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네 집 주변에는 가로수로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를 심어 놓았다. 가을이면 은행나무에서 은행과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고 플라타너스도 나뭇잎을 갈색으로 거리를 물들인다.
손주를 품에 안고 재우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서성이는데 겉에 연두색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은행나무 밑에서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분은 긴 장대로 은행과 은행잎을 털어대고 두 분은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나머지 두 분은 마대에 은행과 은행잎을 담고 있었다.
손주와 내 귓전에는 은행나무가 아프다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누구야! 내 소중한 은행과 은행잎을 털어가는 사람이"라면서 큰소리로 외치는 것만 같다.
은행나무도 자기가 살던 곳에서 뿌리째 뽑혀와 가로수로 심어 놓은 것도 가슴이 아픈데 은행과 은행잎을 나무가 떨구기도 전에 강제로 털어가니 원망하는 소리가 높아만 간다.
경관을 위해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심은 사람은 누구이고 그 나무의 은행과 은행잎을 강제로 털어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가로수는 그곳을 지나가거나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관상 심은 것이 아니던가.
은행이나 은행잎을 털려면 먼저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동의라도 받고 털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구에서 관리하는 것이니 구에서 마음대로 은행과 은행잎을 털어가도 된다는 것인가.
밋밋한 거리를 바라보는 것보다 가로수에 매달린 은행도 보고 떨어진 은행잎을 밟으면 걷는 것이 보기에도 더 좋은 것 아닌가. 물론 매일 거리 청소를 하는 사람은 은행과 은행잎 청소하기가 힘들 것이다.
가을이면 근 한 달 이상을 은행과 은행잎을 쓸어서 담는 일로 고생하는 고충과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굳이 사람이 장대까지 들고 와서 강제로 은행과 은행잎을 털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참에 거리에 떨어진 노란 낙엽을 밟는 기간을 정해서 거닐 수 있도록 조성하는 것은 어떨까. 은행과 은행잎을 버리지 말고 거리에 떨어지는 대로 쌓아두고 사람들이 구경도 하고 낙엽을 밟으며 데이트하고 차를 마실 수 있게 거리를 조성하면 낭만적이지 않을까.
은행나무는 때가 되면 은행과 은행잎을 떨군다. 그런 시간의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장대를 휘두르며 은행과 은행잎을 터는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은행잎이야 그렇다 쳐도 은행은 땅에 떨어지면 지독한 냄새를 풍겨 발로 밟을 수가 없어 피해서 걸어 다닌다. 은행 냄새의 피해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은행을 터는 것이 과연 옳은 행위인가.
거리에서 은행과 은행잎을 털던 사람들이 작업을 마치고 다른 나무로 이동해서 은행과 은행잎을 털어댄다. 은행나무의 암나무만 찾아다니며 은행과 은행잎을 터는 것 같다.
청소가 어려워서 거리가 지저분해서 아니면 낙엽을 치우는 것이 귀찮아서 민원이 들어와서 무슨 연유로 터는 것일까. 어떤 이유로 은행과 은행잎을 터는 것인지 그 사연이 몹시 궁금하다.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나 플라타너스는 봄철에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가을에 열매를 익히고 잎을 뭍들이고 땅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가로수의 속사정을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 봄철에는 가로수를 정리한다며 팔뚝인 나뭇가지를 사정없이 잘라내더니 가을에는 열매와 나뭇잎이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청소에 지장을 준다면서 털어간다.
가로수가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은행나무에서 은행과 은행잎을 강제로 빼앗아 가는 것일까.
가로수로 심을 때는 은행나무의 암수를 구별할 수는 없지만, 수나무만 심어서 관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자신의 종족을 퍼트리는 본능적인 행위다.
사람이 나무의 본능적인 행위를 강제로 막는 것은 자연을 거슬리는 행위다. 은행 열매가 냄새나고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강제로 장대를 이용해서 터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다.
거리에서 은행과 은행잎을 털어가는 사람에게 가서 당장 은행 터는 작업을 중단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차마 나지를 않는다.
어찌 되었든 내년에는 손주네 집에 놀러 와서 손주와 은행나무에 매달린 은행과 노란 은행잎을 가을 끝자락까지 바라보며 가로수길을 거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