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구봉산을 가려는데 가을비가 내리고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어둠 컴컴하다. 어두운 사위를 헤치고 골목길을 지나 구봉산 입구에 들어서자 등산길에 낙엽이 빗물에 젖어 질퍽질퍽하다.
낙엽이 질퍽거리자 빗물이 고인 것 같은데 표시가 나지 않는다. 낙엽과 빗물을 피할 수 없어 신발이 비에 젖든 말든 등산길을 걸어가는데 나무에 달린 나뭇잎이 어느새 텅 비어 버렸다.
여름에는 소나기가 내려도 우산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우산을 받쳐 들고 가야만 한다. 빗방울이 낙엽에 "다닥다닥"거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계절을 재촉하듯이 귓전에 또렷이 들려온다.
구봉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데 근처 아파트 옆 골목길에 낙엽이 떨어져 거리를 수놓았다. 갈색에 노랗고 울긋불긋한 단풍잎을 바라보니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유명한 화가도 나무처럼 멋진 풍경화를 그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무가 자연스럽게 떨군 낙엽으로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놓은 모습이 장관이다. 갈색에 노란색을 덧칠하고 그 위에 빨간색을 얹어 놓은 모습이 예술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면 거리를 멋지게 수놓는 것은 나무밖에 없다. 나무는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을 바람을 이용해서 거리마다 수를 놓으며 가을의 풍경화를 그려간다.
나무는 화가처럼 붓이 필요 없다.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을 물들여 바람에 떨구어주기만 하면 그림이 완성된다. 사람은 물감으로 색을 맞추어 신경을 써가며 그림을 그리지만 나무는 그럴 필요가 없다.
등산길이나 가로수가 서 있는 거리마다 가을날의 풍경화가 그려져 있다. 사람들은 나무가 그려 놓은 풍경화를 바라보거나 발로 밟으며 풍경을 즐긴다.
사람은 화가가 되려고 십 수년간 공부해서 그림을 그리지만 나무는 자연의 내공이 깊어 나뭇잎만 떨구어 내면 그 자체가 그림이 된다.
화가와 나무가 그린 그림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위적인 것과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사람은 손으로 머릿속의 상상을 따라 그림을 그리지만 나무는 자연스러운 바람을 타고 그려간다.
누가 더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이 보기 좋은 것 아닐까. 사람이 그린 그림은 다른 사람이 보고 평가해야 그림이 되고 완성되지만, 나무가 그린 그림은 보아 달라고 애걸하거나 평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가을비가 내리지 않아도 등산길이나 거리에 떨어진 낙엽의 그림이 아름다운데 가을비가 더하자 진한 색을 띄우며 더 멋진 풍경화로 다가온다.
길과 거리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오롯이 나무의 손놀림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 계절을 빛내는 것은 가을의 단풍이다. 거리를 수놓는 단풍이 사라지면 풍경화도 더는 만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에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나무나 풀도 그렇고 땅 위나 아래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각자의 멋에 취해서 살아가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