 가서 손잡고 걷거나 뛰어다닌 것은 아니다. 손주의 낮잠이 성장과 발육에 얼마만큼 도움을 주었는지 알 수는 없다.


아기는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고 믿는다. 주말마다 놀이방에 가서 놀아주었더니 손주에게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될래"하고 물으니 손주가 "뛰놀이방방 사장"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최근에 종이박스 등을 가져가는 재활용차가 올 때마다 밖에 나가 몇 번 구경시키고 난 뒤 손주에게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될래"하고 물으니 손주가 이번에는 "집게 쓰레기차 운전수"가 되겠다고 한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무궁무진하다. 부모나 조부모가 세상을 어떻게 열어주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깊어진다.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진정으로 무엇을 도와준 것일까.


아기적 시절에 낮잠을 재워주었다고 큰소리칠 수도 없고 나무나 꽃 이름을 알려주었다고 목소리 낼 수도 없다. 내가 손주에게 가르쳐 준 것은 정서적 함양과 사랑 밖에 없는 것 같다.


손주를 가슴에 안고 재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자장가로 동요나 트로트를 불러 준 것이다. 자장가로 손주의 정서를 위해 동요나 트로트를 불러주며 고향과 서정이란 그리운 마음을 손주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앞으로 손주가 다치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사랑이자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손주가 가려는 세상을 열어줄 수도 없고 가야 할 길을 터 줄 수도 없다.


할아버지가 손주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곁에서 열심히 응원해 주고 지원하고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라는 것을 지켜보며 함께 동행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손주가 두 돌이 지나면서 낮잠을 잘 자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낮잠을 자면 밤에 잠자는 시간이 자꾸 늦어져서 일단은 낮잠 재우기를 그만두었다.


낮잠 대신 밖에 나가 걷거나 뛰어다니는 운동을 도와주려고 한다. 아이는 밖에 나가 운동하면 밤에 잠도 잘 자고 먹는 것도 잘 먹는다. 이제는 손주의 몸 건강을 위해 시간이 되는 대로 손주와 놀아주는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앞으로 손주가 낮잠 대신 새로운 습관 형성을 위해 나섰으니 잘 적응하기 바란다. 인생이란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다. 그 강물은 막을 수도 잡을 수도 없다.


손주와 보낸 지난 추억의 시간들이 강물처럼 저 멀리로 흘러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강물이지만 다가오는 시간이 헛되이 흘러가지 않도록 남은 인생을 손주와 멋지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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