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살던 시절 낯선 과객이 저녁에 찾아오면 저녁을 대접하고 하룻밤 자고 가게 했다. 그런 농촌의 인정과 풍경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하룻밤 자고 가라는 말이 따뜻하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그네를 하룻밤 자고 가게 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심이자 그 시대를 나타내는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의 표현이다.
아마도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이 하룻밤 자고 가고 싶다고 말하면 별 미친 사람 다 본다고 화를 낼 것이다. 하룻밤 자고 가라고 손을 내밀 사람도 없고 자고 가란다고 그냥 자고 갈 사람도 없다.
고향에 부모님이 함께 살아계실 때 고향에 가면 으레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은 당연지사로 생각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혼자 계실 때도 집이 쓸쓸해 보였지만 어머님과 하룻밤 자고 오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 큰형네가 고향 집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이 어려워졌다. 부모님과 하룻밤 자는 것은 익숙하지만 큰형네가 살게 되면서 고향에서 하룻밤 자는 것은 힘들어졌다.
누군가에게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하는 것은 관계의 친밀함과 후한 인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관계의 친밀함이 없으면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자고 가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고 권할 수도 없다.
세상의 인심도 변하고 농촌의 공동체 문화에서 도시의 개인주의 문화 성장으로 인정과 인심을 베푸는 문화도 사라졌다. 그런 세상의 인심과 반대로 나는 손주에게 하룻밤 자고 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전에 어머니가 고향에 가면 입버릇처럼 "오늘 자고 가는 거지"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닮은 것인지 지금은 손주가 내게 자고 내일 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손주가 내게 자고 가라고 하는 것은 자기와 더 놀아주고 가라는 말이다. 손주를 데리고 밖에 나가 한 시간 정도 놀고 들어와서 할아버지 집에 간다고 하면 "안돼"라거나 "자고 가"라면서 자기가 덮는 이불을 질질 끌고 나온다.
손주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어 다시 주저앉아 손주와 놀아주다 다시 "할아버지 집에 갈게"라고 말하면 손주는 "여기서 자고 2월에 가요"라고 말한다.
내 인생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제일 많이 권한 사람은 어머니이고 그다음은 손주다. 어머니는 고향에 왔으니 하룻밤 쉴 겸 마음을 녹이고 가라는 것이고 손주는 자기와 하룻밤 놀아주다 가라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두 사람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고향에 가면 쉬면서 잘 곳이 있고 손주에게 가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언제든 찾아가서 하룻밤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나는 누구에게 내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한 적이 있었나.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한 사람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어머니와 손주는 그래도 인정이 있어 마음이 좋은 것 같은데 나는 어머니와 손주만도 못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그냥저냥 살아온 것 같다. 세상살이가 점점 각박해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사라져 가고 곁에 누군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인정도 썰물처럼 마음에서 하나둘 빠져나갔다.
그나마 손주가 내게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한다. 손주가 나를 좋아해 주니 그래도 살아갈 맛 나는 세상이다.
고향의 넉넉한 인심도 사라져 가고 오솔길에서 얼굴을 알든 모르든 만나면 인사를 나누던 문화도 사라져 간다. 이 세상은 사라지는 것보다 채워야 할 것이 많아야 풍성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시대의 흐름은 어쩔 수 없다지만 나보다 남을 위한 마음씀씀이라도 넉넉한 여유를 갖고 대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베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를 거쳐간 사람을 하나둘 떠올려보아도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내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쓸쓸하게만 다가온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한 번쯤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누구인가를 생각해 볼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함께 공유하며 동행하는 삶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할 사람 하나 없는 빈 가슴만이 그저 쓸쓸하고 허무하게만 다가오는 아침이다.